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CIO 기구인 ‘디지털행정처’ 설치해 전자정부 강국 위상 지키자

"디지털 정부 뿌리 내리려면 새 거버넌스 필요해"

전문가 칼럼입력 :2021/07/29 08:30

안문석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 예약 사이트가 여러 차례 접속오류를 반복되자 대통령이 나서 정보기술 강국인 한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며 강하게 질책하고 질병관리청, 행안부, 과기정통부, 청와대등이 협력해서 범정부차원에서 백신 시스템 오류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눈에 띄는 대목이 “IT강국인 한국의 위상에 맞지 않다”는 말과 ‘범정부적 차원의 협력“이다. 사실, 한국의 전자정부와 정보화는 세계가 칭송하는 걸작품이었다. 전자정부는 과거 유엔에서 3차례 6년간 1등을 했고, 정보화 관련한 다른 지표에서도 한국은 단연 선두국가였다.

그런데 백신예약 같은 ‘사소한 기술적 문제’까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책을 지시할 정도라면, 전자정부와 관련해 거버넌스 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제공=픽사베이)

언론 보도를 보면 다른 기관에서도 ‘사소한’ 사고가 틈틈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0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담당자의 실수로’ 평가 점수를 잘못 입력해 종합등급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 어떤 기관에서는 ‘담당자의 실수’로 ‘점수가 잘못 처리돼’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뒤바뀌었다고 하고, 이 기관에서는 지난해 12월에도 별도 시험장 응시자의 점수가 늦게 입력돼 합격자가 뒤바뀌었다고 한다.

사고가 나면 관련기관은 담당자의 단순한 실수로 치부해 담당자를 문책하고 TF를 구성하는 등 뒷북을 친다. 문제는 담당자를 교체한다고 해서 이런 실수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시스템 구축은 일종의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드웨어, 데이터, 네트워크, 그리고 이용자의 정보이용행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보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전자정부와 같은 공공정보시스템 구축과정에서는 불확실한 이용자의 이용행태를 예측해 미리 대비해야 한다.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인간이 만드는 이상, 컴퓨터 프로그램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실제 행정에 이용하기 전에 반드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간에 쫓겨서 검증과정 없이 그냥 실행에 옮기면 그것이 ‘사고’의 원인이 된다.

과거, 정보처리를 하는 기관의 시스템분석가는 항상 전자계산기를 소지하고 다녔다. 구축된 정보시스템을 행정에 투입하기 전에 수작업 처리와 컴퓨터 처리를 병행적으로 처리하면서 오류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사고’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사소한 사고는 다음에 발생할 대형사고의 전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미래의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훼손된 ICT 강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첫째, 부처 내 전산업무를 기획 조정하고 데이터 공유를 촉진하고, 전산처리 과정에서 나타날 문제점을 미리 검증하고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부처 내 CIO(최고정보관리책임자)를 임명해야 한다. 아쉽게도 2000년대 까지 존재하던 부처 내 CIO는 지금은 그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 전자정부 11대 과제를 구축할 때 당시 대통령은 각 부처 차관을 CIO로 임명해 책임을 부여했었다.

둘째, 전자정부 시스템이 고도화되면 부처 내 데이터 공유를 넘어서 부처 간 데이터 공유가 문제가 된다. 그래서 범부처 데이터 공유와 협력을 주된 임무로 하는 새로운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부처 간 협업이 문제가 될 때 마다, 대통령이 나서서 조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일을 지금은 행안부 디지털정부국에서 수행하고 있는데, 국 수준의 조직으로는 현실적으로 부처 간 조정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미래 국부의 원천이 되는 미래 세상에서, 부처 간 데이터 공유와 협업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될 것이다. 국가 CIO의 중요성을 감안해 국무총리 소속의 (가칭)‘디지털행정처’을 설치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공무원들에게 컴퓨터 마인드를 다시 확산해야 한다.

공무원 교육원 등에서 실시하는 공무원 재교육 과정에서 공공정보시스템과 관련한 과목을 추가하고 교육해 컴퓨터마인드를 확산해야 한다. 미래에는 공무원들이 4차산업혁명을 촉발한 첨단 ICT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들 과목도 교육에 포함해야 할 것이다. 과거 정보화 사회 초기, 공무원 시험에서 전산개론과 정보체계론이 1차 필수과목으로 지정됐었다. 이 조치는 그 후 사라졌지만, 상당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공=픽사베이)

우리나라의 전자정부는 이제 우리 생활에 밀착돼 있어서 공기와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공기는 너무도 소중한 존재지만, 그 중요성을 우리는 잊고 산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에 공기에 문제가 생기면 큰 고통을 느낀다. 전자정부도 작동이 잘 안되면 그 고통을 느낀다. 이제라도 소중한 한국의 전자정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할 것 같다.

디행히 현 정부는 한국 전자정부의 공헌과 중요성을 감안해 몇 년 전에 ‘전자정부 5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했고, ‘전자정부의 날’을 지정해 미래 세대가 전자정부를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전자정부추진위원회를 통해 최근까지 공공부문의 데이터 공유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고, 4차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미래를 대비한 디지털 정부 마스트 플랜을 마련하기도 했다.

디지털 정부가 뿌리를 내리려면 새로운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새로운 거버넌스를 통해 세계 제1의 디지털정부 위상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잘 나갈 때가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전자정부 분야에서도 정책수립가가 과거의 성공에 취해서 의미 있는 제도와 조직을 없애는 ‘성공의 실패’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전자정부는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차관급 이상의 국가CIO 조직을 만들 때가 이제 된 것 같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문석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전자정부특별위원장, 규제개혁위원장,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장,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ES) 이사장, 고려대학교 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미래모빌리티포럼의 초대 의장으로도 추대돼 국내 e모빌리티산업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