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간이 '불쾌한 골짜기'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

[2022 가상인간]①태초 아담에서 최근의 로지까지

디지털경제입력 :2022/07/01 07:39    수정: 2022/07/04 16:51

인류 최후의 욕망은 인간을 뛰어넘는 피조물을 창조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여정에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가상인간 등이 있다. 메타버스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공간이 진화하면서 그 중 가상인간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아직 감정을 담지는 못하지만 가상공간에서는 여러 면에서 인간을 능가하기도 한다. 오히려 가상공간에서는 인간의 롤모델이 될지도 모르겠다. 가상인간의 역사부터, 현재 활동 상황, 연봉을 비롯한 그들의 지위와 능력 등에 대해 4회에 걸쳐 진단해본다.[편집자주]   


①태초 아담에서 최근의 로지까지

인간이 또 다른 생명을. 더 나아가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오랜 논란이다. 1818년에 출간된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이미 이런 주제가 다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이야기는 대단히 오래된 논란이며 여전히 논객을 위한 설전의 장이 될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논란이 아닌 관심을 받는 분야도 있다.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버추얼 휴먼(가상인간) 시장이다. 소설 속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피조물은 인간에게 혐오의 대상이었으나 인간이 가상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은 가상의 존재는 애정어린 시선을 받고 있는 관심의 대상이 됐다.

가상인간은 우리의 삶에 부쩍 가깝게 다가왔다. 발전한 기술은 디스플레이 밖에서 디스플레이 안에 존재하는 이들을 바라봤을 때 그 겉모습을 실제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이끌었다. 일각에서는 어설프게 사람을 닮은 존재를 봤을 때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이제는 넘어섰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불쾌한 골짜기 넘어 성큼 다가온 가상인간들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가 개발한 가상인간 로지가 인스타그램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실제 인물로 인식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인물의 성격이나 취향을 유추할 수 있는 게시물이 꾸준히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로지라는 인물이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잡았다. 마치 현실에서 사람을 차츰차츰 알아가는 과정처럼 말이다.

로지가 등장한 신한라이프 광고 유튜브 조회수는 6월 29일 현재 약 978만 회.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2만8천 명 수준이다. 어지간한 연예인에 버금가는 수준의 인지도와 화제성을 낳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상인간 로지(사진=로지 인스타그램).

로지 이외에도 다양한 가상인간이 등장하며 세간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산업 특성상 3D 캐릭터 개발을 꾸준히 이어온 게임업계에서 이런 기류가 확실히 드러난다.

스마일게이트는 VR 게임 포커스온유에 등장했던 캐릭터 한유아를 가상인간으로 제작했다. 한유아는 YG케이플러스와 전속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넷마블은 지난 1월 미디어간담회를 통해 가상인간 제나와 시우의 활동 계획을 선보였으며 크래프톤은 가상인간을 향후 게임 캐릭터와 가수, e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가상인간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는 해외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2016년 미국에서 등장한 가상인간 릴 미켈라는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모델이다. 미국 LA에 거주 중인 브라질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의 릴 미켈라는 여러 명품 브랜드와 협업한 바 있으며 2019년에는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가상인간 릴 미켈라(사진=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일본의 대표적인 가상인간으로는 스타트업 기업 AWW가 선보인 이마가 있다. 이마는 가구업체 이케아의 일본 내 매장 론칭 당시 해당 매장에서 3일간 일상을 보내는 영상에 등장하며 주목 받았다. 이 영상은 일본 도쿄 하라주쿠에 위치한 이케아 매장의 대형 화면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런 활발한 활용 사례에서 나타나듯 가상인간 시장 규모는 향후 지속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리서치앤마켓은 '글로벌 인플루언서 마케팅 플랫폼 시장 2021~2028' 보고서를 통해 향후 마케팅 시장에서 CGI 기반 가상인간을 활용한 가상 인플루언서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는 오는 2025년까지 가상인간 시장 규모가 14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에픽게임즈코리아 신광섭 본부장은 "움직이지 않는 이미지의 경우 실제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상인간의 수준이 발전했다"라며 "키오스크, 컨시어지 서비스 등에서 가상인간을 활용한 서비스가 이어지고, 추후 AR 글래스 등 기기 발전을 통해 눈앞에 사실적인 가상인간이 등장해 친구 혹은 동료로 함께하는 서비스로 발전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1996년에도 가상인간이 있었다

이런 가상인간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 곁으로 찾아온 것은 아니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가상인간을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으며 그 중 일부는 독특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1996년 일본 음악 시장에 등장한 가수 다테 교코는 세계 최초로 CG 가상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CG 캐릭터 활용 사례는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현실과 가상공간을 오가며 대중과 접촉하는 인물로 CG 캐릭터를 내세운 사례는 없었다.

