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바뀌지 않는 일본, ‘디지털정부’ 공허한 메아리 그치나

선거 때마다 공무원이 밤낮없이 연필 깎는 나라, 일본

전문가 칼럼입력 :2021/10/29 06:05    수정: 2023/02/13 17:00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일본은 지금 중의원선거 열기가 뜨겁다.

오는 일요일인 31일 투표가 이뤄지고 다음날 이른 오후면 최종 개표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는 전후 가장 지지율이 낮았다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 후임으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 총리 체제가 출범하고 이뤄지는 첫 번째 국정 선거다. 일본 정부의 코로나 관련 실책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심판론이 힘을 얻고 있는 터라 선거 결과가 주목을 끈다.

일본 중의원 의석은 465명이다. 직전 아베 총리 재임 중에 치른 선거에서 자민당은 276석이라는 상상을 넘어서는 압승을 거뒀다. 연립여당인 공명당 의석 29석을 포함, 305석을 획득했다. 중의원 전체 의석의 65% 얻어 야당 존재를 무색하게 했다.

그간 코로나 감염이 확산하고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올림픽을 강행하는 등 일본 정부가 끝없는 실정을 거듭한 끝에 치르는 선거라는 점에서 여당에 녹록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선거 판세를 분석하는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자민당의 단독 과반수(233석) 확보는 어렵고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의석수를 더해야 과반을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관측이다.

일본은 투표율이 50%대로 낮아서 민심이 그대로 반영된다고 기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자민당과 공명당 조직표가 총동원되고 투표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선방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더는 자민당의 폭주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시민단체 등의 선거 참여 운동과 소선거구에서 야당이 후보단일화를 적극 추진하면서 야당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져 선거결과를 속단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현장에서 바라본 필자의 판단으로는 전후 70여 년간 딱 한 번 정권교체가 이뤄졌을 정도로 보수적인 일본 국민 성향 때문에 자민당은 단독이든 연립여당과 함께든 집권 여당에서 밀려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군마현 오타시 공무원들이 선거에 사용할 연필을 깎고 있다. (사진=NHK 영상 캡쳐)

그보다도 지난 27일 NHK 발로 보도된 ‘투표소 연필 10만 자루를 깎는다’는 기사가 화제를 불렀고 한국에서도 보도됐다고 한다.

일본 선거제도 지식이 없는 한국인은 기사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잠시 설명을 덧붙인다. 일본은 한국처럼 사전에 후보자 이름이 인쇄된 투표용지에 붓 뚜껑으로 도장을 찍는 방식이 아니다. 백지인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을 직접 손으로 써넣는 방식으로 투표한다. 한자로 된 후보자 이름을 정확하게 쓰지 않으면 무효표로 처리된다. 후보자들은 가능하면 한자가 아닌 히라가나 등을 후보자 명으로 제시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무효표가 상당수 발생해 매년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예를 들면 똑같은 높을 고자를 쓰더라도 ‘高’와 ‘髙’는 같은 글자이지만 투표에서는 다른 글자로 판정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한다. 이런 문제로 인해 한자를 쓰지 않고 한자 발음을 히라가나로 기록하기도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특정선거구 복수 후보자 이름이 한자는 다르지만 히라가나는 같아서 결과적으로 누구를 찍은 것인지 구별을 못하게 돼 대혼란이 예상된다는 보도도 있고 보면 시급히 개선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싶다.

투표할 때 유권자가 수기로 후보자 이름을 적어야 하기에 필기도구가 필요하다. 필기구를 공동으로 이용하면 코로나 감염이 우려돼 유권자 전원에게 투표용 연필을 한 자루씩 제공하려다 보니 군마현 오타시는 유권자 10만 여명이 사용할 연필을 준비하느라 공무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필을 깎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졌다.

후보자 이름을 수기로 작성하면 일일이 수작업으로 개표해야 한다. 막대한 인력이 소요된다. 집계 후에도 후보별로 제대로 집계됐는지 검표해야 한다. 이 또한 많은 투표 참관인이 필요하다. 일본 선거에 막대한 인건비가 소요되는 이유다.

필자는 전자정부 전문가로서 일본 정부 관계자에게 비효율적인 투개표 프로세스 개선을 제안했다. 한국처럼 이름을 인쇄해서 붓두껍으로 도장을 찍고, 개표는 스캐너로 진행하면 효율적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관계자의 대답은 “투표라는 신성한 행위를 하는데 본인이 선택한 사람이 누구인지 신중히 고민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후보자 이름을 한 획 한 획 정성 들여 쓰는 것이 중요한 일 아닙니까”였다. 담당자가 대답하는 의미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지만 이상과 현실이 동떨어진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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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일부 관계자의 속내를 들어보면 조금 다른 면도 보인다. 한국처럼 투개표방식을 개선하면 선거 때마다 보너스처럼 지급되는 공무원 야근수당과 특별수당이 사라져서 반대한다는 말도 있다. 특히 투개표 때만 임시로 고용하는 투개표 요원을 파견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이권이 걸린 문제라서 극렬하게 반대한다는 말도 들려온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현인의 말이 떠오른다. 일본 정부가 추진한다는 디지털정부는 수많은 혁신이 필요하지만 어찌 보면 당위성이 뚜렷하고 효과도 확실한 혁신마저 기득권세력과 저항 세력에 밀려 포기해야 한다면 아무리 노력을 한들 디지털정부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지 않을까 싶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본계 부품기업에서 전산관련 업무를 하다가 일본 정보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 이후 한국의 선진 정보기술(IT)을 일본에 소개하고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정보화컨설팅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겸했고 병원과 기업 등에서 IT어드바이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0년간 일본인과 같은 신분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고 느낀 점을 압축 정리한 ‘일본관찰 30년-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라는 일본 정보서적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