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을 지릴까봐 생리대를 차고 환자를 돌본다.”
한 간호사의 증언이다. 간호사들은 고질적인 간호인력 수급 및 잦은 이직률 개선 등을 위해 간호법이 시급히 제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직능단체간 갈등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간호사들은 제정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간호사를 제외한 의사·간호조무사·임상병리사·방사선사·응급구조사·보건의료정보관리사 등은 한 목소리로 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법사위뿐만 아니라 국회 본회의 상정 및 의결 전 과정에서도 첨예한 갈등이 예상돼 사안은 이미 의료계 뿐만 아닌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까지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간호사들은 일선 의료현장의 상황에서 간호인력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벗어났다고 말한다. 기자가 만난 한 간호사는 “배가 아파도 방호복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 생리대를 착용하고 코로나19 확진자를 돌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후배 간호사들에게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란 약속을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 “간호사 떠나는 의료현장…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중소병원 재직 중인 김모 간호사는 중소병원이 간호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김 간호사는 “간호사 수 부족으로 입원병동을 줄이거나 폐쇄하기도 한다”며 “중소병원 간호사들은 거의 모든 업무를 맡아야 하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서 중소병원의 부족한 간호인력으로는 신입 간호사 교육은 물론 감염관리 예방조차 버겁다”고 말했다.
김 간호사는 이러한 현상이 경력 및 신규 간호사의 잦은 이직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간호법에 명시된 간호인력센터 지원으로 이러한 현장의 어려움이 해소되길 바란다”며 “간호법은 환자 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강조했다.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 중인 서모 간호사는 “임신과 출산을 앞둔 간호사들은 분만 후 당장 3교대 근무에 투입돼 유산이나 조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결국 육아를 위해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퇴사율 증가는 숙련 간호사 부족과 함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신규 간호사가 환자 안전을 위협, 다시 이들의 퇴사를 증가시킨다”며 “간호법 제정으로 임신·출산에 따른 간호사의 근로환경 개선을 통해 출산율을 높이고 퇴사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간호사는 교육전담 간호사의 부재로 인한 폐해도 지적한다. 그는 “경력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 교육에 따른 업무과중을 호소하고 이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교육 전담 간호사 투입으로 경력 간호사의 업무 과중이 경감되고 신규 간호사들의 빠른 적응과 이직률을 낮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상급종합병원의 수간호사로 재직 중인 조모 간호사는 수간호사로 근무한 5년 동안 간호사들이 처한 열악한 업무 환경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부서관리자로써 무력감을 느꼈다”며 “신규 간호사는 5주~8주 교육 후 혼자 12명 이상의 환자를 돌봐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신입 간호사의 절반은 버티질 못하고 그만둔다”며 “사직 면담 시 간호사들은 업무 부담감으로 생리불순과 불면증 등 건강 이상을 호소하거나 자존감이 떨어져서 본인을 실패자로 여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조 간호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간호사의 체계적인 전문 교육과 인력 수급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은 공공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공병원에 재직 중인 이모 간호사는 “간호사 한 명당 15명이 넘는 환자를 감당해야 해서 식사도 물론 8시간 근무 후 퇴근도 불가능하다”며 “환자를 돌보며 놓치는 한, 두 가지가 환자에게 치명적일까 봐 중압감에 시달린다”고 증언했다.
이 간호사는 “만약 한 환자가 중증 환자가 되면 나머지 환자의 돌봄은 포기해야 한다”며 “의사수가 적어서 간호사가 시술, 처방, 대리수술, 처방, 진료기록 작성까지 맡는 일이 흔해서 이것이 의사 업무인지도 모르고 시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메르스 이후 정부는 인력확충과 감염병 전담병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코로나19 3년이 되도록 현장 근무자들은 도대체 뭐가 변한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며 “변을 지릴까봐 생리대를 차고 환자를 돌보는 후배들에게 더 좋아질 거라고 말하지 못한다”고 말해 간호법 제정을 통한 업무 환경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호법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통과를 주도한 김성주 간사(민주당)는 “간호법 논란은 직역간 갈등과 대립 양상으로 비쳐지고 있다”며 “국민 입장에서 간호법의 의미가 무엇인지, 환자들에게 어떤 이익이 될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간호법 제정안을 상정하지 않은 채 산회했다. 대한간호협회는 “국회 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말을 아꼈고, 의사협회는 “국민 건강권 보호를 위해 끝까지 법안을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