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사면 논란, 윤석열 판단이 궁금하다

[이균성의 溫技] 정의의 이중성

데스크 칼럼입력 :2021/06/03 11:19    수정: 2021/06/03 15:10

문재인 대통령은 2일 4대 그룹 총수와의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문제와 관련해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최근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사면 찬성 의견이 반대쪽보다 많은 것으로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이런 여론의 추세를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으로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 사면 문제는 죄(罪)란 무엇이고 그에 대한 처벌은 어때야 하는 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단죄(斷罪)의 과정과 결과에 납득하지 못할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단죄의 기준이 너무 애매모호하고 그 적용 또한 차별적인 것처럼 보인다. 법(法)을 가리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 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 하는 이유가 다 이와 관련이 있는 것이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뉴시스)

사실은 법만 이현령비현령인 게 아니라 죄(罪) 자체가 원래 애매한 건지도 모른다. 선(善)과 악(惡)을 분별할 줄 알게 해주는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게 인류 원죄라 한다. 그런데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아는 게 왜 죄가 되어야 하나. 불순종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 가장 큰 죄인은 법률가들이겠다. 국민 세금으로 밥 먹고 매일 선과 악을 구별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불순종하기 때문이다.

‘선악과 원죄론’은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불순종이어서 문제라기보다는 선악을 구별하는 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어쩌면 ‘너희 불완전한 인간은 다른 이의 죄를 논하지 말라’는 뜻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 왜 그럴까. 선악을 구별하고 죄를 처벌하는 행위를 통해서 더 큰 죄를 저지르는 게 인간이기 때문 아닐까. 정의를 앞장세운 폭력이 얼마나 많았던가.

인류에 대한 대량학살과 대규모 폭력은 항상 선악을 구별하고 악을 척결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됐다. 그 의도가 지나치면 순식간에 선이 악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됐다. 하지만 여전히 인류의 통념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선악을 분별하는 법(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쪽이다. 원죄를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불순종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유지해야 하는 그 질서가 불공정하다는 데 있다. 선악 구별의 위험성을 안다면, 질서 유지를 위해 불가피해서 만들었다는 그 법(法)은 최대한 절제되어야 한다. 지나치면 법의 사용이 도리어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현실 세계에서는 법이 그렇게 사용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상대는 무조건 악이고 법은 그 악을 척결하기 위한 최상의 칼로 활용되는 것이다.

검찰개혁이 우리 사회 화두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과거에 정의를 위한 악의 척결기관은 주로 군(軍)과 정보기관이었다. 그들의 무절제함이 낳은 결과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이고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이었다. 군과 정보기관이 문민통제 되고 난 뒤 더 득세한 게 검찰이다. 검찰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를 하나하나 열거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회 다수가 검찰이 바뀌기를 바란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고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잘못됐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정 농단 와중에서 이 부회장의 처신은 분명 올바르지 못했다. 최고 권력자와 그 후견인한테 뇌물을 준 행위를 누구라서 옳다고 하겠는가. 그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반성하고 있는 중이다. 재미있는 건 지금 국민 다수가 이 부회장의 그 엄연한 죄를 이제는 면해주자는 것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국민들의 생각은 대체 무엇일까. 법 적용이 무리했다고 본 것일까, 죄인이라도 사회적으로 쓸 모가 있다면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고 본 것일까. 문 대통령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법 적용이 무리했었다면 사면의 명분이 더 커진다. 하지만 쓸 모 때문이라면 법의 기본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돈 있고 능력 있는 사람한테는 법이 더 관대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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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이지만 이 지점에서 문 대통령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판단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국정 농단 연루자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단죄를 진두지휘한 사람은 윤 전 총장이다. 윤 전 총장은 이후 조국 전 장관 수사도 진두지휘했다. 그 덕분에 그는 일약 대선 후보 선호도 1위에 올랐다. ‘공정의 화신’이 된 것이다. ‘공정의 화신’은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 게 공정하다고 볼 것인가.

아이러니 한 건 여러 여론 조사로 볼 때 ‘공정의 화신’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면을 원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윤 전 총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면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그러니 법과 죄가 어찌 이현령비현령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윤석열 전 총장은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자신의 칼은 이현령비현령이 아니었다는 것을 대답으로 입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