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없이 살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시킬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시킬 수도 있습니다. 1960~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 산업이 이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과 4차산업 혁명 속에 새로운 전환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안보 자산으로 평가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정부가 우리 수출 경제의 근간인 반도체 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해 내년부터 주요 대학에 첨단 반도체학과를 신설하며 인재 육성에 발벗고 나섰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장기적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반도체 시설 투자뿐 아니라 전문 인력 양성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 및 학계에서는 그동안 꾸준히 인재 육성에 목소리를 높여온 만큼 이번 정부의 정책에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반도체 인력을 키울 전문 교수 인력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당장 내년 3월부터 반도체학과 학생수가 늘어나는데, 반도체를 가르칠 전문 교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현재 심각한 반도체 인력난을 겪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까지 필요한 인력은 약 1만4천600명이다. 반도체 업계의 연간 부족 인력은 2020년 1천621명에 달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향후 10년간 반도체 분야에서 약 3만명이 부족하다고 전망했다.
올해 기준 국내 대학 반도체 계약학과 정원은 약 150명(성균관대, 연세대, 고려대) 정도인데, 내년에는 그나마 늘어나 360명(성균관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서강대, 한양대) 수준이 예상된다. 이는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 대비 크게 부족한 학생수다.
■ 정부·4대 과기원, 내년부터 반도체계약학과 도입…5년간 3140명 양성 목표
결국 정부는 반도체 핵심 인력 양성을 위해 특단의 조치에 나섰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30일 시스템 반도체 설계 실무인력(학사급) 양성사업과 인공지능(AI)반도체 고급인재 양성(석·박사급) 사업을 통해 향후 5년간 반도체설계구현 실무인재 3천140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다. 산업계와 4대 과학기술원이 협력해 반도체 인재양성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전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기원(GIST), 대구경북과기원(DGIST), 울산과기원(UNIST) 등 4대 과기원은 반도체계약학과를 도입해 내년부터 매년 200명 이상 학사급 인재를 양성하기로 했다. 계약학과란 산업체가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과 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학위과정이다.
동시에 연간 220명 수준의 석박사 인력 배출 규모를 5년내 500명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석박사급 인재 양성을 위해 KAIST와 UNIST는 산학협력 대학원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GIST와 DGIST는 반도체대학원 또는 반도체 전공의 설치를 검토할 계획이다.
더불어 과기부는 AI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서 서울대, 성균관대, 숭실대 등 3곳을 'AI반도체 융합인력양성' 사업을 수행할 대학으로 선정했다. 선정된 3개 대학은 3년간 대학 당 약 14억원 내외의 지원을 받는다. 각 대학은 전자·정보공학부, 컴퓨터공학부, 반도체 시스템공학과, 기계공학부 등 다수 학과가 참여한 AI반도체 연합전공을 개설하며, 연합전공은 하나의 독립된 전공으로 간주돼 이수 시 별도 학사 학위가 수여된다.
윤석열 대통령도 반도체 인재 육성에 힘을 실어줬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고,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우리 경제의 근간"이라며 "인재 양성을 위해 우리가 풀어야될 규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풀고 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할게 있다면 과감하게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학생 늘어나는데 가르칠 교수가 없다…전문 교수진 확보 시급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반도체 학과 신설만으로 인력난이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도체 계약학과를 잇따라 도입한다 해도 이들 학생을 키울 전문 교수 인력이 국내에 부족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학과가 신설되는 내년 3월까지 약 반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대학들은 교수진 확보 문제에 직면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인재 육성 정책을 크게 환영하나, 업계에서는 교수진 확보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대로 된 장비가 없는 공장에서 제조하면 불량품이 나오는 것과 같이 교수 충원 없이 학생만 늘리면 수업과 연구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수진 채용에 있어서 각 분야별로 특화된 전문가를 확보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용석 성균관대학교 공과대학 교수이자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은 "이번에 발표된 4대 과기원의 반도체계약학과 도입은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를 만들어 내겠다는 점에서 좋은 취지"라며서도 "분야별로 특화된 반도체 인력을 육성하고, 이에 맞는 대학교수를 채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설계 인력을, 메모리 분야에서는 공정 및 디바이스 설계 인력을 육성해야 하고, 반도체 생산라인에서는 제조 장비를 잘 다루는 오퍼레이션 인력을 키워내야 한다"라며 "최근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라인을 국내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증설하고 있기에 반도체 제조 장비 인력이 더욱 필요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 반도체 전문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겸임교수 보다 전임교수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반도체 계약학과 교수진의 상당수는 전임이 아닌 공과대 소속 겸임교수로 이뤄져 있다. 그동안 대학들로선 운영 기한이 정해진 계약 학과에 전임 교수를 채용하는 게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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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교수는 "특화된 인력을 육성하려면 전임교수를 뽑아야 한다"라며 "대학이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 또는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에서 실무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채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기업 입장에서는 필요로 하는 인력을 육성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으니, 겸직 발령을 내서 학생들의 실무 교육을 시킨다든가 등의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전무는 "교수 충원은 돈과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라며 "반도체를 전공한 전문가가 많기 때문에 근무 환경만 잘 갖춰진다면, 교수를 충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이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는데 투자한다는 것은 우리 반도체 업계에 고마운 일"이라며 "대학간 긍정적인 경쟁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