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이 하나 떠오르면, 그와 연관된 다른 기억이 잇달아 소환되곤 한다. 인간의 뇌는 하나의 사건을 따로 떼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 속에서 여러 일을 그룹으로 묶어 기억하기 때문이다.
서로 가까운 시간대에 일어난 일들은 그렇지 않은 사건에 비해 더 관련성이 큰 것으로 간주되어 함께 기억된다. 이렇게 기억을 서로 연관시키는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약해진다.

그렇다면 뇌는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건들을 어떻게 분리하는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로스앤젤레스대학(UCLA) 연구진이 사건들을 서로 연관시켜 기억하게 하는 기능의 유전자를 찾았다.
노화에 따른 기억 감퇴나 치매 예방에 활용될 수 있으리란 기대다. 이 연구는 학술지 '네이처'에 25일(현지시간) 실렸다.
■ CCR5 유전자 발현하면 기억 능력 약화
연구진은 CCR5 수용체를 발현하는 CCR5 유전자에 주목했다. CCR5 수용체는 백혈구 표면에서 면역 관련 기능을 하는 수용체로, AIDS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HIV가 세포에 침투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뇌 세포가 HIV에 감염된 AIDS 환자는 기억 감퇴 증상을 겪는다.
연구진은 앞서 CCR5 유전자 발현이 기억 회상을 가로막는다는 사실도 밝힌 바 있다.
사람으로 치면 중년에 해당하는 쥐에게 CCR5 유전자 발현을 늘이자, 쥐는 자신이 지냈던 2개의 우리 사이의 연관성을 잊어버리는 등 여러 기억을 서로 연관시키는 능력에 문제를 나타냈다.
반면, CCR5 유전자를 억제한 쥐들은 보통 쥐는 연관시키지 못 하는 기억들을 서로 연관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 노화 따른 기억 능력 약화 막을 수 있을까?
연구진은 AIDS 증상의 진행을 억제하는 약물 마라비록이 CCR5 발현을 억제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알시노 실바 UCLA 의과대학 교수는 "나이 든 쥐에게 마라비록을 투여하자 마치 CCR5 유전자를 제거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라며 "쥐들이 기억들을 서로 연관시키는 능력을 회복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AIDS 관련 약물로 미국 식품의약청(FDA) 허기를 받은 마라비록이 중년기 이후 기억 감퇴를 막는데에도 쓰일 가능성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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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앞으로 초기 기억 감퇴 환자를 대상으로 마라비록의 영향을 측정하는 임상 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기억 능력이 약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기억 감퇴 증상의 진행을 늦추는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인간이 기억 능력을 약화시키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실바 교수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생물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며 "CCR5 유전자는 덜 중요한 세부 사항들을 걸러내 뇌가 의미있는 경험들을 연결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