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료] "비대면 의료의 핵심은 습관이다"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 "제도 개선 방향 다 함께 찾아야"

헬스케어입력 :2022/04/22 15:17    수정: 2022/04/24 10:13

혹자는 미래의료가 정보통신 기술과 결합해 개인·맞춤·예측의 방향으로 발전하리라 전망하지만, 이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신종 감염병·기후 위기·4차 산업혁명 등 급격한, 혹은 적대적인 변화 앞에 미래의료는 어떠한 방향이어야 할지 산·학·연과 함께 고민을 시작해본다. [편집자주]

“불모지 같은 한국 의료정보 산업에서 살아남으려고 고민을 많이 했다.”

비트컴퓨터 전진옥 대표의 말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엔지니어 출신인 전 대표는 비트컴퓨터에서만 20여년을 보냈다. 그는 기자에게 “40여 년간 외로운 싸움을 했다”고 말했다. 좀 의외였다. 국내 의료정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 대표가 왜 앓는 소리?

한참 대화를 나눠보니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전 대표는 “법·제도가 개정돼 규제가 해소된다면 동반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이사

-비트컴퓨터는 어떤 회사인가.

“비트컴퓨터는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다. 최근에는 진료서비스를  일상에서도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비트컴퓨터는 2000년대 초반 해외진출을 시작, 현재 태국·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몽골·캄보디아·우즈베키스탄 등 13개국에 진출했다. 특히, 태국에서는 50여개소의 병원을 고객을 두고 시장확대를 늘려가고 있다.

-일찍부터 의료기관에 클라우드 기반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사실 클라우드 환경으로의 전환은 이미 IT업계에서는 일반화돼 있었다. 의료서비스의 클라우드 전환에 대해서는 비트컴퓨터가 단연 빨랐다. 2017년부터 우리나라의 의료정보사업 분야에서 우리가 클라우드 방식을 처음으로 출시해서 시장을 만들었다.”

-당시 의료계 반응은 어땠나.

“의료데이터는 의료기관에 보관해야 했는데, 클라우드를 적용하면 서비스 질이 확연히 개선될 수 있었다. 의료기관은 비용 절감이 우선 관심사였다. 상대적으로 데이터의 보안·백업·확장성 등의 질 개선보다 비용 측면으로 접근을 해서 처음에는 어려움이 좀 있었다. 여기에 의료데이터 유출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어떻게 하긴. 우리가 선도 기업이니 하나, 하나 설득하면서 시장을 개척한 거지(웃음).”

사진=김양균 기자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에 관심이 높다.

“팬데믹 이전까지 환경과 에너지가 공중보건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인식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보건의료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일상과 경제 모두가 바뀌지 않았나. 이전까지 병원은 아프고 병들었을때나 찾아가는 곳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랬던 게 감염병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병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의 대응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일상에서 예방·치료·진료가 이뤄진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말이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질 것이라고 의료기관과 의료서비스 이용자 모두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의료계가 시류 변화를 더디게 받아들이지 않나.

“의사들은 좀 보수적인 측면이 있지. ICT의 발전에도 이를 의료에 적극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주저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게 지금은 변하는 것 같다. 우리로선 할 일이 더 많아지게 된 셈이고.”

-어떤?

“우선 환자와 의료진을 잇는 연결 채널이 많아졌다. 비대면 의료가 대표적이다.”

-비트컴퓨터도 꽤 오랫동안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해왔다.

“정말 많은 정부 시범사업을 맡아서 했다. 섬·군부대·교도소처럼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곳이 많다. 우린 그런 곳들과 의사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노하우는 이런 거다. 어디까지 했고, 어떤 것을 수행할 수 있느냐. 의료기기와 연동해 생체신호를 전달하거나 어떤 분야가 가장 적합하게 쓰일지를 고민할 때 우린 최적화 모델을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정부 주도의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에서 비트컴퓨터는 의료진간 원격진료 등에 있어 다수 사업에 참여해 설비를 구축했다. 전 대표는 비대면 의료도 육상형·해상형·이동형·고정형 등의 다양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현 정부도 규제 혁신 의지가 강한 것 같다.

“이전까지 의료법에 따라, 모든 의료데이터는 의료기관에만 보관이 가능했다. 못 믿겠지만! 2002년까지만 해도 전자의무기록은 불법이었다. 모든 것은 종이로 출력해서 보관해야 했다. 이후 전자 의무기록이 일반화됐지만, 그러한 데이터조차 의료기관에만 보관해야 했다. 2017년까지도 그랬다.

그러다 그 해에 클라우드 촉진법이 개정되어서 의료데이터도 외부에서 보관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아직도 종이로만 보관했다면 그 엄청난 양을 어떻게 보관할 것이며, 제대로 찾을 수도 없었을 거다. 진료 정보 교류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외부 클라우드 보관으로 정보 교류가 활발해지고 의료 빅데이터의 활용도 가능해졌다. 규제 혁신은 언제나 필요하다.”

-새 정부에 바라는 점도 규제 개혁인가.

“좀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우버 개발자들이 왕진서비스를 하고 있다. 미국은 환자가 부르면 의사가 방문해서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약 배달, 비대면 진료 등 다양한 사업 영역이 존재한다. 의료 영리화란 비판도 있어서 물론 이 정도까지 규제가 풀리기란 어려울 것이다.

사실 의료는 복지의 성격이 있어서 완전히 시장 자율에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원화 정책을 대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시장 자율화와 그로 인한 수익은 저소득을 위한 재투자 방식으로 말이다. 규제로 막아만 놓아선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미국 투자의 40%도 헬스케어다. 우리는 우선 시장부터 열려야 한다.”

-아직 의료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비대면 의료는 허용된 게 아니다.

“우린 정말 오랫동안 투자를 해왔다. 해외에도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많이 수출했고.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허용이 안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 이후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관련해서 여러 스타트업도 나오고 있고.

“규제가 존재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의사들도 ICT와 접목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스타트업들도 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이 자체는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우려도 있나.

“헬스케어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이나 투자가 늘고 있는 것은 물론 고무적이다. 시장이 확대되면 국가경쟁력도 키울 수 있다. 그런데 규제가 존재하다보니 스타트업들은 기존 업체들의 수익 모델을 무너뜨리는 형식으로 영업을 한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업계를 갉아먹는 형국이다. 이건 산업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시장이 망가지거나 왜곡될 수 있다.

헬스케어가 좋은 비즈니스 영역이라는 장밋빛 환상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린 의원급에 5천여 대의 비대면 단말기를 보급했다. 어떤 스타트업이 이정도의 인프라 지원을 할 수 있겠나. 스타트업들은 사실 뚜렷한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있고, 그렇게 가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뭐가 남나. 피폐해진 시장은 기존 사업자들이 안고 가야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지 않나?”

사진=김양균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단추는 꿰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의료와 IT선진국인데, 비대면 의료는 가장 낙후돼 있다. 일본과 중국도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다. 새 정부는 지금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그렇다고 규제만 푼다고 끝은 아닐 텐데.

“비대면 의료의 핵심은 습관이다. 미국 의료기관에서 대면 진료비는 200달러이지만, 비대면 진료비는 50달러다. 서비스 질이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차등을 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도입하더라도 대면 진료 대비 가격을 어떻게 책정할지가 관건이다. 진료비 책정 시 책임과 시설투자 등의 문제는 어떻게 풀까. 비대면 진료를 위한 여러 절차를 고려한 비용 문제 등까지 생각하면 꽤 복잡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