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붕괴…격무·낮은 수가·고위험과 기피 '삼중고'

[이슈진단+]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으로 본 필수중증의료 문제점

헬스케어입력 :2022/08/10 08:35

지난달 24일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간호사 한 명이 찾아왔다. 그는 병원 소속으로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광범위한 뇌출혈이 발생했고, 응급처치가 진행됐지만 외과적 치료는 시행되지 못했다. 원내 뇌출혈의 외과 수술을 담당하는 교수의 부재 때문이었다. 간호사는 이후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돼 수술을 받았지만 엿새 후인 30일 사망했다. 이후 직장인 앱인 ‘블라인드’에 서울아산병원 직원이 사건을 알려지며 세상에 알려졌다.

서울아산병원은 빅5 병원으로 분류되며 응급환자 이송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상급종합병원이다. 원 소속 직원의 치료가 이뤄지지 못해 다른 병원으로 전원했다는 사실을 두고 우리나라 필수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의사 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정원 증원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특정 진료과의 기피라는 우리 의료체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개선하지 않는 채 배출되는 의사 수만 늘릴 경우 인기과와 기피과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나아질 수 없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아산병원조차 뇌출혈 응급수술을 위한 신경외과 진료 시스템이 불완전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라며 “일 년에 3000명이 넘는 의사들이 배출됨에도 중증 환자를 진료하는 필수 진료과에 의사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우리나라 의사 양성체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명백한 신호”라고 밝혔다.

원 소속 직원의 치료가 이뤄지지 못해 타 병원으로 전원 시켰다는 사실을 두고 우리나라의 필수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김양균 기자)

■ 전공의 지원 뚝 끊긴 ‘기피진료과’ 의료계 고질적 문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은 필수 진료과의 현실이 어떤지 잘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전에도 필수의료 담당 의사 수 부족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올해 전문과목별 전공의 충원율을 보면 ▲흉부외과 47.9% ▲외과는 76.1% ▲산부인과 80.4%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지난 2018년도에 101.0%의 충원률에서 올해는 28.1%로 크게 낮아졌다.

최근 5년 동안 필수의료과의 전공의 충원률 합계는 ▲흉부외과 57.7% ▲소아청소년과 67.3% ▲비뇨의학과 79.0%로 6개 필수의료과목은 모두 100%를 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흉부외과 전문의 충원 시스템은 사실상 붕괴 상태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흉부외과 전문의 충원은 해마다 줄어 지난해 20명에 불과했다. 한 해 20명의 흉부외과 전문의 충원률은 최근 10년간 바뀌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앞선 진료과의 전문의를 취득하고도 이후 타 진료과로 변경하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전국의사조사 결과를 보면, ▲흉부외과 40.7% ▲외과 12.8% ▲산부인과 10.6% ▲응급의학과 4.3% 등이 다른 진료과목을 진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의료과목 정규정원 확보율(단위 : 명, %, 자료;보건복지부)

필수 진료과를 기피하는 이유는 격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부재 때문이다. 일단 뇌혈관질환 등 응급 수술은 상당수 응급상황으로 발생한다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해당 과의 전문의와 펠로우 등은 1년간 긴급대기로 당직을 서야 한다. 그렇지만 인력 자체가 적어 극소수의 인원이 번갈아가며 매일 당직을 서야한다. 대한의사협회는 당직을 서지만 환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별도의 당직비가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필수진료과 특성 상 응급을 요하거나 높은 치료 난이도 등으로 위험도가 높다는 점도 기피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는 타 진료과 대비 의료사고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2019년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가 갤럽에 의뢰한 흉부외과 의료진 실태조사에 따르면, 흉부외과 전문의는 주 5일 기준 평균 63.5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루 평균 12.7시간을 근무하며, 대부분 주말에도 근무를 해 1개월 평균 휴가 없는 당직 일수는 평균 5.1일이었다. 병원 외의 대기 근무는 한 달에 10.8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의 상급종합 병원, 종합병원 소속의 흉부외과 전문의 51.7%가 번아웃 상태이며, 향후 환자 위험 위해 가능성을 93.7%로 예상했다.

또한 낮은 의료수가도 문제로 지적된다. 가령, 뇌질환 관련 수술비용은 일본에 비해 대부분 20% 내외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수가 체계와 상대가치 점수제도 하에서 비용책정이 이뤄진다. 그렇지만 앞서 거론한 것과 같이 난이도와 위험도를 고려하면 의료수가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있다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참고로 흉부외과 전문의의 시간당 인건비는 2020년 12월 기준 4시간이 걸리는 폐업절제술 인건비의 경우, 수술료 150만원의 20%인 시간당 7만5천원으로 나타났다.

흉부외과 중증 환자 수술 치료 후 대부분의 경우 중환자실에서 환자 치료가 이뤄진다. 중환자실 흉부외과 전문의가 직접 치료의 시행을 맡는다. 문제는 중환자실 치료 시, 중환자의학과 전문의의 중환자실 관리료는 존재하지만 수술 후 중환자실 치료를 하는 흉부외과 전문의의 흉부외과 중환자 관리료는 산정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흉부외과 의사는 최소 임금 수준의 당직비를 받으며 환자를 치료하고, 병원 입장에서는 비용이 발생해 부담을 느끼는 구조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관련해 대한뇌졸중학회는 “만성적인 저수가 및 인력부족의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며 “뇌졸중집중치료실의 수가보다 간호간병통합병동의 수가가 더 높은 현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8일 의료계와의 간담회에서 “필수의료 인력 및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며 “체감할 수 있는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보건복지부)

■ 근본 해결 도출 상당한 시일 걸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인 지난 1월 일명 ‘필수의료 국가책임제’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공공정책 수가를 별도로 신설하겠다”며 중증외상센터·분만실·신생아실·노인성 질환 치료시설에 공공정책 수가를 순차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복지부도 앞서 의료계가 참여하는 ‘필수의료협의체’를 운영하며, 최근 부 내에 ‘필수의료지원 전담조직을 신설했다. 이기일 복지부 제2차관은 “필수의료 인력 및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며 “체감할 수 있는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필수진료과의 붕괴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비단 필수진료과에만 국한한 것도 아니다”라며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만큼 복지부가 차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고 제대로 작동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