무더운 여름 밤, 열대야 못지 않게 성가신 것은 모기 같은 날벌레다. 우리는 아마 기회만 된다면 모기를 잡을 것이다. 벌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들어와 윙윙 거리면 어떨까? 조금 무섭긴 하지만, 용기를 내 잡지 책을 말아쥘 것이다.
이 벌레들은 사람이 자신을 잡으려 달려들 때 공포를 느낄까? 죽음의 순간에 고통을 느낄까? 사람인 우리로선 곤충이 외부 자극에 대한 반사적 작용을 넘어, 사람처럼 의식을 갖고 고통을 피하려는 존재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난 7월 학술지 PNAS에 실린 영국 연구진의 연구는 눈에 띈다.
■ 벌도 고통을 느낀다
영국 퀸메리대학 연구팀은 열을 일으키는 작은 히트 패드 위에 벌이 좋아하는 설탕물을 올려놓았다. 노란색 패드 위에는 농도 40%의 맛있는 설탕물을 두었다. 분홍색 패드 위엔 농도 10-40% 사이의 설탕물을 번갈아 올렸다. 처음에는 양쪽 다 열을 가하지 않았으나 나중엔 노란색 패드 온도를 55℃까지 올렸다. 이는 벌을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지만, 충분히 고통스럽기는 한 온도다.
분홍색 패드에 10-20% 농도의 설탕물이 놓여 있을 때, 벌들은 불편을 참고 뜨거운 노란색 패드 위의 고농도 설탕물을 먹었다. 반면 분홍색 패드에 농도 30-40% 설탕물을 올려 놓자 벌들은 분홍색 패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벌은 돌아올 보상과 참아야 할 고통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했다. 이는 벌이 불쾌한 반응에 단순히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처럼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경중을 판단하고, 반응을 억제하는 것은 생물에 지각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논문 제1저자인 마틸다 깁슨은 "그간 곤충은 반사적으로 아픔을 피하는 감정 없는 로봇으로 간주돼 왔다"라며 "벌이 해로운 자극에 반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반응함을 밝힌 이 연구는 벌이 고통을 느낀다는 점을 시사한다"라고 밝혔다.
이와 비슷한 실험이 앞서 집게를 대상으로 이뤄진 적이 있다. 소라게라고도 하는 집게는 고둥이나 소라 같은 조개류의 빈 껍데기 속에 들어가 산다. 영국 퀸즈대학 연구진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껍데기와 그렇지 않은 껍데기들을 수조 안에 넣은 후, 껍데기 안에 들어간 집게들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다.
전기 충격의 강도를 서서히 높이자, 안 좋은 껍데기에 둥지를 튼 집게부터 집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좋은 껍데기를 차지한 집게는 이사를 최대한 늦췄다. 전기 충격이 멈춘 후 돌아올 때, 좋은 껍데기로 돌아온 게들은 집이 안전한지 조사를 짧게 끝내는 경향이 있었다.
2009년 '응용동물행태과학(Applied Animal Behaviour Science)'에 실린 이 논문은 갑각류가 고통과 보상을 의식하는 정신 활동을 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연구로 꼽힌다.
■ 고통을 느끼는 동물이 따로 있을까?
그간 포유류 동물의 처우에 대해선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에 따라 가축을 도살하거나 실험에 사용할 때 고통을 최소화하는 등 가능한 인도적 처우를 하도록 여러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반면 두족류나 갑각류 같은 무척추동물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가재나 문어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요리하고, 과학자들은 무척추동물에 대한 동물 실험은 포유류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는 무척추동물은 의식적 존재가 아니고, 따라서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각이 있다(sentient)'는 것은 보통 어떤 느낌이나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단지 환경에 대한 반응이 아닌 기쁨, 슬픔, 고통, 두려움, 스트레스 등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포유류나 영장류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비교적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그들은 슬픈 눈을 하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낸다. 반면 어류나 갑각류, 곤충의 감정은 이입하기 어렵다. 그들은 표정도 없고 소리도 내지 않는다. 사람은 진화적으로 인간과 거리가 먼 동물들의 고통에 덜 민감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감각, 의식, 언어 등의 활동은 뇌의 신피질에서 이뤄지는데, 갑각류나 두족류는 뇌에 이 부분이 아예 없다. 무척추동물의 뇌 구조는 포유류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크기도 작다.
■ 물고기도, 문어도 고통 느낀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그간 지각 있는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던 이런 동물 역시 고통을 느끼고 복잡한 정신 활동을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물고기에겐 사람과 같은 중앙신경계는 없지만, 위험한 자극을 감지하는 통각수용체는 있다. 뇌는 작고 구조는 단순하지만, 우리의 정교한 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의식과 관련된 활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하는 연구가 쌓이고 있다.
문어는 상처를 치유하려는 행동을 하며, 벌은 과거 거미줄에 걸려 고생했던 장소에 다시 가면 화들짝 놀라는 듯한 행동을 취하며 자리를 피하려 한다는 연구들이 있다.
영국 에딘버러대 연구진은 무지개송어의 공포와 고통 반응 사이의 관계를 살폈다. 수조에 레고 조각들을 집어 넣자 송어는 낯선 물체에 대해 공포 반응을 보이며 되도록 레고 조각들에 접근하지 않았다. 송어 입에 아세트산을 주입하자 고통 때문에 공포에 신경을 덜 쓰게 돼 레고 조각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송어에 아세트산과 모르핀을 함께 주입하자 모르핀이 진통제 역할을 해 송어는 다시 레고 조각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르핀은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지는 못 한다. 그럼에도 모르핀을 맞은 송어는 아세톤산의 고통을 잊고 레고 조각에 대한 공포를 되살렸다. 이는 송어가 단지 불쾌한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 동물에 대한 인간의 윤리적 의무
만약 갑각류나 두족류, 어류, 곤충 등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면 인간은 이들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지각을 가진 존재에 대한 존중이라는 윤리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문어나 벌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이들을 식용으로 조리하거나 실험에 활용해선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보다 인도적 처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높아질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동물 복지를 이유로 공장형 목축을 반대하고, 반려동물 학대 행위를 처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거의 생각지 못한 일이다. 1980년대만 해도 미국 소아과 의사들은 아기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 치료를 하곤 했다.
영국은 지난 4월 갑각류나 두족류를 의식을 가진 동물로 분류하고 이들을 법적 보호 대상에 넣는 것을 골자로 동물복지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가재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요리하는 등의 행위가 금지된다. 영국 정부는 이를 위해 런던정경대학교 연구진에 이들 동물의 의식에 대한 과학적 연구조사를 의뢰했고,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법을 개정했다.
한편, 노르웨이는 현재 곤충에 대해서도 이같은 규제를 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물론 어류나 갑각류 등에게 고통을 느끼는 의식이 있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과학자들도 많다. 실험에서 이들 동물이 보이는 행동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고통을 느껴서인지 확언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실험 설계의 문제도 있고, 이들 동물의 뇌는 의식을 가질만큼 발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다만 인간이 윤리적 감수성을 느끼는 대상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추세는 거스르기 힘들 전망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동물의 의식에 대한 지식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공장형 목축과 흡사한 공장형 어류 양식이 늘어나고, 식량 위기의 대안으로 식용 곤충 사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등 인간이 다른 동물을 대규모로 이용하려는 시도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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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지속적으로 도전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퀸메리대학 라스 치카 교수는 "곤충도 어떤 형태의 의식이 있다는 증거가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곤충의 독특하고 생경해 보이는 의식을 만든 환경을 보전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됐다"라며 "곤충과 같은 작은 생물도 존중과 윤리적 처우를 받을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