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료] EU서 처음 방역 푼 덴마크 "오미크론, 사회 개방 운영 위협 안돼"

주한덴마크대사관 랜디 멍크 참사관 "사회 정상 운영 가능한 수준...데이터 분석 통해 도출"

헬스케어입력 :2022/02/23 17:00    수정: 2022/02/23 17:58

의료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우린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처방전으로 약을 구매하는 의료서비스를 일상적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의료는 낯설다. 의료는 제약·바이오·R&D·정책·법·제도·인력·돈과 같은 외적 요소가 종합 작용하는 고차원의 분야인 탓이다. 삶의 질을 좌우하는 동시에 생명에 대한 엄숙함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런 의료의 복합성은 미래의료의 향방을 가늠하기 더욱 어렵게 만든다. 혹자는 미래의료가 정보통신 기술과 결합해 개인·맞춤·예측의 방향으로 발전하리라 전망하지만, 이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신종 감염병·기후 위기·4차 산업혁명 등 급격한, 혹은 적대적인 변화 앞에 미래의료는 어떠한 방향이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해본다. [편집자주]

랜디 멍크 야콥슨 주한덴마크대사관 보건의료 참사관은 덴마크의 코로나19 방역 해제 결정에 대해 “데이터 분석 결과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사회를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상황이 변했다.”

랜디 멍크 야콥슨(주한덴마크대사관 보건의료 참사관)의 말이었다. 덴마크는 지난 1일부터 코로나19 방역 해제를 공식화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에서 가장 빨랐다. 전 세계는 덴마크의 이 같은 결정에 촉각을 세웠다. 방역 완화나 전면 해제를 고려하던 영국과 우리나라도 덴마크의 결정 배경에 관심을 보였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주한덴마크대사관에서 랜디 멍크 참사관을 만났다. 한국에 온지 5주, 언론과는 첫 인터뷰였다. 그는 정부 결정이 코로나19 초기부터 수집한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이었다고 했다.

그는 “데이터 분석 결과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사회를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델타 변이 감염자들은 중증화와 사망으로 진행되는 비율이 높아 봉쇄가 필요했지만, 오미크론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날 유독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도 데이터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보험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료데이터 제공을 요청했지만, 건보공단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랜디 멍크 참사관은 덴마크의 공공데이터 민간 제공과 관리 사례를 들려주었다. 아울러 덴마크의 디지털 헬스케어와 메타버스 활용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변호사 출신인 랜디 멍크 야콥슨 참사관은 정부 재직 전 15년간 덴마크 제약기업에서 특허와 규제 허가 분야를 담당했다. 이후 덴마크 의약청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품과 의료기기 허가 업무를 맡았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EU로부터 코로나19 백신을 덴마크로 수급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의 업무에 대해 그는 “정부 간 협력을 도모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 “데이터, 오직 데이터로 결정했다”

-덴마크는 코로나19 방역을 해제했다. 

“덴마크는 코로나19가 심각한 위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물론 이러한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매우 조심스러운 과정을 거쳤다. 지난 2020년 3월 덴마크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 시 우린 코로나19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다. 우린 봉쇄 조치를 취한 초기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락다운 기간 동안 의료체계를 정비하고, PCR 검사 센터도 많이 만들었다.”

-결정을 내리는데 데이터가 주효한 근거가 되었다?

“우린 신뢰할 수 있는 정보수집·취합·분석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코로나19의 진단과 분석은 오직 우리가 확보한 데이터에 기반해 이뤄졌다. 델타 변이는 중증화와 사망으로 진행되는 비율이 높아 봉쇄가 필요했지만, 오미크론 변이는 데이터 분석 결과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덴마크 인구의 81%가 기본접종을 마쳤고, 60%를 상회하는 인구가 3차접종(부스터)을 완료했다. 오미크론 변이는 사회를 안전하게 개방해 운영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심각한 변이가 또 발생하면 정책은 다시 변할 것이다.”

덴마크 인구 583만 명 가운데 누적 확진자는 21일 기준 261만 명이며, 총 사망자는 4천341명이다. 같은 날 기준 2만8천883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주간 평균은 3만5천723명으로 나타났다. 랜디 멍크 참사관은 “3주~4주 전 하루 확진자는 5만 명 발생했지만, 지속 감소하고 있다”며 “중환자실 환자수는 30명으로, 충분히 수용 가능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오미크론 변이 대응 체계에서 코로나19 확진자의 재택치료 비중을 늘렸다. 이들에 대한 관리는 동네 병·의원, 즉 일차 의료가 담당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덴마크의 의료체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덴마크의 일차의료는 코로나19 대응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린 단기간 내 많은 PCR 진단검사 센터를 만들었고, 이를 지역 구 단위에 운영을 맡겼다. 이달 기준 누적 진단검사 횟수는 약 6천만번이었다. 인구규모 대비 많은 검사가 실시된 것이다(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덴마크 인구보다 10배 가량 많은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진단검사는 누적 1억3천656만5천251회다).

