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몸집을 키웠다. 인간의 양떼를 지키기 위해

미국 연구진, 신석기 시대 유럽 개 크기 변화 규명...목축하는 인간과 개 상호작용 밝혀

과학입력 :2022/05/30 13:11

알프스 지역의 목가적 풍경을 담은 사진이나 영화에는 종종 목동을 도와 양떼를 지키는 큰 개가 등장한다. 늑대에 맞서 양을 지키는 이런 대형 목양견들은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

애니메이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한 장면

유럽 지역 개의 몸집은 지난 8천 년에서 2천 년 전 사이 기간 동안 2배로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양과 염소 등 가축을 치는 인간을 도와 늑대 등 천적과 싸우기 위해서로 추정된다.

인간이 개를 길들이기 시작한 이후 개의 크기와 역할이 변화해 온 과정을 장기적 관점에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라는 평가다.

개의 가축화는 대략 3만 년에서 1만 5천 년 전 사이 일어났으나, 당시 개의 크기나 인간 사이에서 맡았던 정확한 역할 등에 대해선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크기는 늑대보다 작았고, 사냥을 돕거나 썰매를 끌었을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의 크기와 역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알기 위해, 미국 아리조나박물관 연구진은 오늘날 크로아티아 지역에 있는 고대 인간 거주지에서 발굴된 개 14마리의 유해를 분석했다. 크로아티아와 인근 지역에서 발굴된 다른 개 45마리 유해의 데이터도 함께 분석했다.  이 개들은 신석기 또는 구석기 후반인 8천 년 전에서 2천 년 전까지 살았다.

이 연구 결과는 '고고학 저널(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에 최근 실렸다.

약 7천 년 전 신석기 시대 거주지 유적에서 발견된 개의 턱 뼈 (자료=사이언스, SARAH MCCLURE)

오늘날 터키 지역인 아나톨리아와 중동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한 신석기 농경인들은 이 지역에는 없던 새로운 개를 데리고 왔다. 연구진은 이 개의 몸무게가 오늘날 보더콜리와 비슷한 15㎏ 정도였음을 밝혔다.

약 6천 년 전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개들의 평균 무게는 17㎏으로 늘었다. 로마 시대에 이르러서는 24㎏으로 늘었다. 로마 시대 목축업 종사자를 위한 조언을 담은 문서를 보면, 몸무게 32㎏ 이상의 대형견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늘날 유럽 지역에서 양치기 등에 쓰이는 '그레이트 피네레'와 비슷한 크기다.

이는 개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축을 치는 이동 방목을 돕는 역할을 점점 더 많이 맡게 된데 따른 변화라고 연구진은 보고 있다. 신석시 시대에 살았던 양의 이를 동위원소 분석법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높은 산으로 이동해 풀을 뜯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목양견 품종인 그레이트 피레네

연구를 이끈 아리조나박물관 마틴 웰커 학예사는 '사이언스'에 "높은 산지에서 가축을 치면 늑대나 곰 같은 맹수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라며 "이러한 상황에선 양치기 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간 고대 개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사냥을 돕는 사냥개를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 이 연구는 인간이 목축을 시작한 이후 개가 인간과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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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개의 몸집이 가장 큰 수준에 이르렀던 로마 시대는 크기가 작은 애완견 브리딩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당시 벽화 등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개는 목양견에서 치와와까지 품종에 따라 몸집 차이가 크게 갈린다. 이는 인간의 적극적인 개량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의 유전자에 소형화에 관여하는 변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에 따르면, 늑대에서 개가 갈라지기 전인 5만 년 전 늑대에서도 이같은 변이가 있었고 이는 인간이 길들이기 시작한 개에도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