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개발자 몸값 더 오를 수밖에 없다

[개발자 연봉 전쟁, 그 1년 후-1부]①여전히 공급이 수요 못 따라가

컴퓨팅입력 :2022/06/22 09:44    수정: 2022/06/25 08:16

개발 인력 확보를 위한 연봉 인상 경쟁이 본격화된 지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실력 좋은 개발자를 채용하려면 초임 연봉부터 5천만원~6천만원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암묵적인 컨센서스가 IT 인력 채용시장에 자리잡았다. 대형 게임사, 인터넷플랫폼 업체 기준으로도 1천만원 이상 높아진 것이다.

개발자 몸값 상승은 스타트업부터 대형 IT기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규모에 상관없이 사람 구하는 게 어렵다. 연봉 수준을 쫓아가기 어려워진 중소중견 기업은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대형 IT 기업도 한정된 고급 개발자를 두고 뺏고 뺏기는 경쟁을 벌인다. 여기에 더해 인건비 부담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쩐의 전쟁식 개발자 확보 경쟁이 지속될까'란 의문이 고개를 드는 시점이다.

기업 내 개발자 채용관련 주요 의사결정권자인 최고기술책임자(CTO)들의 시각은 반대다. 연봉 인상 경쟁은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변화된 환경에 맞춰 따라야 하는 '그라운드룰'로 받아들이고, 차라리 고연봉 직군인 개발자들의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일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개발자 HR 전략이라고 조언한다.

■ 개발자 몸값이 더 오를 수 밖에 없는 이유

IT인력 채용 시장도 '수요와 공급 법칙'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전 산업의 기업이 IT기술을 비즈니스 혁신의 핵심 원동력으로 삼으면서, 개발자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수급차에 개발자 몸값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지난 2월 중소벤처기업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수급차로 인해 부족한 개발 인력이 최소 4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해 발표된 한국직원능력개발원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소프트웨어(SW)분야 신규 인력수요는 35만3천명+α이나, 이 기간 대학 정규과정과 정부 인력 양성 사업을 통해 배출될 공급규모는 약 32만4천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취업률이 70%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4만명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김명신 NHN클라우드 CTO는 수요처의 증가를 개발자 몸값이 오를 수 밖에 없는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개발자에 대한 수요처가 너무 늘어났다. 기존에 굴뚝 기업으로 여겨졌던 회사부터 최첨단 IT 회가까지 전체 산업에서 개발자가 필요하니까 수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런 (파격적 처우를 제시하는) 채용도 계속될 것이다"고 했다.

실제 국내 대표 제조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말 ICT혁신본부를 신설하고 NHN CTO 출신 진은숙 본부장(부사장)을 영입했다. 현대차의 IT·SW 인프라 혁신을 추진하고 개발자 중심의 조직문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인사다. 진 부사장은 중장기적으로 SW개발 인력을 1만명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2021년부터 향후 5년간 예상되는 개발자 수급차(자료=중소벤처기업부)

또 개발자 부족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해외에선 고액의 연봉을 제시한 인재 쟁탈전이 이미 수 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선 개발자 쟁탈전이 이제 시작됐다. 해외 상황을 보면 국내 IT인재 채용 경쟁도 지속·심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

최근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례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전체 직원 중 46%만 구글이 제공하는 총 보상(급여+상여)이 '다른 회사와 비교해 경쟁력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해외에서 임금 인상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인 김 CTO는 "마이크로소프트 개발자들도 현재 하고 있는 직무에 상관 없이 '구글로 옮기면 무조건 두 배 더 준다'는 식의 제안을 많이 받는다"며 "이런 경쟁 상황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도 최근 스톱옵션을 25% 상향 조정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어 "해외에서 이런 현상은 한 두 해 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다"며 "국내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오래 갈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원티드랩 황리건 엔지니어링 총괄도 "이미 오래전부터 해외 같은 경우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연봉 수준이 다른 직군에 비해 굉장히 높았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그렇지 않았는데 이번에 좀 조정이 이뤄졌다"며 "이제 국내 기업들도 수준을 높여 연봉 테이블을 만든 만큼, 장기적으로 이런 체제로 갈 것 같다"고 예상했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공룡 기업에 비해 네이버와 카카오는 작은 기업이다

해외와 국내 개발자 간 연봉 차이가 큰데, 채용 시장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는 점도 국내 개발자 몸값 상승이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요인이다.

