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들은 아기 때 깔고 자던 1 미터 남짓의 파란 담요를 방마다 질질 끌고 돌아다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다 헤진 그 담요를 덮어야 잠에 들었다. 찰스 먼로 슐츠(Charles Monroe Schulz)의 만화 피너츠(Peanuts)에 등장하는 꼬마 ‘라이너스'의 행동이 꼭 그러하다. ‘라이너스의 담요’라 불리는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안전담요(security blanket)라고 부른다.
애착(attachment)에 관한 1958년 해리 할로우(Harry Frederick Harlow)의 실험은 유명하다. 아기 원숭이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대리모에 대한 대조실험이다. 가슴에 젖병을 가졌지만 차가운 철사 몸체를 가진 대리모 인형과 먹을 것은 없지만 부드러운 담요 천으로 몸을 감싼 대리모 사이에서 아기 원숭이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65년 여 전의 실험이 주는 메시지는 이렇다. 어린 영장류는 먹을 것을 주는 금속 엄마 보다도, 심리적 안정을 주는 담요 엄마에게 더욱 큰 애착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정서적 연대의 강화에 스킨십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일이다. 그러나 애착이 집착이 되는 것이 문제이다. 영장류는 중독된 사물과 떨어지면 분리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분리 불안은 대개 성장하면서 없어지곤 한다. 아들에게 예전의 담요 이야기를 상기시켰다. 돌아오는 답변은 “제가 그랬어요?” 오리발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는 담요가 안정을 주었던 것이 청소년기에는 온라인 게임, 성인이 되어서는 모바일 폰으로 바뀐다. 특히 휴대폰이 없이는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너무 많아졌다. 디지털 중독이다.
우리 지하철 안의 풍속은 어떨지 주위를 살펴보라. 90% 이상의 사람은 고개를 15도 이상 수그리고 자그만 휴대폰 창을 뚫어지게 보고 있을 것이다. 혹자는 소셜미디어, 게임, 다른 사람은 패션 쇼핑, 다른 사람은 뉴스, 고개를 쳐든 사람도 무선 이어폰으로 무언가를 듣고 있다. 잠시도 머리를 놀리지 않는다. 옆사람의 움직임에는 관심도 없다. 찻집에서도 집에서도 친구나 가족의 얼굴 대신에 전화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출신의 언론인 ‘리사 이오띠(Lisa Iotti)’가 지은 ‘8초 인류(미래의 창, 2022)’라는 책을 접했다. 저자는 현대의 인류가 어떤 사안에 8초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2000년에는 12초였는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나서는 8초로 떨어졌단다. 신인류를 '8초 메뚜기'라 할 만하다. 특히나 유투브, 인스타그램, 그리고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폐해에 대한 고발이 예사롭지 않다.
이들 업체의 휘슬 블로어인 구글의 전략가 출신 제임스 윌슨 윌리엄스(James Wilson Williams)와 페이스북의 가르시아 마르티네즈(Garsia Martines)의 증언을 보자. ‘소셜미디어 업체는 사용자의 접속시간이 돈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용자의 접속시간을 늘리기 위하여 첨단 기술을 사용한다. 인공지능 기술은 물론, 눈동자가 화면의 어떤 부분을 더 주목하는지, 어떤 조건이 오래도록 사용자를 더 머물게 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다.’ 그야말로 스마트폰 집착 유도 전문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곳에 있다.
두뇌유출(Brain drain)이라는 말이 있다. 디지털 중독에 빠진 우리는 ‘스마트폰이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지능력이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마이클 머저닉(Michael Merzenich)의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 연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예전에는 어린시절 한번 완성된 뇌는 시니어가 되어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머저닉은 어린시절 뇌의 대부분이 완성되지만, 나이가 들어도 뇌는 환경에 맞추어 끝임없이 발달하고 적응한다고 설명한다.
뇌 가소성 이론은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면, 우리 뇌의 한 부분이 사라진다고 경고한다. 마찬가지로 추정과 사고를 하는 대신에 휴대폰의 정보를 검색하는 일만을 반복한다면, 머리에서 사고력을 담당하는 시냅스는 아주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적응이긴 하다. 그러나, 기억이 사라지면 개인의 정체성도 증발하는 일이 문제이다.
조지 아미티지 밀러(George Amitage Miller) 박사는 우리의 기억은 7자리만 기억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연구자는 이미 인간의 기억은 4자리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인간 지성이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부자들은 자녀들의 휴대폰 사용을 최대한 금지시키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자녀의 스마트 기기 사용시간을 통제하고 식탁에서의 사용도 금한 일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실리콘밸리 상류층 부모들은 자녀들이 클릭 라이프에서 어떻게 벗어 나도록 유도할까? 감성교육은 독일에서 시작한 발도르프 학교가 유명하다. 인지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루돌프 슈타이너 (Rudolf Steiner)가 설립했다. 현재 캘리포니아에는 3개의 발도르프 학교가 있다. 2022년 약 4,79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유치원의 학비가 월 2천불, 고등학생은 월 3천불이 넘는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실리콘밸리 등지의 유명 IT기업의 임직원들이다. 그들은 디지털 중독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특히 저학년의 경우 철저하게 디지털 화면을 배제한다. 그 대신에 촉각, 미각, 청각, 후각, 시각의 오감을 강조하며, 종이책을 가까이하도록 한다. 손으로 쓰고, 다듬고, 만지고, 주무르는 인지활동이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이다. 이런 교육이 어린아이들의 뇌 성장을 균형 있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교실의 벽체조차 화학페인트가 아닌 천연재료로 페인팅을 한다. 벽을 붓이 아니라 천연 해면으로 손으로 두드려서 색칠을 입힌다. 저학년의 교실은 은은한 붉은색, 고학년은 파란 파스텔 톤이다. 모든 교실은 직사각형을 배제하고 같은 레이아웃이 하나도 없게 설계한다. 천장의 높낮이 형태와 조명 조차도 교실마다 다른 모델을 사용한다. 발도르프의 철학이 획일성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니 부자들의 소비성향 정보 서비스 업체인 ‘럭셔리 인스티튜트’의 대표인 밀턴 페드란차(Milton Pedraza)의 말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부의 상징은 소셜미디어를 버리고, 이메일에 바로 답장하지 않고, 최신 아이폰 모델로 무장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탄산음료를 덜 마시고 담배를 안 피우는 것처럼, 디지털 기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제 ‘낙오자’의 일이 되었다.” 평범한 가장이 듣기에는 거북한 말이지만, 스마트 기기에 관한 실리콘 밸리 부자들의 관점이기도 하다.
이오띠가 인용한 철학자 한병철의 말처럼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될수록 세상은 덜 명확해진다.”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계정에 스토리를 공유할수록 사람들은 그것들을 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뇌에서 기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철학자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의 말처럼 “기억의 기술은 생각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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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소셜미디어와 같은 외부 장치에 기록하는 것은 내 기억 시냅스를 없애는 일이다. 기억이 없어지니 생각도 없어지고 판단력도 사라진다. 갈수록 문해력도 떨어지고, 단기 기억도 사라지는 듯 하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이오띠는 Facebook 링크 시간도 줄이고, ‘좋아요’ 클릭에 집착하는 것도 버리라고 한다.
이오띠의 경고처럼 인류에게 반 디지털 혁명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삶의 주체로 살기 위해 두뇌유출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클릭과 삶을 맞바꾸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예언하는 영화처럼, 수백 년 후의 우리 후손들은 생각이 사라진 바이오 배터리가 될지 모른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