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적 부수인증제도 시효 다해... 제3의 기관에 위탁하거나 새 방법론 고심해야

[박양우 전 문체부 장관 특별인터뷰] 악의적 보도에 대한 구제 수단 부족... 징벌적 손해배상제 원칙적 찬성

디지털경제입력 :2021/07/21 08:32    수정: 2021/07/24 12:10

경니권패(經泥權悖). 지난 2019년 4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제51대 문화체육관광부 수장을 지낸 박양우 전 장관이 세종청사를 떠나며 남긴 말이다.

박 전 장관은 ‘원칙을 아는데 변통을 모르면 고착되고, 변통을 아는데 원칙을 모르면 일그러진다’는 뜻의 이 말을 통해 현실에 맞는 탄력 있는 정부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치권을 떠나 학계로 돌아왔음에도 박 전 장관은 문체부가 직면한 각종 현안에 대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상황에 맞는 탄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론을 고수했다.

박 전 장관은 가짜뉴스, 혹은 악의적인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세간의 갑론을박에 대해서는 언론의 자유 위축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하면서도 보도의 대상이 되는 개인과 단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밝혔다.

또 부수 조작 의혹이 일고 있는 ABC협회의 부수 인증 신뢰성에 대해서는 ABC협회가 스스로 타개해야 할 사안이라고 못 박았다. 문체부에 대해서는 만약 필요하다면 신뢰성 확보를 위해 언론진흥재단 혹은 사회조사기관에게 의뢰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박양우 전 문체부 장관.

다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구독 행태가 오프라인 신문보다 온라인과 유튜브 미디어가 더 각광 받고 있는 만큼 신문의 구독 부수를 인증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박 전 장관은 이와 함께 산업정책과 관련해서는 네거티브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산업 분야를 불문하고 기본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사회질서에 관한 최소한의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기업이 자유롭게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야말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정책적 지향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감사제도의 획기적인 개선이 있어야 규제 완화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인 관료제의 경직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박 전 장관은 재임 당시 한류 붐 조성과 수출에 관심을 기울였던 점을 떠올리며 향후 한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정책적 지향점을 주문했다. 이번 대담은 박승정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ABC협회 부수 조작 의혹 신뢰 ‘타격’... 온라인·모바일 대세 속 철지난 부수 타령

박승정 편집국장 : 최근 ABC협회의 부수 인증 신뢰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정부가 ABC협회의 인증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박양우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제가 장관 재임 당시 이에 대한 실사 조사를 진행했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ABC협회 부수 인증 제도의 취지는 실부수를 확인해 광고주에게 이른바 광고단가 등 여러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자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뢰도가 떨어지며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정부도 ABC협회의 부수 인증을 정책 활용의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 문제는 결국 ABC협회가 스스로 타개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박승정 : 지금은 미디어의 신시대가 전개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BC 부수 인증 제도가 이런 시대에 맞는지 근본적인 제도의 취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양우 : 맞습니다. 이런 불신 속에서 인증 제도를 과연 유지해야 하느냐에 대한 목소리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향후 언론진흥재단을 통해 진행하거나 객관성 있는 조사기관을 활용한다면 신뢰성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정부가 향후 공적 지원을 하려면 이런 식의 대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더 이상 신문 발행 부수를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부수 인증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라는 얘깁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과 모바일의 구독이 각광 받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짜뉴스·악의적 보도 폐해 ‘인정’... 동시에 언론자유 위축 경계해야

박승정 : 악의적 언론보도와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박양우 : 언론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민주사회라 볼 수 없습니다. 언론이 자기가 취재한 것을 제대로 기사화 할 수 없다면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헌법에는 언론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했을 때의 배상 책임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언론 환경은 기존의 언론 시스템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하고 미디어의 형태도 다양해졌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더욱 커질 것이고 뉴스를 송출하는 수단과 공간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지금의 문제는 보도의 대상이 되는 개인과 단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새로운 시각에서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현재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문제는 헌법에, 손해배상 문제는 민법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런 법안들이 실질적인 피해 상황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기존 제도가 형식적으로 기능은 갖추고 있다고 보지만 실질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서구에 비해 우리나라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부정확한 보도나 악의적인 보도에 대해 구제수단이나 실질적 보상 제공이 미흡했다는 얘깁니다.

