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은 4년에 한번, 2-4명 사이의 40세 이하 젊은 수학자에게 주어진다. 최근에는 되도록 4명을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4년에 한번, 4명이면 대략 1년에 1명이 받는 셈이다. 공동 수상도 없다. 나이 제한까지 생각하면 노벨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말이 과장도 아니다.
올해 허준이 교수와 함께 나란히 필즈상을 받은 젊은 수학자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연구했을까?
허 교수 외에 올해 필즈 메달의 주인공들은 ▲위고 뒤미닐-코팽 프랑스 고등과학원 교수 겸 제네바대학 교수 ▲제임스 메이나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마리나 비아조우스카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 교수이다. 허 교수가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의 접목을 시도했다면, 이들은 정수론과 확률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난제를 해결했다.
이중 비아조우스카 교수는 사상 두번째 여성 수상자이고, 현재 전쟁의 참화가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도 주목받았다.
■ 물리 세계의 변화를 확률로 풀어내다 - 위고 뒤미닐-코팽
뒤미닐-코팽 교수는 통계물리학을 연구한다. 혼돈스러워 보이는 물질과 입자의 움직임을 확률을 통해 예측하고 분석한다. 특히 물리적 상태가 변하는 상전이(phase transition) 현상을 3차원과 4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분수에서 뿜어져 나온 물은 바람에 따라 방향이 바뀐다. 개별 물 입자의 움직임을 하나 하나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확률을 통해 전체적 흐름을 예측할 수는 있다. 뒤미닐-코팽 교수는 "통계물리학이란 시스템의 작은 부분들을 분석해 극도로 복잡한 전체 시스템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자석도 비슷하다. 자석이 수많은 쌍극자로 구성돼 있다고 본다면, 이들 쌍극자의 움직임을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확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같은 쌍극자 구조를 격자로 표현한 것을 '이징 모형(Ising model)'이라 한다. 2차원에서의 이징 모형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뤄졌으나, 뒤미닐-코팽 교수는 이를 실제 자석과 같은 3차원으로 확장시켰다.
그의 연구는 입자 간 연결과 움직임을 탐구하는 '침투(percolation)'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조약돌이 가득 깔린 바닥 위에 물을 붓는다면 물은 조약돌 사이의 경로를 따라 이동할 것이고, 그 움직임 역시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수많은 점들이 서로 선으로 연결된 격자라 할 수 있다.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의 이동은 이동 조건을 결정짓는 변수 또는 가중치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온도가 0℃가 되어 물이 얼음으로 바뀌는 순간, 또는 가열된 자석이 자성을 잃는 순간과 같은 상변이는 이같은 격자 위 점들의 연결과 고립의 양상이 갑자기 바뀌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연구는 이러한 변화를 수학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최근엔 상전이를 일으키는 결정적 순간 직전 혹은 직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뒤미닐-코팽은 체육교사인 아버지와 댄서 및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자전거와 하이킹을 즐긴다. 어렸을 때 핸드볼 선수였던 그는 체육고등학교와 과학고등학교 중 고민하다 과학고를 선택했고, 학문을 선택한 후에는 물리학과 수학 중 고민하다 수학을 택했다. 수학적 확률로 물리 세계의 법칙을 탐구하는 그의 연구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수학자에 대한 통념과는 달리, 언제나 활발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대화하길 즐기는 '인싸'이기도 하다.
■ 수의 원자 '소수'의 비밀을 찾아 - 존 메이나드
메이나드 교수는 정수론, 특히 소수에 대한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소수란 '1과 자신 외 다른 수로 나눠지지 않는 수'를 말한다. 소수가 아닌 수는 소수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를테면, '6'은 '2'와 '3' 두 소수의 곱이다. 물질이 원자로 이뤄졌듯, 수는 소수로 이뤄졌다고 메이나드 교수는 말한다. 그는 "소수는 숫자의 기초 구성 요소이며 우주의 가장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소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때 배우는 내용이고, 수천년 간 연구된 주제이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많다.
소수 사이의 간격이 대표적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소수 사이의 간격은 계속 넓어진다. 그러다가도 어느 구간에서는 소수가 갑자기 많이 등장하며 서로 클러스터처럼 뭉쳐있기도 하다. 왜 이런 성질을 갖는지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메이나드 교수의 주요 업적으로는 '쌍둥이 소수'에 대한 연구가 있다. 쌍둥이 소수란 '5'와 '7' 같이 서로 2만큼 차이가 나는 소수의 쌍을 말한다. 이러한 소수의 쌍은 무한히 존재할 것으로 추측되나, 아직 증명은 되지 않았다.
메이나드 교수보다 조금 앞서 중국의 장이탕이란 학자가 간격이 7천만 이하인 소수의 쌍은 무한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메이나드 교수는 그와는 다른 방법을 써서 이 간격을 600까지 줄였다. 값이 적어도 600 차이 나는 소수의 쌍은 무한함을 보였다.
그는 요즘 '7'을 포함하지 않는 소수가 무한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100만진법에서 이런 성질이 있음을 증명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100진법까지 내려온 상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쓰는 십진법에서는 아직 증명하지 못 했다.
■ 24차원 공간에 물건 쌓기 - 마리나 비아조우스카
둥그런 대포알을 쏘는 옛날식 대포를 생각해 보자. 함선에 대포알을 쌓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또는 마트에서 과일을 가장 공간을 아껴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렇게 3차원 공간에 구 모양의 물체를 촘촘히 채우는 방법에 대한 문제를 '케플러 추측'이라 한다. 오렌지나 대포알의 경우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는 것이 가장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촘촘히 쌓을 수 있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3차원 이상의 고차원에서는 무엇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까? 여러 차원에 대해 여러가지 방법이 제안되었다. 대부분 차원에선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쌓는 방법밖에 발견되지 않았는데, 특이하게도 8차원과 24차원에서는 거의 완전하게 촘촘히 채우는 방법이 제안됐다. 이를 각각 'E8 격자(E8 Lattice)'와 '리치 격자(Leech Lattice)'라고 한다.
비아조우스카 교수는 8차원과 24차원에서 이 방법이 최적임을 정확한 수식으로 증명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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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구가 이렇게 쌓인 상태는 에너지 소비가 적은 최적 상태로 알려져 있다. 이 발견의 활용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전자의 움직임을 통제해 원하는 성질을 구현하거나 새로운 구조의 화합물을 만드는데 쓰일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복잡한 신호의 분석에도 쓰일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비아조우스카 교수는 2014년 수상자인 이란 출신의 고 마리암 미르자카니 스탠포드대학 교수에 이어 두번째 여성 수상자다. 그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고통받고 있기도 하다. 여동생과 조카는 스위스로 피난 왔지만 제부와 부모는 아직 우크라이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