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2월. 라이엇게임즈가 PC MOBA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를 국내에 처음 선보일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리그오브레전드가 향후 10년간 국내 PC방 시장 점유율 1위를 장기간 독점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리그오브레전드가 스타크래프트를 제치고 국내 e스포츠 산업의 가장 중요한 종목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듣기 어려웠다. 오히려 게임 진행이 느리고 초반 구간이 지루해 e스포츠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더 많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더라도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라이엇게임즈는 게임사이며 PC방과 e스포츠 산업에서의 성과는 결국 게임산업의 하위 카테고리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분야에서의 성과를 애써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도 라이엇게임즈가 그간 이어온 또 다른 행보는 조금은 낯설다 바로 '문화재지킴이'로의 행보다.
게임사가 문화재청과 직접 협약을 맺고 문화재 보호를 위한 지원을 이어간다는 점도 낯선데 10년간 국내 문화재 보호를 위해 애쓰고 있는 게임사가 해외 게임사라는 점은 더욱 특이하다.
오는 6월 26일은 라이엇게임즈가 문화재청과 문화재지킴이 협약을 맺은지 정확히 만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 기간 동안 문화재청의 노력과 라이엇게임즈의 지원이 더해지며 석가삼존도를 시작으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척암선생 문집 책판,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 등 5건의 해외 반출 국내 문화재가 다시 고향을 찾게 됐다.
이 밖에도 지난 10년간 서울문묘와 성균관 3D 정밀측량사업 지원, 조손왕릉 보존처리를 위한 장비 지원, 문화유산국민신탁 보존자산인 '이상의 집' 보존관리 사업, 전통공예 취약종목 전승지원 등의 사업을 지원해왔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의 구기향 사회환원사업총괄을 만나 지난 10년 간의 행보에 대한 소회와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구기향 총괄은 문화재 보호를 위한 지원을 계획하고 문화재청과 소통하며 실제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 구기향 총괄은 리그오브레전드 이용자와 문화재청에 감사를 전했다.
그는 "지난 2019년 리그오브레전드 서비스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발표를 했을 당시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이의 삶 속에 들어가있는지를 알게 됐다. 그 시간을 이끌어왔다는 점에 보람을 느꼈다"라며 "사회환원 활동도 10년을 맞게 됐고 놀라울 따름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입장에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지를 돌아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회사 차원에서 이런 기회를 줬다는 것에 감사한다. 우리 이용자들도 문화재 보호에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응원한다. 문화재 환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포털 사이트 기사에 댓글을 달며 자부심을 표출하는 이용자도 많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모두가 서로 문화재 보호를 즐겁게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첫 시작은 쉽지 않았다. 게임사. 그것도 해외 게임사가 국내 문화재 보호를 위해 나서겠다는 의지가 문화재청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구기향 총괄은 "처음 문화재청에 문화재 보호를 위한 지원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문화재청은 라이엇게임즈가 무슨 기업인지도 몰랐다. 사명에 포함된 라이엇이라는 단어가 폭동을 의미하지 않나. 나 스스로도 이런 이름을 지닌 기업이 문화재 보호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니 낯설게 여길 것 같아서 고정관념을 부수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먼저 설명을 할 정도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서 "결국 몇 차례 연락을 주고 받은 끝에 문화재청 소속 전문위원이 우리 사무실을 직접 찾아와 회사를 둘러본 것이 시작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문화재청 역시 직접 마주하고 대화를 나눠야 상호간에 확실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다. 방문을 결정할 정도로 열의를 보인 문화재청이지만 그럼에도 접점을 찾지 못한 다면 거절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했다. 결국 긴 시간 설명과 설득 끝에 문화재청과 라이엇게임즈의 문화재 보호를 위한 교집합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첫 만남에서 이어진 회의를 통해 구기향 총괄과 문화재청 관계자는 라이엇게임즈가 젊은 세대와 문화재 사이의 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뜻을 같이 했다.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 층이 10대와 20대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라이엇게임즈가 문화재의 가치를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런 예상은 10년이 지난 지금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구기향 총괄의 설명처럼 리그오브레전드를 즐기는 이들은 라이엇게임즈의 지원으로 문화재가 국내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본인들이 힘을 더했다며 자부심을 느끼는 상황이다.
긴 시간 동안 꾸준한 협업을 이어오며 처음에는 이름조차 낯설었던 라이엇게임즈는 이제 문화재청의 굳건한 동반자가 됐다.
구기향 총괄은 "문화재청장이 2019년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 환수 미디어 공개회에서 라이엇게임즈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문화재청에 후원하겠다는 타 기업에게 라이엇게임즈의 그간 행보가 레퍼런스처럼 언급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노력이 문화재 보호를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의 가이드라인이 됐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실제로 문화재 환수를 위해 이렇게 지속적인 지원을 한 기업이 우리 말고는 없다고 한다. 큰 비용을 들여야하는데 환수 시기는 물론이거니와 성공 여부까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후원이 쉽지 않은 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조금 더 자화자찬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요청을 해봤다. 이는 그간 라이엇게임즈 지원 하에 문화재 환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라이엇게임즈의 이름이 크게 거론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던 기자 개인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구 총괄은 "실무자 입장에서 이름이 언급되기를 기대한 적도 있지만 정작 팬들이 우리의 노력을 더 알아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것을 보며 마음이 바뀌었다. 핵심은 소중한 문화재가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애초에 생색내려고 시작한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팬들의 호응이 많아 이제는 문화재 보호나 환수를 위한 진행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종종 공지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문화재 지원사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이끌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대한제국 공사관의 과거 모습을 복원한 자리에 라이엇게임즈의 로고가 있고, 우리의 지원으로 복원이 이뤄진 국내 고궁 어딘가에도 우리의 로고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물리적인 그림자는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행보 하나하나가 선한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생색은 굳이 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라고 부연했다.
구기향 총괄은 민간기업이 문화유산에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게임산업이 규모가 커졌지만 여전히 비주류 문화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 가운데 게임사가 사회적 역할을 하며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이미지를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10년간 문화재 보호라는 큰 테마를 두고 꾸준한 행보를 이어온 입장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고민하는 기업 관계자에게 조언할 말이 있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고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진정성 있는 사회공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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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향 총괄은 "과거 타 기업에 재직 중일 당시 종합병원의 어린이 병동에서 축하파티를 지원하기도 했다. 파티를 열어 완치 아동을 축하하고 아직 병원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회복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어린이 병동이 많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기업의 후원으로 완구가 지원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당시에 게임 캐릭터 인형 탈을 쓴 직원들과 캐릭터 페이스페인팅 인력을 지원해 현장 분위기를 더욱 즐겁게 이끈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굳이 금액을 언급하는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큰 돈을 들인 지원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부모의 반응이 좋았고 환아 부모 사이에서 내용이 공유가 되며 여러 병원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확대되기도 했다. 기업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유행하는 키워드와 엮어서 사회공헌 활동을 기획하지 말고 사회적 역할과 기여 그 자체에 집중을 해서 진행을 해야한다.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