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교수를 수학에 미치게 한 '공동 연구'의 즐거움

헬싱키 현지 연결해 기자 브리핑 개최

과학입력 :2022/07/06 16:46    수정: 2022/07/06 16:54

"서로 생각의 그릇에서 물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물이 늘어나는 경험이 주는 만족감이 수학의 매력입니다."

보통 수학자라면 종이나 칠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고독한 연구를 이어가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다른 학자와의 '공동 연구'를 수학의 최고 매력으로 꼽았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허준이 교수 '2022 필즈상' 수상기념 기자브리핑에 핀란드에서 화상으로 참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허 교수는 6일 고등과학원과 대한수학회 주최로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화상 및 현장 행사로 진행된 '2022 필즈상 수상기념 기자 브리핑'에서 "혼자보다 동료와 함께 생각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더 멀리, 더 깊이 갈 수 있다"라며 "그런 경험이 수학 연구자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생각의 그릇이라면 공동 연구는 그 물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과 같다"라며 "물을 옮기면 조금씩 물이 떨어져 줄어들 것 같은데, 물을 옮길 때마다 물이 2-3배로 늘어나 결국 이전엔 알지 못 했던 난해한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이런 경험에서 나오는 만족감에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십 수년 전 이런 수학의 매력에 빠진 후 아직 빠져나오지 못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허 교수가 학계에 이름을 새긴 '로타 추측'의 증명 역시  에릭 카츠 오하이오주립대 교수와 카림 아디프라시토 헤브류대학 교수와 공동 연구한 결과물이다.

허 교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 성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대부분 연구가 공동 연구이고 함께 한 연구자와의 기억이 새겨진 소중한 경험이라 어느 하나 꼽기 어렵다"라며 "공동 연구자와 소통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끄집어 내고, 우연을 거듭해 정답에 귀결하는 과정이 신기하고 소중하다"라고 말했다.

허준이 교수 (자료=IBS)

허 교수는 이같은 수학의 매력에 빠져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독립적으로 발전해 온 수학의 주요 줄기인 기하학과 해석학, 이산수학에서 '호지 구조'라는 같은 패턴이 특별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관찰되고 있다"라며 "이러한 패턴을 계속 찾아내고 무관해 보이는 구조에서 이러한 동일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밝히는데 약간이나마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초기 성장기를 함께 한 한국 교육에 대해선 "지금의 나를 만든 자양분이 된 소중한 시기였다"라고 기억했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다양한 친구와 한반에 40-50명씩 모여 하루 종일 생활하며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었다"라며 "그떄만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기"라고 말했다.

또 그는 "나 자신 젊은 수학자 중 하나라 말하기 껄끄러운 점이 있다"면서도 차세대 수학자들을 키우기 위해 "젊은 수학자가 맘 편하게 즐기며 장기적으로 프로젝트 추진할 안정감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브리핑에 참석한 김영훈 서울대 수리학부 교수는 "허 교수 역시 다른 많은 학생들처럼 전공과 진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먼길을 돌아온 아쉬움이 있다"라며 "영재가 재능을 빨리 발견하고 어린 나이부터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이다.

Q. 필즈상 수상 소식 언제 들었는지?

A. 올해 초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계수학연맹 회장이 묘한 시간대에 전화 통화를 요청해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는데, 선정 소식이었다.

(필즈상 선정 사실은 외부 발설해선 안 되는 보안 사항이다.) 자던 아내를 깨워 말을 해야 할까 10분 정도 고민했다. 결국 깨워 이야기했는데, 아내는 "그럴 줄 알았어" 한마디 하고 도로 잠들었다.

Q. 수학을 연구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A. 하루에 4시간 정도 연구에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와 시간을 보내거나 청소를 하며 다음날 준비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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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롤 모델은 누구인가?

A. 살면서 어려움 당할 때 딱 필요한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좋은 선생님, 친구를 그때마다 만났다.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영웅으로 생각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수첩에 적어 놓고 배우고 싶은 점 관찰하며 따라해 보기도 한다. 이분들 수십명이 내 롤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