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망(網)사용료를 두고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오는 20일 진행될 예정이었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2소위)가 파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법안2소위에서 망 사용료 관련 법안을 다룰 것으로 첨쳐왔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 발의를 이유로 법안2소위 일정을 거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기 위해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을 4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기로 당론을 모으자, 이에 반발하는 의미로 일정을 거부한 것이다.
■ 과방위 계류 중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살펴보니
그동안 통신업계에서는 국회가 법안2소위에서 망 사용료와 관련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의 통합 법안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해왔다. 현재 과방위에 계류 중인 법안 6건이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 망 사용료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정안은 총 6건 발의돼 있다. 발의된 개정안은 세부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CP에 대한 망 이용료 납부를 의무화해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가장 먼저 발의된 전혜숙 민주당 의원안의 경우, 부가통신사업자가 정보통신망 이용 또는 제공 계약을 할 때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 또는 제한을 부당하게 부과하는 행위 등을 금지행위 유형으로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방송통신위원회가 통신망 이용 또는 제공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도 추가한다고 나와 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은 부가통신사업자가 기간통신사업자의 망을 이용해 인터넷접속역무를 제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접속역무의 제공에 필요한 망의 구성 및 트래픽 양에 비춰 정당한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망 사용료와 관련해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소송을 진행 중이고, 해당 소송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상황이라 업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빠른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난달 스페인에서 진행된 MWC22에서도 약 750개 통신사업자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CP)가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망 사용료 두고 소송 진행 중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갈등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브로드밴드가 방통위에 망 사용료 협상 재정을 신청하자, 이듬해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소송을 제기했다. 방통위의 협상 재정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6월 진행된 1심에서 재판부는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 넷플릭스는 즉각 항소했고, SK브로드밴드도 넷플릭스에 부당이득을 반환하라는 내용의 반소를 제기하며 맞불을 놓았다. 2심은 양측 소송을 병합해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는 자체 개발한 트래픽 절감 시스템인 '오픈 커넥트 얼라이언스'(OCA)를 이용하면 망 사용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OCA는 넷플릭스가 자체 개발한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로, 세계 각지에 설치된 넷플릭스 콘텐츠 전용 캐시서버인 OCA와 이를 연결하는 회선으로 구성돼 있다.
넷플릭스는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는 자신과 가까운 곳의 OCA에 직접 연결하고, 넷플릭스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OCA를 망 내에 분산 설치하면 트래픽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수많은 ISP처럼 SK브로드밴드도 OCA를 망 내에 설치해 트래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SK브로드밴드는 "ISP가 넷플릭스에 바라는 것은 ISP의 비용을 들여 구축한 자산인 네트워크를 이용해 이윤행위를 했다면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넷플릭스가 특정 ISP에게 OCA를 연결하더라도 OCA 이후 해당 ISP 망에 흐르는 트래픽의 양은 변함이 없으며, 해당 인터넷 망을 이용한다는 사실도 변함이 없다는 설명이다.
SK브로드밴드에 따르면 대다수 글로벌 CP는 대용량의 콘텐츠를 전송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트래픽 전송을 위해 자체적인 CDN을 구축해 운용하거나 전문 CDN 사업자가 보유한 망을 임차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글로벌 CP는 해당국의 ISP에게 망 사용료를 지급한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아무리 OCA를 잘 구축해도 백본망과 가입자망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글로벌 CP의 망 사용료 지급 거부는 국내 인터넷 망 투자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망 사용료를 지급하는 국내외 다른 CP와의 역차별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 법안2소위 파행 조짐에 업계 불안감 가중
법안2소위가 파행될 조짐을 보이자 업계에는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인사청문회와 지방선거에 이어 하반기 21대 국회 후반기 과방위원 교체 이슈가 있는 만큼 이번에 관련 법안이 논의되지 않으면, 논의가 아예 연말로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후반기에 과방위원이 교체되면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시간이 오래 될 것 같아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합의된 의사 일정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전날 성명을 통해 "이미 회의 날짜를 정해 대외적으로 공지했고, 테이블에 올릴 안건 합의까지 거의 마쳤는데 국민의힘은 일방적으로 회의를 열지 못하겠다고 한다"며 "국민의힘의 무책임한 태도에 법안은 쌓이고 정부와 ICT, 방송 분야 관계자들은 지치고 있다"며 강도 높게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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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심도있는 법안 심의를 위해서는 긴급한 현안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승래 의원의 성명이 발표된 이후 김영식 의원도 즉각 성명을 내고 반박했다. 김영식 의원은 "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폐지, 공영방송법 개정안 강행 처리가 예상되고 있을 뿐 아니라 장관 인사청문 요청안이 접수돼 있는 상황이라 법안 심사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민주당은 끝까지 법안2소위 시행을 위해 국민의힘과 합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법안2소위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마지막까지 협의는 시도를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