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인앱결제 꼼수와 '전용차로 위반 과태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네덜란드 공방, 남 얘기 아니다

데스크 칼럼입력 :2022/02/15 15:33    수정: 2022/02/15 20:2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고속도로에서 버스 전용차로를 무단 주행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승용차는 5만원, 승합차는 6만원이다. 과태료는 단속 카메라에 적발된 횟수만큼 부과된다. 승용차로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동안 10번 적발됐다면 50만원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전용차로의 기본 질서가 유지되는 건 이런 감시시스템과 과태료 덕분이다. 

그런데 어떤 엄청난 부자가 그냥 전용차로를 질주해버린다면? 설 연휴 같은 때 "몇 시간 정체를 피하는 대신 과태료 몇 백만원 내지, 뭐"라면서 마구 달려 버린다면? 실제로 두 시간 정도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있다면 과태료 100만원 정도는 기꺼이 낼 부자는 꽤 있을 지도 모른다.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반포IC 부근. 버스 전용차로만 뻥뻥 뚫리고 있다. (사진=뉴스1)

그런데 현실에선 선뜻 그렇게 하지 못한다. 과태료 부담보다 사회적 평판 훼손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실제로 명절에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면, 엄청난 후폭풍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 건 네덜란드 규제 당국과 공방 중인 애플 때문이다. 최근 애플이 네덜란드에서 보여 준 행보를 보면서 '범칙금'과 '평판 훼손 우려'란 두 가지 기제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 애플, 네덜란드서 4주 연속 68억원 벌금 받고도 계속 버텨  

네덜란드 소비자시장국(ACM)은 14일(현지시간) 애플에 또 다시 500만 유로(약 68억 5천만원) 벌금을 부과했다. 4주 연속 똑 같은 금액이 부과됐다. 어느 새 누적 벌금이 2천만 유로에 이르렀다.

애플이 제재를 받은 건 ‘인앱결제 강제’ 때문이다. 앱스토어에서 인앱결제 외 다른 결제 방식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 빌미가 됐다.

ACM은 애플과 법정 공방까지 벌인 끝에 ‘인앱결제 강제’ 조치 시정 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적용 시한은 1월 15일이었다. 애플은 이 시한에 맞춰 인앱결제 뿐 아니라 다른 결제 시스템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애플이 꼼수를 동원했다. 다른 결제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에도 27% 수수료를 적용했다. 인앱결제 수수료 30%와 별 차이 없는 수준이었다.

애플의 꼼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인앱결제 외 다른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려면 사실상 앱을 새로 만들어야만 하도록 했다. 앱 개발자들이 애플 이외 다른 결제시스템을 선택할 유인을 없애버린 것이나 다름 없는 조치였다.

팀 쿡 애플 CEO (사진=씨넷)

이날 500만 유로 벌금을 부과한 ACM도 이런 부분을 지적했다. ACM은 “다른 결제 방식을 선택하는 데이팅 앱 제공업체들은 완전히 새로운 앱을 만든 뒤 애플 앱스토어에 제공해야만 한다”면서 “이 조치는 데이팅 앱 제공업체들에겐 불리한 조건이다”고 비판했다.

ACM은 애플 측에 오는 21일까지 시정 조치를 적용하라고 명령했다. 이 조치가 미흡할 경우엔 또 다시 500만 유로 벌금을 부과하게 된다.

물론 주당 68억원에 달하는 벌금은 엄청난 규모다. 하지만 애플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익을 감안하면 제재 효과는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애플은 지난 해 12월 마감된 2021 회계연도 4분기에 매출 1천239억 달러(약 149조1천억 원)에 346억 달러(약 41조6천억 원) 순익을 기록했다.

네덜란드 ACM이 한 분기 내내 주당 68억원 씩 벌금을 부과해도 1천 억원이 채 안 된다. 애플이 지난 분기에 올린 순익의 0.2%에 불과한 금액이다. 애플에겐 (속된 말로) 껌 값에 불과한 금액이다. 

■ 네덜란드에서 꼼수 쓴 애플, 한국에서 성실한 대안 제시할까 

애플과 네덜란드의 공방은 ‘남 얘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그대로 재여될 가능성이 많은 장면이다. 

국회가 지난 해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면서 제3자 결제 서비스를 허용하도록 명문화했다. 개정된 법에 따라 애플은 한국에서도 제3자 결제서비스를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애플은 한국에선 '신의성실에 입각한' 이행 계획을 내놓을까? 인앱결제가 아닌 다른 결제 시스템얼 허용하도록 한 법적 취지를 잘 살린 정책을 들고 나올까?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네덜란드에서 '꼼수'를 쓴 애플이 한국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사진=미국 씨넷)

이 글 서두에서 애플의 인앱결제 꼼수를 거론하기 위해 ‘고속도로 전용차로 주행’을 사례로 들었다. 그러면서 돈 많은 사람들이 뻔뻔하게 전용차로 주행을 하지 못하는 건 범칙금보다 더 무서운 세간의 평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애플 같은 기업에게 인앱결제 이행 계획 위반 범칙금은 전용차로 위반 범칙금 정도 밖에 안 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다시 이런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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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애플이 네덜란드에서와 똑같은 방식을 들고 나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국회와 정부 당국은 지금부터 이 질문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모처럼 만든 법이 대어는 다 놓치고 피라미만 못 살게 구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