지역의료를 담당하는 주치의가 원격진료에 참여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약 100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실시됐다. 또 모든 환자에게 개인고유번호를 부여해 환자의 상태를 지속 추적하고 있다. 디지털 시스템을 통한 추적·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럽 내 보건의료 분야의 디지털화를 위한 국가 투자 순위에서 덴마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3위였지만  현재는 1위로 올라섰다.”

현재 덴마크는 병원 효율성 개선 사업인 ‘슈퍼 병원 프로젝트(Super Hospital Project)’를 추진 중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16개 국립병원을 통합,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병원들로 바꿔 지속가능한 의료 생태계를 조성하자는 취지로 추진 중인 정부 사업이다. 우리나라의 ‘스마트 병원’ 사업과 유사하다. 관련해 주한덴마크대사관은 연세대의대 용인세브란스병원,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등과 관련 협력을 진행한 바 있다.

그렇지만 덴마크의 의료체계 혁신 목표는 병원의 ‘몸집 부풀리기’와는 거리가 멀다. 덴마크 정부는 병상 수는 줄이되 재택치료는 확대하려 한다. 재택치료가 특히 고령층에 있어 치료의 효율을 높이고, 존엄을 보장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는 제약·바이오 분야를 안보로 격상시키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덴마크는 어떤 정책을 펴고 있나.

“백신 개발과 생산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정부 지원 연구도 다수 진행돼 신종감염병 백신 연구 개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한국과 덴마크의 협력 방안은 무엇일까.

“덴마크의 여러 헬스테크 기술과 기업을 한국의 의료기관과 매칭시키는 한편, 두 나라 사이에 관련 정보 공유도 추진해볼 수 있다. 보건의료 시스템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메타버스’도 협력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을 모두 메타버스 기반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린 보건의료 분야에서 메타버스를 의료진의 교육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장차 환자 대상 메타버스를 활용한 원격진료와 치료도 가능하다고 본다.”

랜디 멍크 참사관은 우리나라와 덴마크가 저출산·정신건강·만성질환·고령화 등 공통의 해결과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한국에서는 의료데이터의 보험사 제공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덴마크는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민간 개방 과정에서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이뤘나.

“유럽에서도 보건의료 데이터의 민간 개방은 상당한 이슈였다. 의료 데이터를 유럽연합 차원에서 자유롭게 공유·활용하자는 쪽과 환자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의가 오랜 기간 진행됐지만, 아직 결정은 나지 않았다. 

덴마크는 의료 데이터를 상당히 엄격하게 관리한다. 각 의료데이터에는 개인의 등록번호가 부여돼 정보 관리 기관은 해당 데이터의 저장·접촉·열람 이력을 추적한다. 만약 대학 등 연구기관과 민간이 연구 목적으로 의료데이터 제공을 요청하면, 가명화된 처리된 의료데이터가 제공된다.”

-의료데이터 관리와 추적 체계가 인상적이다.

“덴마크는 보건의료정보 수집의 역사가 길다. 70년 이전부터 정보를 수집했고, 디지털화 작업을 거쳤다. 덴마크는 사회적 신뢰도가 높아 민간 개방에 큰 거부감은 없었다. 정부 기관이 상당한 보안 아래 관리를 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제공받은 사람이 이를 이차적인 목적으로 악용하기란 어렵다. 때문에 환자협회는 보다 많은 연구 활용을 할 것을 되레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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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멍크 참사관은 우리나라와 덴마크가 저출산·정신건강·만성질환·고령화 등 공통의 해결과제를 갖고 있다고 했다. 특히 고령층의 존엄성을 보장하면서 높은 수준의 치료와 돌봄에 관심이 많다는 게 참사관의 설명이었다. 그는 “기술적 뒷받침이 필요하고, 두 나라의 협력이 더 긴밀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이후 대통령 당선자에 따라 헬스케어 분야의 어떠한 변화가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미래의료의 향방을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기자는 대답 대신 멋쩍게 웃고만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