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을 받은 어느 여성 언론인 이야기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사이버 폭력과 플랫폼의 책임

데스크 칼럼입력 :2021/10/13 15:46    수정: 2021/10/13 22:2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올해 노벨평화상은 특별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거대 권력에 맞서 진실을 보도해 온 필리핀과 러시아 기자 두 명이 공동 수상했다. 시민운동가나 정치인들의 전유물이던 노벨평화상을 언론인이 수상한 건 1935년 독일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86년 만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다. 

둘 중에선 특히 마리아 레사란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마리아 레사는 필리핀 탐사보도 전문매체 래플러(Rappler)를 이끌면서 두테르테 정권의 비리와 폭력적 행태를 보도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그렇다고 레사 기자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건 아니다. 지난 해 번역한 책 때문이다. 그 얘기를 하기 위해 칼럼을 시작했다.

마리아 레사가 지난 2016년 베니그노 아키노 3세 전 필리핀 대통령을 인터뷰하는 장면.

두테르테 정권의 폭력·온라인 괴롭힘 맞서면서 언론 역할 수행

나는 지난 해 ‘저널리즘, 허위정보 & 가짜뉴스’란 책을 번역했다. 유네스코 저널리즘 교육시리즈로 나온 책이었다. 

이 책은 ‘가짜뉴스’란 말이 왜 무책임하고 엉터리 용어인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허위조작 정보와 정보 무질서 현상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담아 냈다. 이와 함께 전 세계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사이버 테러에 대해서도 실감나게 전해줬다. 

그 부분을 번역하면서 마리아 레사와 ‘래플러’란 매체를 처음 알게 됐다. 

마리아 레사가 발 딛고 있는 필리핀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배하고 있다. 두테르테는 현재 지구상에서 대표적인 독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마약과의 전쟁’을 빌미로 무차별 폭력을 감행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때론 사람들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허위정보를 유포했다. 마리아 레사는 이런 허위정보 공세의 주 타깃이 됐다. 

마리아 레사와 래플러의 활약이 더 감동적인 건 이런 상황 때문이다. 그들은 두테르테 정권의 압박과 폭력에 맞서 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물리적인 폭력에 노출되기도 했다. 때론 무차별적인 ‘가짜뉴스(fake news)’ 공세를 감내해야 했다. 마리아 레사는 이 모든 위협과 폭력 속에서 저널리즘의 꽃을 활짝 피워냈다. 

‘저널리즘, 허위정보 & 가짜뉴스’에 소개된 마리아 리사 이야기를 옮기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맛봤다. 

마리아 레사

그 중 한 구절을 소개한다.

“마리아 레사는 “못생긴 여자, 개, 뱀이라고 불렸으며 강간과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레사는 살해 협박 횟수를 세다가 포기했다. 게다가 그는 #마리아레사 체포(#ArrestMariaRessa), #그녀를상원으로 (BringHerToTheSenate) 같은 해시태그 캠페인의 타깃이 됐다. 이 캠페인은 온라인 군중의 공격을 선동하고 레사와 ‘래플러’의 신뢰를 떨어뜨리며, 그들의 보도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이 책에서 레사는 "사법 절차를 따르지 않은 살인에 대해 비판하거나 의문을 제시한 사람들은 누구나 공격을 받았다. 심하게 공격받았다. 여성에게 가해진 공격은 더 끔찍했다. 이 시스템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침묵시키려 하는 것이다. 저널리스트를 길들이기 위해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온라인 괴롭힘 호소에 저커버그는 농담으로 넘기기도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물리적 폭력의 역사는 꽤 깊다. 많은 언론인들이 전쟁이나 범죄를 취재하고 보도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마리아 레사는 ‘온라인 괴롭힘’ 문제도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여성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공격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위협에 대처하는 마리아 레사의 노하우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는 사안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고, 영향을 받은 직원들에게 심리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각종 공격에 대응하는 최고 무기는 ‘탐사 저널리즘’이란 그의 고백도 감동적이었다.

그는 또 “온라인 괴롭힘을 경감시키고, 적절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플랫폼에 공식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거대 플랫폼에 온라인 괴롭힘과 허위 조작정보 문제에 대해 좀 더 강력하게 대처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마리아 레사가 이끌고 있는 필리핀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닷컴.

그런데 이런 심각한 문제 제기를 받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의 대처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칼럼니스트인 박상현 님이 ‘Otter Letter’를 통해 이 부분을 잘 소개해줬다. 그 부분을 그대로 옮긴다.

“그가 저커버그에게 필리핀 사람들의 97%가 페이스북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의 책임이 크다고 하자 저커버그는 "마리아, 그럼 나머지 3%는 왜 페이스북을 안 쓰죠?"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목숨을 내걸고 허위정보와 싸우는 언론인의 호소에 세계적인 젊은 갑부는 농담으로 대꾸한 것이다.”

관련기사

뛰어난 저널리스트인 마리아 레사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권력 감시란 언론 본연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 온 그의 뛰어난 업적을 감안하면, 역대 그 어느 수상자 못지 않은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레사 이야기를 새롭게 되새기면서 플랫폼이 지배하는 시대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전 세계 수 십 억 명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잡은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의 가벼운 현실 인식을 지켜보는 마음은 무겁기 그지 없다. 최근 페이스북을 둘러싼 각종 추문과 사고가 우연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