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필즈상 허준이 교수는 과연 한국 교육의 자랑인가

수포자의 성공담보다 한국 시스템이 버린 천재의 수난기로 읽혀야

기자수첩입력 :2022/07/06 13:14    수정: 2022/07/06 13:56

5일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 기사에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인일뿐'이라는 심술궂은 댓글들이 간혹 보인다.

그는 부모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때 태어나 미국 국적을 얻은 미국인이다. 하지만 두살 전후해 한국에 돌아와 초중고등학교와 학사, 석사 과정을 모두 한국에서 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made in Korea’라고 할 수 있다.

허준이 교수 (자료=과기정통부)

드디어 한국 시스템에서 자라나 기초과학의 세계적 학자로 성장했을뿐 아니라 '노벨상급' 국제 인증까지 받은 사람이 나타났다.

하지만 여러 언론 인터뷰와 기사에 드러난 그의 인생 궤적을 보면 수학자 허준이는 한국 교육의 성공 사례가 아니라, 한국 교육에도 ‘불구하고’ 성장한 예외적 사례가 아닌가 싶다.

많은 인터뷰에 언급됐지만, 그는 초등학생 때 수학을 그리 잘 하지 못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못 외었고, 문제집을 풀기 싫어 해답을 베껴 적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혼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도드라지기 마련인 보통의 수학 영재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수학을 곧잘 한 듯하지만 시험 위주의 교육에 별 재미를 못 느꼈다고 한다. 학교가 영 별로였는지 그는 시인을 꿈꾸며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리고 검정고시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했다. 그의 수학 과외 선생이었던 사람이 지금 교수가 되었는데 당시 허준이 학생에 대해 “어려운 문제도 곧잘 풀었지만,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풀어 점수를 따는 시험 공부에는 약했다. 서울대 합격 소식에 ‘운이 좋았네’라 생각했다”라고 한 언론에 말했다.

허 교수는 대학 가서도 공부에 마음을 붙이지는 못했다. 우울증 때문에 학교를 12학기 이상 다녔고, D와 F 학점도 수두룩했다고 한다.

그러다 서울대에 석좌교수로 온 일본의 세계적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를 만나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그의 수업은 처음에 100명이 넘는 학생이 수강했는데, 내용이 너무 어려워 나중엔 손가락에 꼽을만큼만 남았다. 허 교수 역시 그의 수업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당시 과학기자를 하고 싶었던 그는 인터뷰라도 따볼 생각으로 버텼다고 한다.

그는 히로나카 교수와 같이 밥도 먹고 대화도 하는, 사제이자 일종의 친구가 된다.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도 관계는 이어졌고, 히로나카 교수에게 배운 특이점 이론은 허 교수가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할 때 '리드 추측'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리드 추측을 해결한 허 교수는 단숨에 수학계의 스타가 된다.

정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 석학을 한국에 초빙하는 교육 지원 프로그램이 효과를 본 것이라 자랑할만 하다. 히로나카 교수가 서울대에 오지 않았다면 허 교수의 학문적 여정은 완전히 달라졌으리란 점은 맞다. 놀라운 우연 혹은 운명이라 하겠다.

하지만 세계적 석학이지만 당시 이미 70대였고 연고도 별로 없을 외국에 떨어진 교수와, 수학자로서 성공하겠다는 기대가 없었기에 도리어 교수 옆에 붙어있을 수 있던 학생의 만남은 일반화하기엔 너무 특별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허 교수를 지적으로 자극한 것은 히로나카 교수 초빙 등을 포함한 한국의 교육 지원 제도였을까, 제도와는 무관한 히로나카 교수와의 유별난 케미였을까?

허 교수가 서울대 수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하며 좋은 가르침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전 초등 중등 대학으로 이어지는 모든 국내 교육 과정에서 그는 부적응자였다.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교수의 추천서로도 그는 12개 미국 학교 중 11곳에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일어서게 한 것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었을까? 매 단계마다 그를 밀어내던 한국 교육 시스템이? 한국의 교육이 그를 알아본 것은 맞을까?

언론은 그가 '수포자'였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사실 그의 이야기는 수포자의 성장기가 아니라 한국 시스템이 포용하지 못한 재능의 수난기일 수도 있다.

외부자가 알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차라리 최고 수준의 지성인인 허 교수의 부모가 일군 가정의 지적, 문화적, 정서적 자산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재수하는 동안 과외 선생을 붙여주고, 6년 대학 생활을 뒷받침할 경제적 여유도 중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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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똑똑한 아들이 자퇴와 휴학을 반복하고, F학점으로 가득찬 성적표를 받아오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참고 기다린 부모가 존경스럽다.

허 교수의 학문적 성장은 한 인간으로서 위대한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허 교수로 인해 한국 교육의 현실에 대한 질문은 더 무겁고 심각해져야 할 것 같다. 한국의 교육은 지금도 곳곳의 초중등학교에 있을 어린 허준이들을 포용하고 키울 수는 있을까? 아버지가 고려대 교수, 어머니가 서울대 교수가 아닌 학생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