박승정 : 법 취지는 이해하나 이로 인한 언론 보도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박양우 : 당연합니다. 그래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시행함에 있어서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인 경우라는 조건이 붙어야 합니다. 언론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왜곡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또 정확한 보도라고 해도 사람의 생명을 압박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법언이 있습니다.

이는 언론에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결국 입법 과정에서 법안의 구성 요건을 신중을 기해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존 사법부의 판결과 판례가 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걸로 봅니다.

대전환의 시대 신산업... 새 시도 권장 네거티브 규제가 포인트

박승정 : 현 정부의 산업 규제와 진흥 정책의 기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박양우 : 4차 산업혁명기에는 모든 것이 바뀌는 대전환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른바 ‘네거티브 규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와 관광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화나 관광은 구독경제나 공유경제와 같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위생이나 안전, 사행성 측면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규제를 최소화하고 자유롭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시도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신산업은 분야를 불문하고 기본적으로 네거티브 규제가 좋다는 생각입니다.

박승정 : 그런데도 관료사회는 아직 규제 완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박양우 : 관료는 규정에 의해 움직입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죠.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부처 사이에 ‘적극행정위원회’를 두고 설령 규제 규정이 있더라도 그것이 기업이나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일시적으로 유예하면 됩니다. 그 이후 법규를 수정해도 됩니다.

규제 완화의 핵심은 감사로 인한 처벌을 면해 주겠다는 것이죠. 규제적인 측면의 감사로 담당자가 처벌을 받는 문화가 있다면 규제 완화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제도의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관료문화도 물론 하루빨리 바뀌어야 합니다. 관료 사회에서 규제는 그 자체로 힘(Power)으로 여겨집니다. 규제 권한을 갖고 있으면 힘이 됩니다. 실제로 로펌에서 규제기관 출신 퇴임관료를 원하는 것이 이런 점을 증명합니다.

"게임 강제적 셧다운제...여러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박승정 : 규제 얘기가 나온 김에 게임 분야의 강제적 셧다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박양우 : 모든 정책에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셧다운제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만들어졌기에 의미는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런 측면에서 만들어진 제도라도 이를 게임만 갖고 이야기할 것인지 봐야 합니다. 과몰입에 관한 문제는 게임 외에도 적용되기에 게임 강제적 셧다운제는 형평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게임이 과연 과몰입의 속성만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게임은 이미 이 사회의 문화로 정착했다고 봅니다. 지하철에서 모든 승객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고 해서 모든 승객의 스마트폰 이용을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게임이 문화가 됐는데 게임에 셧다운제를 적용하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게임의 강제적 셧다운제는 게임의 본질과 형평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실효성 문제도 있습니다. 셧다운제에서 빠져나가려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현실에서 과연 이 제도가 실효성이 있느냐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오히려 이용자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류 다방면서 더 가능성 있다... 순수예술도 생태계 구축 차원 지원해야”

