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선진국도 없는 국내 첫 코로나19 감염 정신질환자 맞춤 음압병동

지난달 21일 개소한 국립정신건강센터 음압병동…첨단 시설로 의료진·환자 호평

헬스케어입력 :2021/08/26 07:41    수정: 2021/08/26 17:00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된 정신질환자들의 맞춤 치료시설이 국내에 문을 열었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음압병동은 국내 최초이자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시설이다. 의료진과 환자들은 개선된 치료환경에 만족감을 표했다.

지난달 21일 개소한 센터 음압격리 치료병동은 13개 병실에 1인실 4병상·2인실 18병상 등 총 22개 병상 규모다. ▲중앙통제시스템 ▲개별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고유량 산소기 ▲비접촉식 자동문 ▲관찰창 ▲패스 박스 ▲헤파필터 및 역류 방지 댐퍼 등 각종 첨단 치료시설도 갖췄다. 음압병동이란, 감염원이 치료진에게 공기 등을 통해 전파되지 않도록 병동에 일정 음압을 걸어놓은 시설을 말한다.

지난달 21일 개소한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음압격리 치료병동은 코로나19에 감염된 정신질환자들의 맞춤 치료시설이다. (사진=김양균 기자)

팬데믹 상황이 아닐 때는 결핵 등 공기나 비말을 통해 전파되는 감염병에 걸린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가 이뤄진다. 신종 감염병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국가격리시설로 전환돼 정신질환자 및 일반 감염자에 대한 대응이 이뤄지는 ‘투 트랙’으로 운용된다.

확진된 정신질환 당사자에 대한 집중 치료 시설 구축은 지난해 2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국내 1차 대유행이 계기가 됐다. 당시 청도 대남병원에서는 첫 코로나19 사망자와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정신질환 당사자의 코로나19 취약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7월 19일 기준 정신건강증진시설 집단감염환자 관리 현황을 보면, 정신질환 당사자는 정신질환자 전담병원에 460명과 감염병 전담병원에 26명 등 총 486명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8명이 사망했다.

정신질환 당사자는 일반 확진자와 비교해 이중의 치료 부담이 요구된다. 이들이 확진되면 감염병 치료와 함께 정신질환에 대한 증상 조절이 함께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팬데믹 초기 이러한 치료가 가능한 병상이 부재해 당시 청도 대남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은 국립정신건강센터를 비롯해 국립정신병원 등으로 전원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작년 2월 이후 11개 의료기관에서 총 630명의 코로나19 확진 정신질환자가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다.

센터 측은 음압병동을 통해 정신질환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내과적·정신과적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런 시설은 전 세계에서도 매우 드물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 국가에서 기존 병동을 활용한 경우는 있었지만, 센터 음압병동처럼 특정 치료군 맞춤 병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 51병동의 사람들

음압병동은 센터 5층 51병동에 위치해 있다. 기자는 지난 5월 개소 이전 이곳을 방문해 준비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개소 이후 이달 초 재방문했을 때 이미 병동은 환자로 만원이었다. 4차 대유행의 여파 때문이었다. 중앙모니터에는 실시간으로 환자 활력징후(바이탈사인)가 표시되고, 중앙제어시스템에서는 온도와 압력이 자동 모니터링되고 있었다. 

의료부 임선진 전문의로부터 정신질환 당사자가 겪는 정신과적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다. 임 전문의는 “증상 조절을 잘하고 있는 환자도 감염이 스트레스 작용한다”며 “불안감이나 우울증이 악화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음압병동은 이러한 스트레스 취약 임상군에 대한 맞춤치료가 가능하다”며 “환자 반응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병동은 설계 단계부터 의료진의 의견이 대폭 반영됐다. 임 전문의는 “기존 음압시설보다 더 우수한 치료 환경”이라고 했다.

오후 4시경 전화가 울렸다. 신규 입원 환자가 곧 센터에 도착한다는 소식에 의료진들이 분주해졌다. 입원 병실 소독과 함께 방호복 차림의 간호사가 바쁘게 병동을 오갔다. 5층에 도착한 확진자의 모든 동선은 설치된 CCTV로 전달됐다. 감염자와 의료진의 동선은 색을 달리해 구분된다. 파란색 바닥은 의료진이, 흰색 바닥은 환자의 ‘길’이다.

이현준 감염전담병동 정신전문간호사

코로나19 1년 8개월. 의료진의 매일은 전쟁터와 다름없다. 이현준 감염전담병동 정신전문간호사는 작년 1월 인천공항 검역소 파견 근무를 마치고 다시 짐을 꾸렸다. 간호사인 아내가 지역 정신병원 파견을 자청하자 따라나선 것이었다. 그는 “파병을 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1차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라 전파 방법 등 정보가 제한적이었다. 해당 병원은 감염자를 돌볼 여건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환자들도 감염병 인지가 낮아 거리두기 등의 예방 수칙이 이뤄지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이었다.

전쟁터가 이렇지 않을까 싶었어요. 정신과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시설 조차 갖춰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음압병동 구축 시 이 간호사는 TF팀에 소속돼 설계 과정에 참여했다. 서서히 시설이 갖춰지자 이젠 제대로 된 케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동할 때, 그와 소속 의료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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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기자가 51병동에서 만난 의료진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돌덩이를 안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환자 치료를 마치고 땀에 젖은 동료의 모습을 볼 때나 감염돼 사망한 환자와 유가족을 볼 때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돌덩이 하나씩이 얹어진다.

이 간호사는 곧 아빠가 된다. 만삭의 아내는 아직도 의료 현장을 지킨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세상이 어떨지 불안하다고 했다. 그와 아내는 돌덩이 같은 걱정을 안고 오늘도 확진자를 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