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1위 삼성의 ‘경제적 해자’는 안전한가

[이균성의 溫技] 비메모리 투자의 중요성

데스크 칼럼입력 :2022/03/31 09:48    수정: 2022/03/31 10:02

‘경제적 해자(垓子, moat)’는 오래된 용어다. 워렌 버핏이 1980년대 처음 주창했다. 주식 투자 척도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해자는 원래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곽을 따라 파놓은 못을 가리킨다. 경제적 해자는 그래서 경쟁기업의 추격을 따돌릴 확고한 경쟁우위 요소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워렌 버핏은 투자를 할 때 해당 기업이 경제적 해자를 갖췄는지를 따져보라고 조언한다.

이 말을 최근 다시 떠올린 건 삼성전자 주가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작년 1월15일 9만6천800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5분기에 걸쳐 지리멸렬하다. 30일 주가는 6만9천900원으로 최고치 대비 28% 하락한 상태다. 이 기간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지속적으로 물타기를 했고 국내외 기관은 그 만큼 계속 팔아치웠다. 삼성전자의 경제적 해자에 대해 개인과 기관의 시각이 정반대였던 것이다.

삼성전자 사옥 (사진=삼성 뉴스룸)

누가 삼성의 미래를 더 잘 점치고 있는 것일까. 기업 분석 능력에 있어 개인이 기관을 앞설 가능성은 제로다. 그건 5분기 동안 삼성전자 주가 흐름만으로도 입증된다. 한마디로 개인과 달리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은 삼성전자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 세력 대결에서 지난 5분기 동안 개인은 기관에 완패했다. 문제는 이 현상이 일시적일지, 지속적일지에 관한 것이다.

삼성의 펀드멘탈에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주가가 흘러내린 지난 5분기 동안 실적은 서프라이즈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양호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기도 했다.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은 여전히 막강한 상태이고 모바일과 TV 그리고 가전 또한 충분히 잘 견뎌내고 있다. 개인이 보기에 기관의 매도는 과도하게 느껴질 만큼 삼성은 안전해 보인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기관은 왜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이자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0%대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에서 발을 빼는 것일까. 자료를 찾던 중 ‘더벨’이 연재한 ‘삼성 비메모리 경쟁력 점검’에 상당한 공감을 느꼈다. 삼성전자에 대한 기관의 차가운 시선은 현재의 펀드멘탈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됐을 터다. 그리고 그 계기가 바로 비메모리였던 거다.

해자는 수성전(守城戰)에 필요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미래가 메모리 1위를 지키는 데 있다면 삼성의 경제적 해자는 여전히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성(守城) 만으로 영토가 확대되지는 않는다. 수성은 안위는 지켜줄지언정 더 큰 번영의 길을 열어주지는 못한다. 영토를 확대하고 더 큰 번영을 원한다면 기꺼이 개활지로 나와 대회전(大會戰)에 나서야만 한다. 어디가 삼성의 개활지인가.

삼성이 선택한 1차 개활지는 비메모리다. 지난 2019년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30년까지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3년여가 흘렀다. 이 계획은 지금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가. 불행히도 기관은 이 과정에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파운드리는 1위와 격차가 더 벌어지는 추세고 시스템 반도체도 여전히 진통중이다.

‘더벨’은 그 원인을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속성이 다르고 그에 따라 성공 방정식도 다르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다소 거칠게 옮긴다면 메모리는 기술과 공정의 고도화와 대규모 선행 투자가 핵심 경쟁력이라면, 비메모리는 그와 함께 서비스와 SW 요소가 대폭 추가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스마트폰 분야에서 삼성과 애플의 대결 구도가 얼핏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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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인 분석이야 어떻든 중요한 건 기관 투자자들이 이재용 부회장의 2019년 선언과 상관없이 삼성을 여전히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투자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모리 업황에 따라 사고팔기를 반복하면서. 이는 삼성 주가가 당분간 박스권에서 오르내릴 것이라는 걸 시사한다. 고점을 뚫고 비약하기 위해서는 개활지에서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페이스북이 사명을 메타로 바꾸고 화력을 메타버스 사업에 집중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테다. 새로운 개활지를 개척하지 못하면 온실 속 화초가 될 것이므로. 지난 2월3일 메타 주가는 단 하루만에 26%가 폭락해 시가총액 300조원이 증발해버렸다. 기존 비즈니스가 성장의 한계에 부닥쳤다는 투자자들의 인식 때문이었다. 기업은 그래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살아야만 오늘도 살 수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