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0일부터 격주로 연재해 왔던 ‘IT는 포스트 노멀 시대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 연재다. 원래 30회 연재를 계획하고 시작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20회 연재에서 마무리하게 됐다. 부족한 칼럼을 연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신 지디넷코리아와 그동안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채희태]
모든 진화의 키워드는 상호 작용!
인간은 자연을 포함한 외부 환경과 적극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진화해 왔다. 외부 환경과 상호 작용을 하기에 인간은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 아니 상호 작용을 더 잘하기 위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오랜 시간에 걸쳐 털이 제거되고, 부드러운 살갗을 갖게 됐는지 모른다. 갑각류는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에워쌌지만, 그 껍질이 외부와의 상호 작용을 차단해 안타깝게도 진화가 멈춘 채 현재에 이르렀다.
우리는 우리의 먼 조상이었던 연체동물 이래로 생명체가 따랐던 두 가지 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동물들은 골격을 세워야만 했습니다. 몇몇 종(種)들은 조직 내부에 뼈를 만들었고, 다른 동물들은 조직 전체를 둘러싸는 딱딱한 껍질을 만들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분명 효율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더 확실히 보호되는 듯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생체기관들이 드러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딱딱한 껍질은 변형시키거나 적응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가장 창조적인 진화를 한 것은 가장 보호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종이었습니다. (알베르 자카르,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 중)
현대 사회에서 상호 작용은 기업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기업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경쟁 기업, 신기술, 불확실하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 때때로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와 상호 작용을 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상호 작용에 능숙한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지만, 상호 작용을 거부한 기업은 시장 속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개인용 컴퓨터(이하 PC) 시장을 개척한 애플은 매킨토시가 갖고 있는 우월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IBM 호환 컴퓨터와 손을 잡은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IBM과 MS, 그리고 Intel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PC의 진보를 이끌었다면, 애플은 시대를 앞서갔던 그 우월함을 지키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독자 개발하며 상호 작용을 거부해 스스로 궁지에 몰렸다.
1997년,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PC가 아닌 모바일 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2007년 애플은 아이폰으로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애플은 매킨토시의 CPU의 개발을 인텔에 맡기고, 모바일에서 저전력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CPU의 명령어를 최소화해 단순하게 제작된 프로세서) 기반 CPU 개발에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말 모바일에서만 사용하던 RISC 기반 M1 CPU를 맥북에 탑재해 또다시 PC 시장을 흔들고 있다. M1을 탑재한 맥북은 심지어 전력을 더 많이 소비하는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er, 복잡하고 기능이 많은 명령어로 구성된 프로세서) 기반 x86 CPU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보이고 있어 머지않아 애플 컴퓨터에서 인텔 CPU를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애플은 데스크톱과 랩톱, 그리고 모바일과 그 사이를 이어주는 다양한 액세서리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며 진화하는 매우 강력한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얼굴, 이모티콘
약육강식의 자연계 속에서 생존과 번식을 목표로 살아가는 동물들과 다르게, 문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은 인간계 내부의 상호 작용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인간의 얼굴은 생김새뿐만 아니라 ‘행동’, 즉 움직임과 표현력 면에서도 다른 포유류와 확연히 다르다. 인간과 침팬지, 여우가 각각 자신들의 동료(동종)와 소통하는 모습을 관찰해 보면 세 동물 모두에서 얼굴의 표정 변화가 나타나지만, 침팬지와 인간의 얼굴 표정이 여우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인간의 표정이 침팬지보다 더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얼굴 표정 변화는 대화를 할 때 특히 더 두드러진다. 두 사람이 일대일로, 다시 말해 문자 그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때 여우와 침팬지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얼굴 표정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이 발생한다. (애덤 윌킨스,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중)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19로 인해 인간의 상호 작용은 급속히 위축됐다. 세계 간 이동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코로나 확진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며 사람과 사람의 상호 작용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코로나 확진자 수가 1일, 천 명을 넘어서자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최고 단계인 4단계로 격상했다.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이미 충분한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다. 출근이나 등굣길, 회사나 학교,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의 만남, 가족이 모인 집 안 등 그동안 우리들의 일상은 물리적으로는 밀착돼 있었는지 모르지만, 심리적 관심은 오로지 5인치 남짓의 액정만을 향하고 있었다. SNS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해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지만,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소외시켰다. 이는 디지털 인류가 선택한 진화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기성세대는 오랫동안 익숙해진 오프라인을 고집하지만, 다양한 정보 기기의 세례를 받으며 태어난 청년 세대는 '내용'보다 '위계'가 더 중요해진 오프라인 세상에서 벗어나 온라인 세상에 새로운 진지를 구축했다. 그리고 오프라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전해 왔던 IT는 이제 온라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화하고 있다. 그 예 중 하나가 바로 이모티콘의 등장이다.
국민 누구나 하나쯤 사용하는 이모티콘은 비대면 시대에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일반 기업은 물론 구찌나 티파니 같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에서도 전용 이모티콘을 무료로 배포하고, 정부 행사나 기념일을 알리는 데도 이모티콘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새로운 국민 콘텐츠이자 소통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모티콘 시장 규모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3천억~5천억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매일경제, 내 기분을 말해주는 나의 분신, 이모티콘의 경제학)
IT, 모티브의 링크를 통한 상호 작용 지원해야…
나비가 되는 꿈을 꾼 장자가 자신이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자신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처럼, 오프라인(대면)과 온라인(비대면)의 관계는 마치 장자와 나비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오프라인을 위해 온라인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온라인을 위해 오프라인이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시기적으로 그리고 인과적으로 오프라인이 먼저 시작됐고, 오프라인을 보완하기 위해 온라인이 비롯됐다고 해서 단순하게 온라인이 오프라인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푸른색은 쪽풀에서 취했지만 그 색이 쪽풀보다 더 푸르고, 물이 얼어 얼음이 되지만 얼음이 물보다 더 차가운 것처럼 온라인은 이미 오프라인보다 더 독립적이며 자기완결적인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의 기대와는 달리 온라인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지 않다. 온라인은 그저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수단이자 방식일 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비대면이다. 그동안 어떻게든 위계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오프라인을 유지해 왔는지는 모르지만, 바야흐로 진화의 키워드였던 상호 작용의 수단으로 온라인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도래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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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세상에서는 그동안 오프라인에서 나이와 자격 등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위계가 옅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인에게 강제로 부여된 '모티베이션'보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모티브'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온라인은 개인과 개인의 모티브가 링크된 세상이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모티브가 없다면 그 누구도 링크를 강제할 수 없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당근마켓'은 지역을 중심으로 판매와 구매의 모티브를 링크해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비대면이 중심이 되는 온라인 시대에 IT에게 주어진 역할은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는 다양한 모티브를 깨우는 것이고, 그 모티브를 링크해 소모적인 위계를 제거하는 것이고, 모티브 간의 상호 작용을 촉진해 범람하는 정보의 중복과 사각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은 그저 온라인을 거들 뿐…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