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알뜰폰 진출을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며 중소 알뜰폰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중소 알뜰폰 업계는 금융권이 금융상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알뜰폰을 이용하고 있으며, 망 도매대가 이하의 가격으로 요금제를 책정해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을 시작으로 시중은행들은 통신 등 생활서비스를 은행의 부수 업무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한은행도 KT와 제휴를 맺고 모바일뱅킹 앱 '쏠(SOL)'에서 알뜰폰 요금제 판매를 시작했다. 중소 알뜰폰 업계는 자생하기 어려워질 거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KB국민은행에 이어 신한은행도 알뜰폰에 관심
금융권은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브랜드 리브엠의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리브엠은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시행 이후 지정된 1호 혁신금융서비스로, 출시 2년만에 약 28만명의 가입자를 모으는 등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KB국민은행은 리브엠을 토대로 통신과 금융을 결합하며 소비자를 양쪽으로 확보하는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급여이체 실적이 있거나 국민은행 청약 관련 상품을 보유한 소비자에게는 리브엠 요금을 월 2천200원 할인해주고 있는데, 가입자 만족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신한은행도 최근 KT 통신망을 사용하는 KT엠모바일, 스카이라이프, 스테이지파이브, 세종텔레콤 등과 손잡고 제휴요금제 12종을 출시했다. 신한은행 자체가 알뜰폰 요금제를 출시한 건 아니지만, 소비자들은 신한은행의 모바일뱅킹 앱 '쏠(SOL)'에서 요금제에 가입할 수 있다.
신한은행도 알뜰폰과 연계해 MZ세대 소비자를 확보하고, 알뜰폰 가입자를 금융 가입자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경우 MZ세대 소비자를 많이 유치하고 싶어 하는데, MZ세대가 저렴한 요금제를 선호하는 만큼 알뜰폰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며 "이번 제휴로 쏠의 가입자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금융권, 알뜰폰에 관심 갖는 이유 살펴보니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금산분리란 금융자본인 은행과 산업자본인 기업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일정 지분 이상 지배할 수 없도록 만든 제도다.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을 지배할 경우 시장 경쟁이 제한되는 등 다양한 붖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다만 최근 금산분리 규제가 비교적 강하지 않은 인터넷전문은행이 큰 폭으로 성장하며, 기존 금융권에서는 오히려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오프라인 기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비스를 찾아야 하는데 금산분리 규제 때문에 수익 다각화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금융권은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알뜰폰 사업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지난달 8일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를 완화하겠다"며 금산분리 완화를 언급했다. 윤석열 행정부가 시장 자율·규제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기대감을 높인다.
금융권에서는 알뜰폰을 통해 막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서비스를 고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MZ세대의 선호도가 높은 알뜰폰을 활용해 금융 상품 가입자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통신업에 진출하면 금융데이터 뿐만 아니라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 마이데이터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중소 알뜰폰 업계 "금융권, 시장 경쟁 불가능하게 만들어"
중소 알뜰폰 업계는 금융권의 알뜰폰 시장 진출이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금융권이 알뜰폰을 주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망 도매대가 이하로 파격적인 상품을 만들어내 경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전국이동통신유통업계(KMDA)는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리브엠은 현재 도매대가 3만3천원인 음성·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24개월간 최저 2만4천800원에 제공하고 있다"며 "리브엠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막대한 요금할인을 고객들에게 상시 제공하고 파격적 사은품을 줬고 이동통신 매장이 어렵사리 모집한 가입자를 빼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소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금융권이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알뜰폰 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하게 된다면 통신시장은 금융권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이들의 알뜰폰 사업 진출은 중소 알뜰폰 숨을 못쉬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도 대기업은 중소 알뜰폰 업계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의 막대한 요금할인과 사은품을 토대로 가입자를 모으고 있다"며 "KB국민은행 외에 다른 은행까지 우후죽순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면 통신 시장 경쟁 질서가 왜곡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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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금융권과 대기업이 전체 알뜰폰 시장의 성장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달 29일 공개한 '이동통신 기획조사'에 따르면 리브엠의 만족도는 78%로 2년 연속 모든 통신사업자 중 1위에 올랐다. 리브엠의 만족도가 높은 만큼 소비자에게 알뜰폰 이미지를 개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홍보 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정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등 알뜰폰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