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출실적이 호조세를 잇고 있지만, 수출기업 10곳 중 8곳은 '글로벌 경쟁격화'를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0곳 중 6곳은 마진율 감소를, 10곳 중 5곳은 시장점유율 하락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기저효과와 반도체 경기 호조에 가려진 대다수 수출기업들의 경쟁격화, 시장점유율 하락, 마진율 감소의 '3중고'를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1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수출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글로벌 경쟁상황 변화와 우리 기업의 대응실태'를 조사한 결과, 해외 경쟁강도가 '격화추세'라고 응답한 기업은 79.3%에 달했다. 반면에 '약화추세'라고 답한 기업은 15.3%에 그쳤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기업들 국제경쟁 우려 늘었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요인으로 '경쟁기업의 증가(61.3%)'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시장성장세 둔화'가 46.4%, '기술혁신 가속화'가 34.7%였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로 경쟁하는 기업이 속한 국가는 '중국(42.3%)', '미국(26.0%)', '일본(20.3%)', '유럽연합(EU, 18.3%)' 순으로 나타났다. '베트남(9.7%)'을 지목한 기업도 일부 있었다. 국내 기업을 경쟁사로 보는 의견도 35.0%에 달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수출호조에도 이처럼 글로벌 경쟁격화의 의견이 많이 나온 것은 포스트코로나로 점차 본격화하는 국제경쟁에 대한 경계심과 우려 때문"이라며 "반도체·배터리 등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주요국의 신산업 선점경쟁이 가속화하고 ESG 경영, 양적완화 축소, 탄소세 부과 등 새로운 도전과 미래 불확실성이 누적되는 것도 작용 중"이라고 했다.
경쟁이 격화하고 가격인상은 어려워지면서 마진율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응답기업 중 최근 '마진율 감소'를 경험한 기업은 64.0%였다.
원가상승을 수출가격에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했다. 최근 국제유가·원자재가격 상승이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의 76.3%는 '생산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상승분을 수출가격에 전부 반영하는 기업은 9.2%에 그쳤다. 부분 반영하는 기업이 68.5%,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기업도 12.2%로 조사됐다.
기계장치 제조 A사 관계자는 "원가가 오른 만큼 수출가격에 반영하려고 해도 해외 발주처에서 거부감이 크고 수용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원가 상승이 가격에 반영되는 정도는 잘해야 30% 수준에 그친다"고 했다.
전자부품 수출 B사 관계자는 "주력제품의 수요처가 몇 군데로 정해져 있고, 가격경쟁이 치열한 분야라 원가인상을 전가하기 쉽지 않다"며 "지금처럼 원자재가격이 급격히 뛰면 다른 경비를 줄여야 수지를 맞출 수 있어 여유는 없어진다"고 했다.
최근 사업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비자니즈나 시장트렌드 변화를 묻는 질문엔 친환경·사회적가치 중시 등 '가치소비가 늘고 있다'는 응답이 53.0%를 기록했다. 비대면·온라인화 등 '거래방식 변화'를 꼽은 기업은 43.3%였다.
시장트렌드 변화에 기업의 대응압박도 커지고 있다. 시장트렌트 변화에 따른 영향을 묻는 질문에 소비재 수출기업의 절반 가까이(47.8%)는 신제품 출시를 자주하고 일정을 앞당기는 '제품출시주기 단축'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인력·기술력 부족이 디지털기술 활용 막고 있어"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선제적 혁신을 추진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려는 노력은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디지털기술 가운데 활용중이거나 활용계획이 있는 분야론 '스마트팩토리'와 '로봇'이 가장 많이 꼽혔지만, 그 비율은 36.3%에 그쳤다. 코로나 사태 이후 주목받는 '온라인플랫폼 구축·연계'를 꼽은 기업은 29.4%였다. 디지털전환의 핵심기술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관련 응답은 28.0%와 16.7%에 불과했다.
디지털기술 활용을 가로막는 걸림돌론 '인력·기술력 부족(59.6%)'이 과반을 넘었다. '막대한 투자비용이 부담된다'는 의견도 32.7%에 달했다. '방법을 잘 몰라서'라는 의견은 7.7%였다.
융복합시대에 맞춰 예술이나 인문학 등을 접목하려는 시도도 활발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기술개발이나 신제품 출시에 예술이나 인문학의 활용이 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엔 '그렇다'는 응답이 각각 15.3%와 14.0%에 그쳤다.
송유철 동덕여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친환경·디지털화를 비롯한 기술과 시장의 변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고, 파괴력도 커지고 있다"며 "디지털화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정착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궤도에 오르면 적은 비용으로도 경쟁력을 극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만큼, 산업계의 적극적인 관심과 추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출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 확보를 위한 과제로 '기업 간, 부문 간 협업네트워크 구축(35.3%)'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 이어 '우수인재 양성(23.7%)', '통신·에너지를 비롯한 신산업인프라 확충(15.0%)', '데이터·신기술 활용 등 혁신여건 조성(14.7%)', '규제개선(11.3%)'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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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확보가 필요한 분야에 대해선 '설계와 연구·개발(35.5%)', '영업·마케팅(23.7%)', '사업기획(14.8%)', '데이터 분석(12.4%)', '공급망 관리(4.7%)' 순으로 응답이 많았다. 설계와 연구·개발분야에선 '소프트웨어 개발(20.1%)'이 인력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최규종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디지털화·친환경 등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인데 경쟁격화와 마진감소, 신제품출시 등으로 기업의 연구·개발과 미래투자에 대한 부담이 크다"며 "차세대 통신·데이터·에너지 인프라투자 확대, 대규모 투자자금 유치가 가능하도록 펀딩 관련 규제완화 등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