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디지털서비스법 vs 한국의 포털 뉴스 규제법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정치적 의도-기술적 고려 사이 균형잡기

데스크 칼럼입력 :2022/04/26 10:55    수정: 2022/04/26 11:0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유럽연합(EU)이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유럽의회와 EU 회원국들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디지털서비스법(DSA)의 큰 틀에 합의하면서 법제화 작업에 탄력이 붙었다. 

이로써 2020년 12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처음 제안한 디지털서비스법은 16개월 만에 입법 작업의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디지털시장법(DMA)에 이어 디지털서비스법에 최종 합의하면서 플랫폼 규제의 양대축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디지털서비스법은 법안을 확정한 뒤 최종 표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큰 틀의 합의 과정을 거친 만큼 늦어도 2024년 1월부터는 본격 발효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기. (사진=픽사베이)

■ "오프라인에서 불법 행위는 온라인에서도 금지"

EU의 디지털서비스법과 디지털시장법은 연매출 65억 유로, 이용자 4500만 명을 웃돌면서 EU 3개국 이상에서 사용되는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문지기)로 지정하고 강력한 규제를 실시한다. 

사실상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미국 거대 플랫폼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런 노골적인 의도에도 불구하고 법 내용은 굉장히 치밀하다.

디지털서비스법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허위정보나 혐오발언들이 무차별 확대 재생산되는 부작용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플랫폼 사업자들이 불법 콘텐츠에 대해 좀 더 강력한 책임을 갖도록 했다.

구글, 메타 같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은 혐오 발언, 테러 선동, 아동 성적 학대 등의 내용을 포함한 불법 콘텐츠 처리 절차를 신속하게 마련해야만 한다. 다만 어떤 것들이 불법 콘텐츠에 해당되는지는 명기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개별 국가들의 자율권에 맡기기로 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C 부위원장. (사진=유럽연합)

인종, 종교, 성별을 활용한 타깃 광고도 엄격하게 제한된다. 미성년자를 겨냥한 타깃 광고 역시 금지된다.

이용자들을 현혹케 하는 이른바 ‘다크 패턴(dark patterns)’도 금지 대상에 포함됐다. 다크 패턴이란 이용자들을 혼란케 하거나 기만하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특정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팝업 광고에 있는 ‘X’ 표시를 누르면 해당 광고 페이지로 연결되도록 하는 등의 행위가 ‘다크 패턴'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회원 가입 탈퇴 절차를 좀 더 간결하게 하도록 하는 규정도 있다. 이에 따라 회원 탈퇴 절차는 가입과 같은 수준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페이스북 같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도 규제 대상이다. 디지털서비스법이 발효되면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이용자들에게 추천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공개해야만 한다.

또 개인 정보를 기반으로 맞춤형 추천을 하는 행위도 규제 대상이다. 따라서 인스타그램 같은 경우 ‘최신 게시물이 최상단에 노출되도록’ 표출 방식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디지털서비스법의 핵심은 “오프라인에서 불법으로 간주되는 행위는 온라인에서도 금지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지난 16개월 동안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과 작동 원리를 깊이 있게 연구한 뒤 그 환경에 적합한 법안을 마련했다.

■ 목적의식이 너무 강하게 작동한 포털 뉴스 규제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쩔 수 없이 국내 상황을 돌아보게 된다. 최근 국내에서는 ’포털의 자체편집·기사추천 제한'과 '포털 제휴 언론사 차별 금지’를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입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확정한 법안은 포털 뉴스 서비스의 기술적 특징에 대한 고려보다는 ‘뉴스 편집행위 금지’란 목적의식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입점사를 결정하지 말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하라는 규정 역시 논란이 적지 않아 보인다. 포털 뉴스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많은 부작용은 입점사 제한 때문에 생겼다기 보다는, 다양한 반칙 행위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어서 생긴 측면이 더 강하다. 그런 만큼 포털 뉴스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술적 특성을 잘 살펴야만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법적인 고려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조건 문을 활짝 열어라”고 할 경우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 (사진=뉴스1)

자체 편집 제한 조항 역시 '뒷북' 느낌이 강하다. 최근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들은 사실상 자체 편집에서 손을 떼는 수순에 들어간 상태다. 그런 만큼 자체 편집 여부보다는 추천 알고리즘을 비롯한 기술적 요인들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담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고민 과정 없이 "알고리즘이나 자체 기준에 따라 기사 추천·배열·편집을 못하게 제한"하는 것은 시장에 대한 성찰보다는 목적이 너무 앞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렇다고 유럽의 디지털서비스법이 완벽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자국 시장을 보호하려는 목적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것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입법 환경도 다른 만큼 두 법을 직접 비교하는 건 다소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거대 플랫폼의 공세로부터 건전한 시장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목적의식은 비슷해 보인다.

그런 공통점을 놓고 보면 두 법의 차이가 두드러져 보인다. 온라인 플랫폼의 기술적 특성을 고려하고, 현재 나타난 부작용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크게 달라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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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뉴스 서비스 규제란 강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 작업에선 플랫폼 시대 뉴스 생태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았다. 특정 대상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앞선 반면, 시장 및 기술적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고려는 생략된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더 많이 아쉽다.

(덧글)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한 마디 덧붙인다. 알고리즘을 통한 뉴스추천 금지가 부당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같은 결론을 도출하더라도, 알고리즘 추천이 갖는 의미나 부작용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그래야만 법적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