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자동차시장의 '트로이 목마' 될 수 있을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차세대 카플레이'에 담긴 무서운 야심

데스크 칼럼입력 :2022/07/24 11:14    수정: 2022/07/25 07:5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을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세계적인 거장 파블로 피카소가 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겐 스티브 잡스가 자주 사용한 말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잡스는 '훔친다'는 행위를 '재발명'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중요한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재발명(re-invent)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007년 내놓은 아이폰입니다. 잡스는 당시 “전화기를 재발명하려고 했다”는 말로 아이폰의 잠재력을 강조했습니다.

애플이 지난 6월 WWDC에서 공개한 차세대 카플레이 화면. 애플 특유의 UI가 그대로 담겨 있다.

애플이 재발명한 대표적인 제품은 MP3 플레이어, 스마트폰, 태블릿입니다. 뒤늦게 뛰어든 뒤 시장의 기본 문법을 바꿔놨습니다. 

최근 들어 ‘애플의 혁신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자주 제기됩니다. 기존 산업을 흔들 뛰어난 ‘재발명’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때문일 겁니다.

물론 아직 애플은 잘 나갑니다. ‘아이폰 파워’는 여전히 막강합니다. 하지만 애플이 ‘아이폰 중심 구조’에 만족하고 있을 리는 없습니다. 현재에 안주하는 순간, 빛나는 미래의 희망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애플만 그런 건 아닙니다. 삼성 역시 애플 못지 않게 현재와 미래의 조화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 중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곳은 없을 겁니다.

■ 애플 "자동차 내 경험을 재발명하겠다" 야심찬 선언 

애플도 당연히 손을 놓고 있진 않습니다. 최근 애플이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재발명 후보’는 자동차입니다. 몇 년째 소문만 모락모락 나고 있는 애플카가 최종 종착지일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애플카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에 엄청난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애플카가 아니더라도 이미 애플은 자동차 산업의 문법을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그 선봉에 있는 것이 카플레이입니다. 2014년 첫 선을 보인 카플레이는 자동차 탑재 디스플레이를 아이폰과 연결해 다양한 기능을 쓸 수 있도록 해줍니다. 아이폰에 있는 음악을 카 오디오로 재생할 수도 있습니다. 지도앱을 가져다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애플이 지난 6월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공개한 차세대 카플레이는 심상치 않습니다. 그 동안 애플이 숨겨 왔던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차세대 카플레이는 차량 내 계기판을 전부 디지털 방식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 준다. (사진=씨넷)

무엇보다 애플은 차세대 카플레이를 공개하면서 “자동차 내 경험을 재발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날 애플은 포드·포르셰·아우디·혼다·닛산 등 14개 자동차업체들과 제휴를 했다고 공개했습니다. 14개 자동차업체들이 지난 해 내놓은 차량만 1천700만대에 달한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차세대 카플레이에는 애플의 이용자 경험을 자동차에 그대로 이식하겠다는 야심일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연료 계기판이나 속도계 같은 것들은 모두 ‘아이폰 버전’으로 대체됩니다.

그 뿐 아닙니다. 에어컨이나 히터, 라디오 등 각종 기능을 카플레이 화면으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센서에서 수집한 외부 온도와 속도, 연료량 등 데이터를 읽어들여 클러스터 계기판에 직접 표시합니다. 계기판에 표시되는 정보와 색상, 배경과 위젯도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카플레이가 설치된 차량은 어떤 것이든 차량내 화면을 ‘아이폰스럽게’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차세대 카플레이에서는 자동차 주계기판을 개인맞춤형 위젯으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다. (사진=애플)

이 정도 얘기를 들으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드웨어가 경쟁 포인트였던 PC나 스마트폰 시장이 어느 순간 ‘운영체제’에 종속됐던 상황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애플이 차세대 카플레이를 통해 그런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겁니다.

(그래서 ‘자동차업체들과 함께’ 차량내 경험을 개선하겠다는 애플의 말이 비즈니스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PC시장을 지배했던 MS도 늘 “PC제조업체들과 함께”란 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MS 전성기 때 PC업체들은 결코 대등한 파트너가 아니었습니다.)

■ 더 위협적인 부분은 차량·운전정보 모두 흡수

그런데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차세대 카플레이에서 가장 눈길을 부분은 자동차의 실시간 시스템 정보를 아이폰으로 모두 보내도록 하는 기능입니다. 애플의 소프트웨어가 이 정보를 분석, 통합한 뒤 자동차 화면에 띄워줍니다.

애플은 차세대 카플레이를 통해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는 방식과 관련된 고급 지식과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됩니다.

카플레이 새 버전은 자동차의 정보를 직접 읽어들여 계기판 화면까지 구성할 수 있다. (사진=애플)

미국 경제 전문매체 CNBC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줬습니다.

어떤 사람이 애플 지도 앱을 이용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어떤 경로로 어떻게 이동했는지는 애플이 실시간으로 수집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어떤 경로가 가장 인기 있으며, 언제 교통이 가장 혼잡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차세대 카플레이를 탑재하는 순간 모든 차량 데이터는 애플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이 정보는 애플카를 개발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루프펀드 창업자인 진 먼스터는 CNBC와 인터뷰에서 “이런 핵심 기능 통제권을 획득하는 것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면서 “그건 차량내 경험 지배권이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애플의 손으로 넘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습니다.

자.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차세대 카플레이를 탑재한 자동차의 디스플레이에는 아이폰의 디자인이 그대로 나옵니다. 아이폰으로 자동차의 각종 기능들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에어컨을 끄고 켜는 것부터 음악 재생 등 모든 작업을 아이폰으로 하게 됩니다. 심지어 근처 주유소를 검색한 뒤 아이폰으로 결제도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행정보를 비롯한 모든 운전 관련 정보는 전부 애플 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쯤 되면 사실상 애플이 자동차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과연 카플레이는, 애플카는, 제2의 '아이폰'이 될 수 있을까?

당연히 의문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소프트웨어라면 자동차업체들이 채택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

그런데 그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애플은 지난 6월 차세대 카플레이를 공개하면서 “미국 내 신차 중 98%에 카플레이가 탑재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 차량 구매자 중 79%는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차량만 구매하려 한다는 수치도 함께 공개했습니다.

당시 애플은 “카플레이는 새 차 구매 의향자들에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기능이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자동차업체들이 카플레이를 외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겁니다. 안드로이드를 탑재하는 순간 구글에 종속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애플의 차세대 카플레이를 지원하기로 한 14개 자동차 회사들. (사진=애플)

애플은 차세대 카플레이를 발표하면서 “14개 자동차제조사들은 카플레이에 굉장히 흥분된 반응을 보였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CNBC에 따르면 자동차업체들은 아직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랜드로버, 재규어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기업들은 “지금 논의 중이다”는 짤막한 논평만 했다고 CNBC가 전했습니다. 그들 역시 카플레이의 기능과 마케팅 파워 못지 않게 ‘자동차 지배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CNBC는 이런 소식을 전해주면서 “차세대 카플레이는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트로이 목마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과연 애플은 ‘자동차 시장의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을까요? MP3, 스마트폰, 태블릿에 이어 자동차산업까지 ‘재발명’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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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늘 ‘애플카’란 전제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지난 6월 공개한 차세대 카플레이는 오히려 다른 가능성을 엿보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부터 1년 정도가 애플과 자동차업계엔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고 중요한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