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은행 직원 횡령 사건, 문제의 핵심을 봐야해요"

채용비리·DLF로부터 이어진 내부통제 미비가 불러온 참사

기자수첩입력 :2022/07/27 16:19    수정: 2022/07/28 09:02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흥미로운 '고래 퀴즈'가 등장한다. 우영우 변호사는 극중 "(이 재판은) 제가 좋아하는 고래 퀴즈 같아요. 몸무게가 20톤인 암컷 향고래가 500kg에 달하는 대왕 오징어를 먹고 6시간 뒤 1.3톤짜리 알을 낳았다면 이 암컷 향고래의 무게는 얼마일까요?"라고 선임 변호사에게 묻는다. 선임 변호사는 퉁명스레 "모르겠다"고 답한다. 우영우는 곧이어 말한다. "정답은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입니다. 고래는 포유류라 알이 아닌 새끼를 낳으니까요. 무게에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핵심을 봐야 해요."라고 일갈한다.

숫자가 나열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숫자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구성됐다.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는 포유류이기 때문에 '알을 낳을 수 없고, 질문 자체는 옳지 않다'고 질문자의 오류를 지적해야 한다.

고래 퀴즈가 흥미로운 건 우리는 매번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퀴즈를 하나 만들어 볼까 한다. '우리은행 퀴즈.' 

(사진=이미지투데이)

"우리은행은 2015년에 총 20명의 채용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9년 금리 연계형 파생상품(DLF)을 3천642억원 팔았고 일부 불완전판매로 고객 90% 이상이 원금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022년에는 우리은행 직원이 8년 간 697억3천만원을 횡령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은행은 어떤 제재를 받았을까요?"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정답은 "'처벌받은 적이 없다'입니다. 문제의 핵심을 봐야 해요. 문제의 핵심은 내부통제 미비인데 국내에서는 금융사의 내부통제 미비로 벌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이를 통해서 DLF 사태가 터졌을 때도 금융위원회의 제재 결정이 있었으나 행정소송을 통해 제재 처분 효력을 중지시키고 손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다시 회장이 됐습니다. 횡령 또한 은행은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에 은행에겐 어떤 죄도 물을 수가 없습니다가 정답입니다."

우리은행 직원의 횡령이 사법당국 판단까지 간 것은 아니지만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바를 살펴보면 기가 막힌다. 공문서와 사문서를 위조한 것은 기본이고, 팀장이 공석인 틈을 타서 팀장의 OTP를 훔쳐 출자한 기업의 주식까지 가로챘다고 한다. 이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드라마나 영화화할 법한 범죄 스토리다. 

그뿐만이 아니다. 직장인이 꿈꾼다는 '놀고 먹는 것'까지 가능했다.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1년 여 동안 파견을 나갔다고 허위 보고한 후 무단 결근했다. 은행에 마르지 않는 샘처럼 있는 돈을 퍼다가 동생 회사에 이체하고 자신도 쓰고, 근무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게 1만2천350명(정규직 일반직 기준)이 근무한 은행에서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인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우리은행 본점

우리은행의 횡령은 예고된 일일 수 있다. 채용비리, DLF까지 우리은행은 내부통제 미흡에 대한 금융당국의 질책이 있었지만, 이를 당장 수습하는데만 그쳤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늘 미흡하게 회피했고 결국 횡령까지 이어졌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내부통제를 고루 갖추기 위해서 강당에서 모여 '내부통제 강화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하며 책임지는 모습도 동반돼야 한다. 앞으로 이를 어기면 은행이 망할 수 있다는 각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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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우리은행의 예수부채는 332조1천억원이다. 즉 고객이 은행을 믿고 맡긴 예·적금의 금액이 332조1천억원이란 얘기다. 그뿐만 아니다. 은행의 상반기 이자이익은 3조4천810억원이다. 은행이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은 댓가가 바로 이자이익이다. 은행의 구조는 심플하다. 고객이 맡긴 돈을 고객에게 빌려주고 이익을 본다. 그런데 은행이 이렇게 허술한 지 안다면 고객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영우 변호사라면 이렇게 말하지 모른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우영우, 해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