다테 교코를 선보인 일본 연예기획사 호리프로는 당시 다테 교코의 장점으로 병들지 않고 스캔들도 없으며 다채널 시대에 대응해 전세계에 같은 시간에 노출시킬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목소리나 노래를 각 나라의 말로 전환해 글로벌 활동을 더욱 낮은 가격으로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2020년대 현재 산업계에서 가상인간의 장점으로 꼽는 특징을 이미 1990년대에도 알고 있었던 셈이다.

1996년 등장한 사이버가수 다테 교코.

새로운 개념이기에 큰 화제를 낳았던 다테 교코지만 그에 비해 사업적 성과는 미미했다. 1996년 11월 발매한 첫 싱글 '러브 커뮤니케이션'은 3만 장 판매에 그쳤는데 이는 당시 일본 음악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실패에 가깝다.

2년 후인 1998년에는 한국에도 첫 번째 사이버 가수인 아담이 등장했다. CG 캐릭터에 실제 가수의 목소리를 입힌 방식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인 아담은 첫 시사회에 당시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가 참석해 당시 IMF 체제에서 벤처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정보과학기술이 필요하다는 평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초반 행보 역시 인상적이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응원가를 발매하는가 하면 음료 광고에 출연하는 등 제법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98년 등장했던 국내 1호 사이버가수 아담.

이후 1998년에 국내 2호 사이버가수 류시아, 3호 사이버가수 사이다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류시아는 199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고건 전 서울시장과 유세 현장에서 사이버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당시 사이버가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다만 이런 흐름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류시아는 가수 측면에서 아담만큼 굵직한 성과를 거두지 못 했고 3호 사이버가수로 등장했던 사이다 역시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이후 제법 시간이 지난 2007년에 1호 사이버 연기자 조아가 공개되기도 했지만 역시 이렇다 할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상인간 활용 자유도 높아지고 비용은 줄어든다

가상인간 산업 관계자는 1990년대 연이어 등장했던 다양한 사이버가수가 가상인간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검증함과 함께 경제성 측면에서 숙제도 남겼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가상인간이 향후 더욱 다양한 플랫폼과 서비스를 넘나드는 활동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니티코리아 김범주 에반젤리즘 본부장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인간형 캐릭터가 실재 연예인처럼 활동할수 있다는 개념적 사례로서 의미가 있었지만 제작비용이 매우 비쌌다. 또한 당시 기술 한계로 인해 가상인간은 미리 만들어진 그림이나 영상으로써만 존재할 뿐 현실 연예인들처럼 시청자와 실시간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유니티 신규 테크데모 '에너미즈'에 구현된 가상인간.

이어서 "최근의 가상인간은 기술적 발전으로 인해 제작할 수 있는 콘텐츠의 자유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또한 다양한 수익모델 접목도 가능해 과거와 달리 경제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예전부터 사람을 닮은 존재를 만들고 그것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의 실시간 3D 와 인공지능 기술 발달은 가상인간의 표현이나 활용범위가 하나의 닫힌 체계에 머물지 않도록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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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게임즈코리아 신광섭 본부장은 "이제 가상인간은 움직이지 않는 이미지에서는 실제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전처럼 오랜 시간 랜더링을 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사실적인 사람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는 요즘이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키오스크, 컨시어지 서비스 또는 온라인 상담 서비스등에서 많은 가상인간이 서비스를 하게 되고 추후 AR 글래스등의 발전을 이뤄짐에 따라 가상인간이 이용자의 친구나 동료로 함께 하는 서비스로 발전해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