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집어삼킨 SW, '메타버스'란 열매를 맺었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4차산업혁명 페스티벌 좌담회를 보면서

데스크 칼럼입력 :2021/10/07 16:45    수정: 2021/10/08 10:1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소프트웨어는 물질 세계에 존재하는 산업들의 가치 사슬 중 많은 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요즘의 차들은 소프트웨어가 엔진을 운전하고, 안전장치를 통제하며, 탑승자를 즐겁게 해준다. 운전자를 목적지로 안내하는 것도 소프트웨어다. 그리고 자동차들을 모바일로, 위성으로, GPS 네트워크로 연결해준다.”

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메타버스, 거대한 변화가 오고 있다(Metaverse, The big change is coming)’ 좌담회를 지켜보면서 10년 전에 발표된 한 칼럼을 떠올렸습니다.

마크 앤드리슨이 2011년 8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왜 SW가 세상을 삼키고 있나’란 칼럼입니다. 이 칼럼에서 그는 세상의 무게 중심이 소프트웨어로 쏠리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그는 아마존,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같은 기업들이 거대 오프라인 업체들을 압도하는 상황을 한 발 앞서 포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SW가 세상을 집어 삼키고 있다’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7일 서울 코엑스에서 메타버스NFT 비즈니스 포럼 좌담회가 진행됐다.

느닷없이 10년 전 칼럼을 떠올리게 만든 이날 좌담회는 대한민국 4차산업혁명 & 블록체인 서울' 2일차 행사로 마련됐습니다. 

김경묵 지디넷코리아 대표가 좌담회 좌장을 맡고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정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장,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 노준형 롯데정보통신 대표, 황명은 엔피 부대표가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세상 집어 삼킨 SW, 세상의 영토를 확장한 메타버스 

마크 앤드리슨은 미국을 대표하는 벤처 캐피털리스트입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 같은 대표 인터넷 기업들에 한 발 앞서 투자한 눈 밝은 투자자입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변신하기 전에는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로 인터넷 혁명의 불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ICT 기술과 관련 비즈니스에 대해선 누구보다 정통한 인물입니다. 

‘왜 SW가 세상을 삼키고 있나’란 칼럼이 발표된 지 정확하게 10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세상은 앤드리슨의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블록체인이 연이어 관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물론 개별 기술의 성격이나 지향점은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세상을 집어 삼키는 SW’란 앤드리슨의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메타버스(Metaverse) 열풍을 진단하는 이날 컨퍼런스에서 앤드리슨의 칼럼은 떠올린 것은 이런 사정과 관련 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삼키고 있는 메타버스 열풍의 출발지가 'SW 혁명'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크 앤드리슨이 10년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칼럼.

이날 좌담회에서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디지털 영토 확장’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 ICT 인프라와 콘텐츠 파워를 갖고 있어 ‘메타버스’란 디지털 영토 확장 전쟁의 승리자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디지털 정부’를 넘어 ‘메타버스 정부’로 진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노준형 롯데정보통신 대표는 “가상융합세상은 화성보다 우리가 먼저 살아야 할 곳”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은 “새로운 세계가 온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최근에 목격하는 것들은) 다 옛날에 했던 것들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이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는 건 비즈니스 시장이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진단했습니다.

실제로 메타버스를 지탱하는 개념 중 '생소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경험했던 것들입니다. 다만 최근 관련 기술과 서비스가 발전하고, 그것들이 서로 융합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메타버스행 전쟁…원대한 비전과 냉정한 인식 병행해야 

지난 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한 메타버스는 올 들어서 우리 사회를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메타버스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흥분과 불안을 목격하게 됩니다. ’메타버스행 티켓’을 확보하지 못할까 초조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메타버스행 버스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몰라 두려움에 빠진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메타버스에 올라탈 수 있을 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날 컨퍼런스와 좌담회 참여자들은 이런 궁금증과 두려움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던져줬습니다. 

이광재 의원은 ICT 인프라와 콘텐츠 경쟁력이 메타버스 시대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공공 인프라의 메타버스 확장, 디지털 번역 플랫포 구축, 교육판 넷플릭스, 디지털 의료 확장 같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 모든 방안들은 ‘디지털 영토 확장’이란 키워드로 수렴됩니다. 메타버스는 결국 ‘디지털 영토 확장’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는 김정삼 국장의 경고도 예사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메타버스에 올라타는 것’으로 모든 고민이 해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 국장이 “서비스들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지속 가능한 메타버스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볼까요?

마크 앤드리슨은 10년 전 ‘SW가 세상을 삼키고 있다’는 말로 새로운 산업 흐름을 포착해냈습니다. 아마존,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같은 기업들이 오프라인 강자를 압도하는 산업 흐름을 한 발 앞서 포착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별개의 공간이었습니다. 온라인 기업들이 오프라인 기업을 압도하는 게 그 무렵의 산업 수준이었습니다.

메타버스 솔루션 시연에 참여한 관람객들. (사진=지디넷코리아)

그 사이 인공지능(AI)이 각광을 받게 됩니다. 구글 알파고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자 잰슨 황 AMD 최고경영자(CEO)는 2017년 ‘AI가 소프트웨어를 집어 삼키고 있다’는 칼럼을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기고합니다. SW 혁명이 AI 혁명으로 진화하고 있는 현실을 잘 진단한 칼럼이었습니다. 

이 칼럼에서 잰슨 황은 기계 학습이 소프트웨어의 전통적인 성능과 개발 방법론을 대체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머신러닝이 의학과 자동차산업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날 컨퍼런스와 좌담회를 통해 ‘메타버스가 SW와 AI를 집어삼키는’ 가능성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SW 혁명이 AI를 거쳐 메타버스로 화려하게 진화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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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새로운 흐름을 ‘디지털 영토 확장’이란 말로 요약한 이광재 의원이나,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균형을 잡은 김정삼 국장 모두 우리 사회를 삼키고 있는 메타버스 파워의 중요한 지점을 잘 포착해준 것 같습니다.

결국 메타버스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선 ‘원대한 비전’과 ‘냉정한 현실 인식’이란 두 바퀴를 잘 조화시켜야 할 터이기 때문입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