최근 미국 금융정보회사 마이로그IQ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알파벳 직원들의 연봉 중간값은 29만5천884달러(약 3억7천만원)였다. 이는 전년 보다 8% 뛴 것이다. 페이스북 운영사인 메타의 직원 연봉 중간값은 전년 보다 11% 오른 29만2785달러(약 3억6천600만원)였다.

블라인드가 제공한 기업 정보에 따르면 국내 대표 IT 기업인 네이버의 계약연봉 중간값은 6천500만원 수준이다.

미국과 한국의 소득 수준이나 기업 규모를 감안하면 차이가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실력 좋은 개발자, 특히 석사·박사 학위를 가진 고급인력들은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을 동일 선상에 놓고 구직활동을 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은 글로벌 기업과도 경쟁해야 한다.

황 총괄은 "해외에 있는 개발자들과 얘기해 보면 한국도 최근 개발자 연봉이 많이 올랐지만 아직 돌아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진 않다고 얘기한다"며 "한국의 실력있는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해외에서 스카웃에 나서면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연봉 경쟁에 뛰어들어야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역으로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인재를 영입을 하려면 해외 IT기업 처우 수준을 맞춰야 할 것"이라며 "실제 최근 스타트업 사이 C레벨을 해외 테크 기업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영입하려는 트렌드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봉 경쟁은 그라운드룰...개발자 HR 전략 세워야

이제 연봉 경쟁이나 처우 개선 없이 개발자 뽑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연봉 앞세운 인재 쟁탈전을 IT 인력 채용 시장의 '그라운드룰'로 받아들여야 한다.

코인원 고재필 CTO는 "코로나 이후 개발자 구인난이 심화돼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시니어급 지원자는 찾기가 더더욱 어려워졌고, 그들이 기대하는 처우는 이전 대비 2배~2.5배 높아졌다"고 했다. 또 "이전에 두 명 뽑을 예산으로 이제 한 밖에 못 뽑는 상황인데, 과거 수준의 조건을 내건다면 한 명도 뽑을 수 없게 된게 현상황"이라고 짚었다.

NHN클라우드 김명신 CTO는 "예를들어 1년 동안 10명을 충원해 놓으면, 기존에 5명은 이탈해 나갈 만큼 연봉 인상 경쟁은 심화된 상황"이라며 "이제 그냥 사람을 뺏길 거라는 걸 전제로 전략을 짜야 한다. 이것이 그라운드룰이 됐다"고 진단했다.

개발자 확보에 투입되는 인건비는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필수 투자로 보고, 고임금 개발자의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끌어 올리는 전략을 찾는 것이 현상황에 맞는 접근방법이다.

원티드랩 황리건 엔지니어링 총괄은 "기업 입장에선 개발자가 없으면 사업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좋은 인재들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이제 연봉 수준이 올라간 상태에서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고 투입 대비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21년 개발자 연봉 인상표(자료=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실제 최근 기술 중심 기업들은 개발자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별도의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고 있다. 빠른 개발과 개선이 가능한 개발 방법론을 조직에 정착시키기 위해 애자일 코치를 직접 채용하고, 개발자 인사전략만 전담하는 HRBP도 뽑는다. 개발자 해커톤, 컨퍼런스, 사내 지식공유 같은 일을 전담하는 프로그램 매니저를 두는 경우도 있다. 고액의 연봉을 받는 프로 운동 선수들을 전문 코치들이 옆에서 훈련시키고 역량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과 같다.

황 총괄은 "연봉이 높아지니까 그만큼 결과물을 내야 하고, 여기에 과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며 "이미 해외에선 오래전부터 체계화된 영역인데 앞으로 국내 기업들도 엔지니어에 대한 매니지먼트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이민석 학장도 모든 규모의 기업에서 개발자 HR 전문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학장은 "초기 스타트업들은 HR에 관심이 적을 수 있는데, 벤처케피탈(VC)들이 HR부문에 지원을 많이 해야 한다. 회사 좀 더 커진 후에는 VC가 인사 조직 운영에 대한 가이드도 함께 고민해줄 필요가 있다. 채용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게 개발자들이 비선호할 만한 요인은 없는지 분석하고 바꾸는 전문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봉 인상 경쟁이 그라운드룰이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연봉만으로는 개발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만족스러운 처우는 기본이고 그 이상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개발자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개발문화, 기업이 풀고자하는 문제와 비전으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음 편에 계속…

[글 싣는 순서]

①IT 개발자 몸값 더 오를 수밖에 없다

②개발자 모시려면 일·비전·문화 다 바꿔라

③모든 기업이 '개발자 사관학교'로 변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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