박승정 : 한류로 들어가 볼까요. 한류는 대체 어떤 것이고, 그것을 더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박양우 :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에는 자유가 제일 중요합니다. 자유가 창작의 힘이라는 의미를 꼭 생각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의 블랙리스트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누구는 지원하고 누구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거치면서도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문화예술 분야에 자유가 정립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부의 지원이 한 몫을 했습니다. 특히 재정지원 측면에서 서구에서 안 하는 것을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서양은 주로 세금 정책으로 문화예술을 지원하지만 우리는 세제 지원이 약한 대신 국고보조와 금융지원이 강합니다. 특히 모태펀드가 한류 확산에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K팝이나 영화에 집중됐던 한류의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역도 동남아시아를 넘어 더욱 넓어져야 합니다. 여타 산업과도 연계해야 합니다. 한류의 파급력이 커졌기 때문에 다른 제조업과 연계하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한류 콘텐츠를 기술과 융합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지닌 콘텐츠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앞으로 콘텐츠산업의 성패, 한류의 성공과 실패가 갈릴 것이라고 봅니다. 정부가 이런 측면에 중점을 두고 현장에 있는 한류 기업을 지원한다면 한류의 더 큰 성장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승정 : 한류 장르나 지역의 확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박양우 : 대부분 한류라고 하면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순수예술 분야는 경제성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탓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정말 발전이 없습니다.

순수예술도 생태계를 만들고 산업화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일부 순수예술인 사이에서는 예술을 왜 산업화하냐고 거부하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순수예술이 더불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생태계 구축과 관련한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깁니다.

우리나라도 훌륭한 소설, 시, 희곡이 나오고 있는데도 국내 시장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번역과 출판의 문제입니다. 글로벌 출판사와 연계한다면 국내 소설과 시로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번역이 잘 됐고 세계적인 출판사와 연계가 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상징적인 사례라고 봅니다. 이렇게 시장과 유통이 연계돼지 않으면 산업화는 되지 않습니다.

정부가 국내 작품을 세계적인 출판사와 연계시켜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이를 지원하면 글로벌 출판사는 좋은 번역가를 동원하고 마케팅을 펼치게 됩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는 겁니다.

미술 역시 글로벌 옥션, 갤러리와의 연계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렇듯 각 분야마다 세계화 할 것이 많습니다.

"기술이 중시되는 시대... 인간 가치에 대한 논의도 문화 뉴딜에 포함돼야"

박승정 :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에 이어 문화 뉴딜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양우 : 문화 뉴딜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합니다. 하지만 뉴딜이 어떤 기술 지향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속도로를 만들어도 그 위에 차와 사람이 다녀야 의미가 있는 것처럼 기술이 있다면 이 기술에 채워 넣을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콘텐츠가 국력입니다.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 국민의 삶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국민이 얼마나 우울하고 불안한지를 알고 이를 녹여줘야 합니다. 불안하고 우울한 국민이 안정을 느끼고 진정한 정신 건강을 찾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할 때입니다.

정부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국민의 삶을 위한 고민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책을 읽고 공연을 접하고 미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 부처는 꾸준히 준비 작업을 해야 합니다.

"정권 교체기의 조직개편...부처 바꾸는게 능사는 아니야"

박승정 :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부 조직개편 얘기가 들려오는데, 문체부 전 장관 입장에서 조직개편에 대한 견해는 무엇입니까.

박양우 : 정부부처는 고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정부 조직은 시대상에 따라 다르고 정당의 정책 철학에 따라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의 조직개편에 대한 관점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선진국들은 부처를 자꾸 바꾸지 않습니다. 부처 개편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영국의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가 좋은 표본이라 생각합니다.

조직개편을 통한 기능의 변화는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잦은 개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인데 조직 바꾸고 뭐 바꾸면 구성원들은 적응에만 적어도 2~3년이 걸립니다.

기술부처는 기초 기술을 정책으로 잘 다루고 각 부처는 이를 받아서 자신의 분야에 접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콘텐츠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기술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통부가 일부 중복해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깔려있는 공통의 자산입니다. 백남준 선생의 비디오아트를 예로 들어볼까요. 백남준 선생은 예술가지 기술자는 아닙니다. 기술자에게 비디오아트를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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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매개입니다. 모든 분야에 다 활용됩니다. 위의 백남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콘텐츠라고 해서 이를 기술부처가 가져가는 식의 해석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문화콘텐츠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맡고, 과학기술정통부는 다른 부처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과학기술 개발이라는 본연의 일을 맡으면 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