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상자산 거래소, 은행 '확약서'로 FIU 신고 가능

금융위, 가상자산 거래소 간담회서 방침 밝혀

컴퓨팅입력 :2021/06/05 09:32    수정: 2021/06/06 16:11

금융위원회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20곳을 만난 자리에서,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업체라도 은행의 '확약서'를 받으면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수리가 가능하다는 방침을 밝혔다. '신고가 수리될 경우 계좌를 발급하겠다'는 약속을 은행으로부터 받아오면, 신고 수리 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원화를 취급하는 가상자산 거래소는 개정 특금법에 따라 실명확인계좌 획득 등의 요건을 갖춰 오는 9월24일까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있다. 이에  실명계좌 발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존폐기로에 선 중소거래소들은 이번 방침 확인으로 실낱 같은 희망이 생겼다는 분위기다.

5일 관련 업계와 정부 관계부처에 따르면 금융위 FIU는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가상자산 거래소 신고등록 안내 간담회'를 통해 사업자들에게 이 같은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지=뉴스1)

이날 간담회는 지난달 28일 가상자산 관계부처 TF 회의에서 금융위가 가상자산 사업자 관리 주무부처로 지정된 이후 첫 후속 조치 차원에서 마련됐다.

간담회는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수리 요건 중 하나인 정보보호체계(ISMS) 인증을 획득한 20개 업체를 대상으로, 금융 당국 관계자가 짧게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요건 및 보완사항'을 설명한 후 질의응답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간담회에 참석한 복수의 업체 담당자들에 따르면 이날 참석자들은 은행 실명계좌 획득과 관련한 질문을 쏟아냈다. 실명계좌를 개설하기 전이라도, 은행의 확약서를 받아오면 신고 수리가 가능하다는 금융위 방침도 질의응답과정에서 확인됐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과 금융위가 실명계좌 발급을 놓고 공을 떠넘기고 있어 답답하다는 호소와 도움요청이 계속됐다"며 "그러자 금융위에서 은행의 확약서도 받아 주겠다는 답변을 내놨다"고 말했다.

FIU를 통해서도 신고 서류 제출 시 은행 확약서가 허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FIU관계자는 "은행과 계약을 할 때 신고 수리가 되면 실명계좌가 발급된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받아, 신고 접수 시 가져오면 된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확약서를 허용한 이유는 특금법 시행령 상 명시된 실명계좌 발급 요건이 다소 불명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금법 시행령 제10조18항에는 '은행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신고가 수리되는 것을 조건으로 실명계좌를 개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특금법 7조에는 실명계좌가 없는 상태를 신고 수리 요건을 갖추지 못한 '신고 불수리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실명계좌가 없으면 신고 수리 요건 미달로, 신고 접수 조차할 수 없다.

결국 사업자는 '계좌 없으면 신고 수리 불가→신고 수리 안되면 계좌 발급 불가'라는 순환논리 오류'에 빠지게 된다. 시행령에 명시한 조건부 실명계좌 발급이 현실에 적용되려면, 은행 확인서만으로 신고 수리가 가능해질 필요가 있다.

FIU 관계자도 은행 확약서 허용 배경에 대해 "신고수리와 계좌발급이 동시에 이뤄질 수 없으니 순환논리가 있을 수 있어 확약서로 신고 수리가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은행 확약서로 실명계좌 확보 서류를 대체할 수 있게 하자는 논의는 특금법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이미 다뤄졌던 것이다. 실제 개정안 초안에는 '신고 방법과 절차를 명시하며, 가상자산사업자가 은행으로부터 신고의 수리를 조건으로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발급받는 경우 그러한 취지를 기재한 확인서로 실명계좌를 발급 확인서를 대체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개정된 시행령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금융위가 은행 확약서를 받아주기로 하면서 은행과 계좌발급 협상을 진행 중이던 거래소들은 협상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중소 가상자산 거래소 대표는 "금융위에서 확약서를 받아주겠다고 하니, 은행도 '금융 당국이 해주지 말라고 한다'는 핑계는 못하게 됐다"며 "실제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관련기사

또 다른 중소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 실사를 진행 중이거나 계약직전에 있는 거래소들은 확약서를 받는 것으로 바꿔 협상을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정부가 은행과 거래소 간 계좌발급 협상에 있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은행과 아직 소통 채널이 없고 실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업체들은 여전히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