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개정 교육과정'을 앞두고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두 자녀를 둔 학부모 걱정이 떠오른다. “애들이 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우려면 창의적 재량활동에 들어가야만 배울 수 있어요. 배우려는 아이들이 많아서 추첨으로 결정하는데, 이번에 추첨에 떨어져 학원에 보내야 하나 걱정입니다. 그런데 왜 학교에서는 이렇게 안 가르쳐 주는 거죠?”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내년에 총론이 고시되고 2025년 초등학교 1학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앞두고 공교육이나 국가에서 고민해야 할 걸 학부모가 걱정하고, 또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학교에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공교육이 중요한 것은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책임교육 관점에서 대충 끼워 맞추기 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내용을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교사가 가르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앞두고 최근 논의되는 내용 중 하나로 ‘늘리기만 하는 교육이 아니라 합하는 교육’이다. 이의 타깃으로 ‘정보’교육이 거론되고 있다. 수학 교육에 정보교육을 융합하는 에스토니아 사례를 들거나 과학에서 인공지능을 가르치거나 사회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교육이나 교육과정이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나라의 교육과정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이나 사회적인 상황을 함께 고려해 학생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정당하고 타당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교육에는 학생은 없고, 과목이나 학문적 이기주의만 보여 우려스럽다.
교육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짧게는 10년, 길게는 20~30년의 미래를 생각해서 설계하고 계획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준비해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당장 현실에서 준비가 어려우니 대강 붙여 하자거나, 지식이 부족한 이들에게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맡기자는 식의 교육과정이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융합'도 먼저 융합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융합교육을 교사의 책임으로 넘기고 교사가 융합해서 가르치기를 바라는 것인지, 학생이 융합적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인지가 불분명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학생이 융합적 인간으로 성장해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융합은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최종 목표다. 즉, 융합적 인간을 양성하는 것, 융합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융합적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려면, 초중등 과정에서 융합과 관련된 재료라 할 수 있는 교과(목)에 대한 교육은 필수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융합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내용을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
즉, 정보와의 융합을 위해서는 정보과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진 이후에 타 교과와의 융합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과정 논의를 보면 정보는 초중고 12년 동안 51시간만 가르치고 다른 교과와 융합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식이여서 걱정스럽다.
교사가 보여주는 융합에 대한 사례를 토대로, 한 두 번의 경험으로 학생들 융합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융합된 것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융합적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융합'은 한 두 번의 경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도구를 사용하는 수준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기초가 되는 몇 시간만 가르치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융합된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라는 정보과에 대한 시선이 있는데 이를 수학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수학에서 기초는 단순 계산부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가는 데 수학의 기초인 숫자를 읽거나 혹은 단순 계산 정도만 필요한 경우가 많다. 여기에 기초적인 계산이나 복잡한 계산은 계산기가 많은 부분을 해 준다. 이런 마당에 다양한 교과에서 계산기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을 수학과와의 융합이라 할 수 있을까?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읽고 쓰는 기초에 모든 과목의 수업에 한국말을 쓰고 있는데 이것을 국어과와의 융합이라 할 수 있을까?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과목의 내용을 분산하고, 가르치는 책임을 교사에게 떠 넘겨서도 안된다. 정보과와의 융합을 위해서는 정보과의 내용을 전문성 있는 정보 교사가 책임지고 가르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수학과 과학, 사회 교사에게 자신의 전공인 과목 이외에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해 융합교육을 해야 한다는 짐을 지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 않은 과목은 없다. 오히려 시수가 가장 많고, 학생들이 학업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드는 수학을 줄이고, 선택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시수를 확보해 주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다. 또한 교사들에게 모든 교육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이제 중단해야 한다.
수학에서 정보를 융합한다는 명목으로 수학 시수를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수학이나 과학에서 정보를 융합해 가르칠 수 있다고 하는 시간을 오히려 정보에만 할애해야 한다. 제대로 된 정보교육을 받고, 또 컴퓨팅 사고력으로 무장, 수학적 사고력이나 과학적 사고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던 수학이나 과학의 난제를 해결하게 하는 것에 대해 이를 늘리기만 하는 교육이고,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누가, 어떤 이유로 말할 수 있는가?
시대 변화에 따라 중요한 교과(목)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대 변화를 역행하려는 움직임은 오히려 학생들 미래를 참담하게 할 뿐이며, 학부모에게는 걱정을 또 교사에게는 과도한 수업 부담을 강요할 것이다. 미래를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인 컴퓨팅 사고력을 함양할 수 있는 유일한 교과(목)인 ‘정보'과(科)의 교육을 통해 학생에게 힘을 주고, 그들의 힘찬 도약을 응원해야 할 때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