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반도체산업단지 언제 삽 뜨나…초조한 SK하이닉스

[반도체가 미래다-1부] ⑨7월 14일 착공식 취소…토지·용수 없어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2/07/14 08:15    수정: 2022/07/14 16:28

반도체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가 이제 기술 패권 경쟁과 4차 산업혁명 속에 새로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 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 안보 자산으로 평가 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반도체 산업 단지가 꾸려질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사진=용인시)

14일 첫 삽을 뜨기로 했던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착공식이 무산됐다.

용인일반산업단지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고당·죽능리에 415만㎡(약 126만평) 규모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 기지를 조성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19년 계획을 발표한지 3년이 됐다.

SK하이닉스가 이곳에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개를 짓기로 했다. 2025년 초 1기 건설 공사를 시작해 2027년 가동하는 게 목표다. SK하이닉스는 땅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용인 부지를 제때 확보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방안을 알아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이 웨이퍼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 예정인 3나노미터(nm·10억 분의 1m) 공정 웨이퍼다.(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스1)

땅·물 없어 못 짓는 반도체 공장

주민 설득과 인·허가 과정에서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착공이 1년 넘게 미뤄졌다. 토지 보상금 때문에 용인 부지는 농사 짓는 땅으로 남아있다.

용인일반산업단지 관계자는 “14일 하려던 착공식이 취소됐다”며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오고 땅 보상 문제도 100% 수용한 게 아니라 언제 공사를 시작할지 기약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7월에는 안 한다”고 덧붙였다.

산업부 관계자도 “14일로 검토했던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착공식이 미뤄졌다”며 “민원이 계속 제기되고 용수 문제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아서 이런 게 풀리면 공사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언제 할지 모른다”고 선을 그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착공식에 참석할지 검토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부터 반도체를 강조했다. 지난 5월에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맞이했다. 국무총리와 산업부 장관도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를 여러 차례 방문해 지원을 약속했다.

용인반도체산업단지 조감도(사진=용인시)

다른 데서 자구책 찾는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올해 초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총괄 사장은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직후 “만약 용인에 첫 공장이 들어오는 시점이 상당히 미뤄지면 다른 공간을 확보할 방안을 찾을 것이고, 실제로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용인 말고 다른 땅을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며 “기존 공장을 확장하고 효율적으로 돌리면서 공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노 사장은 “빨리 용인 부지를 확보해 새 공장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우리가 노력한다고 계획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노 사장은 “산업단지 부지를 조성하고 토지를 사들이는 일을 특수목적회사(SPC)가 한다”며 “SK하이닉스는 분양을 받아야만 공장을 지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천 M16 클린룸 크기가 앞으로 4~5년 동안 쓰기에 부족해 보인다’는 의견에 노 사장은 “(지난해 초 준공한) M16이 계획보다 빨리 램프업(Ramp-up·양산 전 생산능력을 끌어올리는 작업)되고 있다”며 “공간이 더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SK하이닉스 말고도 소재·부품·장비 기업 50여개사가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입주하기로 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5월 30일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몇 년째 같은 약속 반복하는 정부

정부는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서 일자리 3만1천개, 생산 효과 513조원, 부가가치 188조원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했다. 산업부는 지난 12일 경쟁국에 버금가는 반도체 제조 기반을 구축해 연구개발(R&D)과 생산을 돕고 금융·세제 혜택도 주겠다는 ‘새 정부 업무 계획’을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업계와 만날 때마다 반도체 기업 투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되풀이했다. 반도체 기업이 통 크게 투자하면 일자리가 늘고 공급망이 안정된다고 정부는 평가했다. 반도체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전기와 물을 반도체 특화 단지에서 쉽게 쓸 수 있게 돕겠다는 얘기도 빼지 않았다.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반도체 투자 지원 기구’를 꾸려 규제를 풀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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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국가는 반도체를 무기로 삼아 경쟁한다. 미국 연방의회 상원은 지난해 6월 ‘미국 혁신과 경쟁법(USICA·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을 가결했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만들라’면서 2천500억 달러(약 300조원)를 쏟아 붓는다. 중국은 2025년까지 중국에서 쓰는 반도체의 70%를 국산으로 조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유럽연합(EU)은 ‘집적회로법(Chips Act·반도체법)’을 만들어 480억 달러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은 자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거나 증설하면 투자액 절반을 정부가 대기로 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과거에도 규제에 발목 잡혀 투자를 바로 실행하지 못한 적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참여정부 시절 이천 본사에 추가 투자를 시도했으나 덩어리 환경 규제에 막혔다. 돌고 돌아 청주공장에 새 공장을 지으니 이천공장 규제가 풀리기도 했다. 수도권에서는 비수도권보다 깐깐한 규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