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 5G 서비스가 상용화된 지 2년,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화두로 끌어올린 알파고 쇼크가 벌써 5년 전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혁신을 일궈내고 있는 ICT 산업은 코로나19로 또 다른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맞게 됐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환경 속에서 기술력으로 묵묵히 버티는 기업들의 성공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다. [편집자주]
“‘혜안’으로 데이터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게 회사의 모토다.”
암호기술 기업인 크립토랩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서울대 천정희 교수는 회사를 소개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동형암호와 최근에는 양자내성암호로 잘 알려진 기술벤처 회사에서 암호화 기술보다 데이터 시장에 관심이 크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천정희 교수가 데이터를 자유롭게 하겠다고 꼽은 ‘혜안’은 크립토랩이 가진 주요한 기술인 동형암호의 이름이다. 결국 정보보호가 바탕인 회사의 주력 사업 분야로 데이터 보호가 아니라 데이터 활용 쪽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데이터 경제라는 키워드가 부상하면서 데이터의 활용과 보호가 대립 관계에 있는 것처럼 일컫기도 하지만, 데이터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곳에서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순수 이론 수학을 연구해온 수학자로 시작해 20년 이상 암호기술 연구를 해온 천정희 교수가 주목한 점도 이 부분이다.
천 교수는 “사실 암호는 데이터를 자유롭지 못하게 막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왔다”며 “데이터의 활용을 인공지능이 맡는 문제라면 무조건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은 부작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능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를 잘 통제할 수 있는 기술로 동형암호를 찾았고, 데이터를 정말 편안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 보자는 게 우리의 목표”라면서 “전 세계 시장을 통틀어 다음 산업의 물결은 데이터 산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구체적인 사업은 데이터를 소유하거나 유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통제된 데이터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이 데이터 시장의 핵심이고 다음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차세대 보안 원천기술 확보, 데이터 가공 자신감 배경
차세대 암호기술 회사에서 암호화 기술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 산업을 통한 미래 먹거리를 논하는 점이 이목을 끌고 있지만, 크립토랩은 실제 차세대 암호기술로 이름값을 띄우고 있는 회사다.
크립토랩이 오래된 회사는 아니다. 지난 2017년 말 설립됐다. 천정희 교수가 속한 서울대산업수학센터에서 싹을 틔웠다. 기존 암호체계 시장에도 많은 기업이 있지만 동형암호라는 새로운 기술에 연구를 집중하면서 금융, 의료 분야에서 여러 협력 요청을 받았다. 또 동형암호를 활용한 각종 기술개발 과제에 선정됐다.
암호기술 개발 단계에서 동형암호와 호형호제가 가능한 관계에 있는 양자내성암호(PQC) 분야에서도 주목을 받는 회사다. 두 가지 암호기술을 갖췄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동형암호와 양자내성암호는 같은 뿌리에서 시작한 다른 가지라고 볼 수 있다”며 “동형암호의 시작은 양자내성 기술에서 암호를 만들다 특이한 성질을 찾은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행렬처럼 쉽고, 인수분해보다 수학적으로 풍부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 암호 체계에서 없던 암호화된 계산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 기술을 통신망에 활용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만들면 현재 구현한 양자내성암호 방식으로 쓰이고 보안을 키워놓으면 동형암호가 되는 식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동형암호 기술을 개발시켜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분석도 할 수 있는 데이터 통계분석을 상용화하게 됐고, 양자컴퓨팅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차세대 양자내성암호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 “양자컴퓨팅 시대, 국가 보안도 걱정 없다”
동형암호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고, 상용화까지 이끈 점은 관련 산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주목하는 점이다. 아울러 동형암호의 어려움으로 꼽히는 연산 속도 문제도 빠르게 해결하고 있다.
양자내성암호 분야에서도 관련 기술을 선점해 나가고 있다. 지난 2019년 LG유플러스가 양자 보안 기술을 위해 크립토랩에 손을 내민 뒤, 이듬해에는 디지털 뉴딜 사업의 용역 과제도 수행했다. 광전송장비에 양자내성암호 기술을 적용해 검증을 마쳤다.
최근에는 디지털 뉴딜 사업 과제 수행을 넘어 LG유플러스가 지분을 투자하기도 했다. 두 회사가 상용통신망 전 구간에 양자내성암호를 적용하고, 향후 6G 이동통신에서도 보안성을 강화하기 위한 걸음이 시작됐다.
천 교수는 회사가 가진 양자내성암호 기술을 두고 기존 보안 메커니즘을 모두 충족시키는 동시에 기술 표준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국제관계를 고려해 국가적인 보안까지 갖출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양자암호가 기존 보안을 양자 방식으로 대체하려면 결국 기존 보안 시장의 통신과 컴퓨팅 보안, 인증, 데이터 암호화 등이 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양자내성암호 없이는 양자통신이 살아남을 수 없게 하는 존재다”고 말했다.
이어, “통신 구간에서 양자암호를 사용할 때 키 교환과 암호화, 인증 모두 필요한데 양자내성암호는 이 모두가 가능하다”며 “양자에 대한 고민과 관심을 현재 수준까지 이끌어오는데 키분배에 집중한 방식의 역할이 컸는데 저장, 전송, 계산 등 데이터가 존재하는 곳에서 모두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데 양자내성암호의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양자내성암호의 이같은 특징 때문에 미국이나 한국이 상대하는 우방국들이 이 기술을 표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국가 보안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 일상의 비대면, 양자컴퓨팅 시대는 코로나 이상의 혼란
양자암호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양자컴퓨팅이 시작될 경우 기존 암호화 체계의 붕괴가 이뤄질 것이란 점 때문이다. 당장 직면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일지 모르는 보안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이 양자암호 기술개발이고,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양자컴퓨팅도 동시에 연구가 이뤄지는 식이다.
천 교수는 “양자암호는 앞으로 반드시 개발이 이뤄져야 할 분야지만, 양자컴퓨팅이 아직 실용적인 암호체계를 무너뜨릴 만큼은 아니기 때문에 눈앞에 닥친 위협은 아닐 수 있다”면서도 “언제 문제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대비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미리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절벽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면서 “양자컴퓨팅의 기술 발전 속도와 별도로 코로나 이후로 확산된 비대면 문화를 고려할 때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상이 비대면으로 바뀐 지금, 해커들에게는 잔칫상이 차려져 있다는 점을 특히 주목했다.
비즈니스는 물론 공공의 회의와 교육 등이 온라인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기에 보안의 위협이 여러 곳에서 커져있고, 기존 암호화를 무력하게 하는 양자컴퓨팅이 등장하면 사회 경제적인 혼란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만약 양자컴퓨팅이 지금 암호체계를 파괴시킬 수준으로 등장하면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시대 이상의 혼란이 올 것”이라면서 “이를테면 공인인증 기반의 전자상거래 시장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같은 위협에 대비해 양자내성암호 기술을 선점해 나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정보보호와 함께 데이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암호기술에 매진하고 있다는 천 교수는 법(法)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실제 회사 직원의 상당수를 법 분야로 채우려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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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보보호와 법 규제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됐다”며 “암호는 사람과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데이터와 관련한 법률적인 문제가 따라붙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데이터를 지켜주는 물리적인 평가 기준인 법적 기준을 맞추는 규제 이슈만 있을 뿐만 아니라 법 집행 단계에서 포렌식 등도 결국 우리와 같은 암호화 기술 기업의 역할이 있다”며 “암호 기술은 지키는데 끝나지 않고 결국 데이터를 활용하는 문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