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한 기억이 있는가 하면, 떠오를 때마다 안 좋은 감정만 일어나는 나쁜 기억도 있다. 우리의 뇌는 기억과 감정을 어떻게 연결시킬까?
뇌가 특정 사건이나 경험을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기억하는 과정이 밝혀졌다.
미국 솔크연구소 연구진은 뇌에서 기억과 이에 대한 감정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물질을 발견, 학술지 '네이처'에 20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부정적 감정에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리란 기대다.
케이 타이 솔크연구소 교수는 "이 연구는 어떤 경험을 좋은 혹은 나쁜 기억으로 간직하게 하는 생물학적 과정에 손을 댄 것"이라며 "삶의 경험에 본질적인 이같은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라고 말했다.
경험에 대한 평가와 기억은 생존에 필수
사람이나 동물이 어떤 일이나 상황을 회피해야 할지 추구해야 할지 결정함에 있어 과거에 겪은 비슷한 경험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결정을 제대로 하려면 뇌가 좋았던 일에는 긍정적 느낌을, 안 좋았던 일에는 부정적 느낌을 배당해야 한다. 자극에 대해 좋고 나쁜 특정한 느낌 또는 값을 할당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앞서 2016년 쥐가 무언가를 학습할 때 뇌의 기저측편도(BLA)에 있는 뉴런 군집이 이같은 느낌 값을 할당하는 역할을 함을 발견한 바 있다. 쥐에게 어떤 음조를 들려주며 달콤한 먹이를 주자, BLA 내 한 뉴런 군집이 활성화됐다. 긍정적 느낌에 반응한 것이다. 반면, 다른 음조를 들려주며 쓴 먹이를 주었을 때엔 부정적 느낌에 의해 BLA 내 다른 뉴런군이 활성화됐다.
이는 마치 뇌 안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 신호 할당으로 이어지는 두 갈래 철로가 있는 것과 같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엔 무엇이 두 갈래 길 중 어느 쪽으로 기차가 가게 할지 결정하는 선로전환기 역할을 하는지는 알지 못 했다.
이를 밝히기 위해 연구진은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인 뉴로텐신에 주목했다. 뉴로텐신은 느낌 값 할당에 관여하는 세포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기억과 감정의 연계 과정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다른 신경물질들 역시 같은 세포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뉴로텐신의 역할을 특정할 수 없었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결정하는 물질 발견
연구진은 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 세포에서 뉴로텐신 생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제거했다.
뇌 속 BLA에 뉴로텐신 신호가 중단되자 쥐는 첫번째 음조와 달콤한 맛을 연결짓지 못 했다. 긍정적 느낌을 기억에 할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반면, 뉴로텐신이 없어도 안 좋은 경험에 부정적 느낌을 할당하는 기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쥐는 두번째 음조와 부정적 느낌을 더 강하게 연결시켰다. 안 좋은 경험에 부정적 느낌 값을 더 많이 주게 된 것이다.
또 뉴로텐신 수치를 높이자 보상을 학습하는 기능은 좋아지고 부정적 느낌 값은 적게 할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뉴로텐신이 기억과 느낌의 연결에 핵심 역할을 함을 확인한 것이다.
새 PTSD 치료법 열쇠 되나?
이 연구는 뇌가 기본적으로 공포와 같은 부정적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향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 좋은 자극에 부정적 반응을 할당하는 것이 뇌의 기본 기능이고, 뉴로텐신이 배출되어야만 긍정적 느낌 값을 할당할 수 있게 된다. 이같은 특성은 동물이 위험을 회피할 수 있게 해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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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제1저자인 하오 리 박사후연구원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 학습이 일어나도록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도 가능하다"라며 "궁극적으로는 이 신경 경로를 활용한 새 치료법 표적을 발견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향후 사람 뇌의 뉴로텐신 수치를 조정해 우울증이나 PTSD를 치료할 수 있을지 연구할 계획이다. 또 뉴로텐신과 관련된 다른 신호 전달 경로나 물질도 계속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