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AI반도체에서 새 신화 찾는다

[반도체가 미래다-1부] ③메모리 뒤 이을 AI반도체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2/06/02 15:28    수정: 2022/06/02 16:56

반도체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 산업이 이제 기술 패권 경쟁과 4차 산업혁명 속에 새로운 전환 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 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 안보 자산으로 평가 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지만 비메모리 반도체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다는 평가를 듣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비메모리 반도체를 육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도체 수출액 30% 증가’를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올렸다.

반도체 연구개발(R&D)을 강화해 지난해 1천280억 달러인 수출액을 2027년 1천700억 달러 규모로 늘린다는 구상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비롯해 경쟁력이 취약하다고 지적된 분야에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이 웨이퍼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 예정인 3나노미터(nm·10억 분의 1m) 공정 웨이퍼다.(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스1)

AI 반도체란 대규모 연산을 초고속·저전력으로 실행하는 ‘AI 두뇌’에 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다. 전력을 덜 쓰면서도 빠르게 수행해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뒤를 이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AI 반도체를 꼽았고, 투자에 나섰다.

메모리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정보 저장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쓰는 반도체라면 비메모리 반도체라고 부른다. 그만큼 비메모리 반도체 종류가 많고 시장 규모도 메모리 반도체보다 크다. 사물인터넷(IoT)과 자율주행 자동차가 발전하면서 비메모리 반도체 종류도 늘었다.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200개 정도라고 하면 전기차에는 500개, 자율주행차에는 2천개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사람 뇌를 닮은 반도체 논문 이미지(사진=삼성전자)

■ 삼성전자, 사람 뇌 닮은 반도체 개발

삼성전자는 사람 뇌를 닮은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와 차세대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인 뉴로모픽(Neuromorphic) 칩의 미래상을 내놨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사람 뇌 신경 구조를 모방한 반도체 소자다. 뉴로는 신경, 모픽은 형상을 뜻한다. 병렬로 작용하는 사람 뇌를 따라 병렬 형태 연산 구조를 지닌다. 인지·추론 같은 뇌 기능을 재현하는 게 목표다.

삼성전자는 뇌 신경망에서 뉴런(신경세포)들의 전기 신호를 나노 전극으로 초고감도로 측정해 뉴런 간 연결 지도를 복사하고 복사된 지도를 반도체에 붙여 넣는 기술을 제안했다.

함돈희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펠로우 겸 하버드대 교수와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 황성우 삼성SDS 사장, 김기남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이 이런 내용으로 공동 집필한 논문이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 실렸다.

삼성전자는 사람 뇌를 닮은 AI 반도체 기술로 인공신경망처리장치(NPU)를 주목했다. NPU는 AI로 사물을 인지하는 연산 장치다. 사람이 사물을 알아채는 과정을 따라한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NPU 분야 인력을 2천명 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강인엽 삼성전자 사장은 올해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고체반도체회로학회(ISSCC) 학술대회에서 “NPU는 중앙처리장치(CPU)보다 100배 효율적인 연산을 해낼 수 있다”며 “지금은 스마트폰 연산 능력이 벌이나 해파리 수준이지만 조만간 강아지 뇌 능력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에 연산 기능(PIM)을 적용한 첫 제품 GDDR6-AiM(사진=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 AI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

SK하이닉스는 올해 초 SK텔레콤에서 떨어져 나온 AI 반도체 기업 사피온(SAPEON)과 손잡고 AI 반도체 ‘사피온’을 개발했다. 이를 데이터센터에 사용하기로 했다. 솔루션 개발을 담당하는 안현 SK하이닉스 부사장은 “SK하이닉스는 자체 연산 기능을 갖춘 메모리 반도체로 새로운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며 “계속해서 기술을 진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PIM(Processing-In-Memory) 기술을 적용한 SK하이닉스 반도체와 사피온을 결합한 기술을 선보일 계획이다. PIM은 메모리 반도체에 연산 기능을 더해 AI와 빅데이터 처리 분야에서 데이터 접근의 정체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차세대 지능형 메모리 반도체라고 SK하이닉스는 소개했다.

SK하이닉스는 PIM을 적용한 첫 제품으로 ‘GDDR6-AiM(Accelerator in Memory)’ 시제품을 선보였다. 초당 16기가비트(Gbps) 속도로 정보를 처리하는 GDDR6 메모리에 연산 기능을 더했다.

SK하이닉스는 일반 D램 대신 GDDR6-AiM을 CPU·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탑재하면 연산 속도가 16배까지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기존 제품보다 에너지 소모량이 80% 가량 적다. PIM이 스스로 연산하기 때문에 CPU·GPU로 보내는 정보가 적어 CPU·GPU에서 쓰는 전력을 아낄 수 있다. 전력을 아끼면 기기에서 뿜는 탄소가 줄어 환경에도 이롭다고 SK하이닉스는 판단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커넥티드카 운영 체제에 들어가는 엔비디아 드라이브 반도체(사진=현대자동차그룹)

■ 엔비디아 주축 미국 아성 넘을까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GPU 세계 1위다. AI 반도체 NPU 기술도 가장 앞선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말 대만에서 열린 정보기술(IT) 박람회 ‘컴퓨텍스2022’에서 “AI는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기술”이라며 “앞으로 5년에 걸쳐 스마트폰 정보뿐 아니라 자동차는 물론 우리가 즐기는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자동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젠슨 황은 그러면서 “자동차 산업에 AI 반도체 역량을 쏟겠다”고 덧붙였다. 엔비디아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에 20년 동안 데이터센터에서부터 자율주행에 이르는 자동차용 컴퓨터 시스템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해 공급하기로 했다.

인텔은 엔비디아가 장악한 AI 반도체 시장을 겨냥해 ‘가우디2’를 최근 출시했다. 가우디2는 인텔이 2019년 인수한 이스라엘 스타트업 하바나랩스가 개발한 2세대 프로세서다. 인텔은 가우디2 연산 속도가 하바나의 기존 AI 칩보다 2배 빠르다고 자평했다.

미국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도 AI 반도체 자체 개발에 나섰다. 메타는 페이스북에 올라가는 영상 허용 여부를 판정하는 AI 반도체를 연구하고 있다. 사람과 대화하는 AI 비서를 구현하기 위해 상식을 가진 AI 반도체도 설계한다. 아마존도 음성 신호를 인식하는 AI 가속기 ‘인퍼런시아’로 AI 비서 ‘알렉사’를 구현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알고리즘에 따라 정밀도와 심층 신경망 구조를 재구성하며 AI 반도체에 도전하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5월 30일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반도체 업계와 ‘제1차 산업 전략 원탁회의’를 하고 있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 “우수 인재 양성에 화력 집중”

AI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을 추격하는 국내 반도체 업계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전문 인력 부족'을 꼽았다. 반도체학과 개설과 정원 확대, 산업 현장 수요에 맞는 인력 양성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본사가 지방에 있거나 규모가 작은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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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한 회사는 다국적 대기업 등으로 연구원 100명 이상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인재를 채용하려고 연구개발 시설을 수도권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환경 규제에 막혀 어려운 상황이다. 또 다른 지방 중소기업은 채용이 어려운데다 이직률이 높다고 한탄했다. 직원을 뽑아 2~3년 동안 가르치면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옮기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말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반도체 업계와 ‘제1차 산업 전략 원탁회의’를 열고 “반도체 인력 양성을 우선으로 삼겠다”며 “반도체 관련 학부 정원을 늘려 인력난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