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디지털 경제를 앞당기고 있다. 오프라인 기반의 모든 경제 활동이 인터넷 네트워크 위로 옮겨가는 동시에 디지털 데이터 중심의 새로운 경제 생태계가 태동하는 중이다. 팬데믹으로 온라인을 통한 연결(온택트·Ontact)이 선호되면서, 이런 흐름이 강한 추진력을 얻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디지털 경제의 부상과 함께 활용성을 재평가 받고 있다. 기존 인터넷 네트워크 만으로 디지털 경제를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잃어버린 퍼즐을 채워줄 기술이라는 평가다.
상호 신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서 만나 경제 활동을 하려면, 상대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또는 허위 정보를 표시한 건 아닌지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확인이 필요하다. 기존 인터넷은 이런 기능이 없어 사기나 위조에 취약했고,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복잡한 프로세스를 끼워넣어야 했다. 복잡성은 디지털 경제 확산에 걸림돌일 수 밖에 없다.
블록체인은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솔루션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신분증을 구현할 수 있는 '분산신원증명(DID)'과 디지털 소유권 증명서로 쓰이는 '대체불가능토큰(NFT)'이 그것이다. DID와 NFT 같은 블록체인 기반 권리 증명 기술을 이용하면 경제 생태계 참여자들이 자신의 자격과 소유를 쉽게 증명할 수 있게 된다. DID와 NFT가 블록체인 산업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로 떠오른 것도 디지털 경제의 부상과 무관치 않다.
블록체인이 '정보의 인터넷'을 '권리의 인터넷'으로 재발명하면서, 디지털 경제의 기본 인프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데이터 자기주권 기술로 주목 받는 DID...운전면허증·백신여권 등 활용사례 쏟아진다
DID는 블록체인 같이 분산된 시스템을 활용해 개인이 자신의 신원 정보, 자격 정보 등을 인증받고, 필요할 때 검증 가능한 인증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DID를 이용하면 ▲개인 ▲인증 발급자 ▲검증 기관 등 각각의 주체들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매개로 정보의 진위 여부를 손쉽게 확인함으로써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각각의 주체들이 시스템을 연동해야 했던 기존 방식과 비교하면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식이다.
예컨대 채용 과정에서는 DID가 이렇게 쓰일 수 있다. 회사가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지원자의 학사 학위 보유 여부만 확인하고자 한다면, 지원자는 발행기관인 학교를 통해 졸업증명서를 발급받아 DID 지갑에 저장하고 회사에는 학사 학위 획득에 관한 정보만 선별적으로 제출할 수 있다. 발행기관인 학교가 증명서 발급과 동시에 진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암호화된 정보를 블록체인에 등록해 놓기 때문에, 회사는 블록체인을 조회해 지원자가 제출한 정보를 쉽게 검증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DID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눈에 띈다. 바로 DID가 개인에게 데이터주권을 되돌려준다는 점이다.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직접 보관하고 어디에 사용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 중앙화된 시스템과 큰 차이다. 대량의 사용자 정보를 한 업체가 가지고 있는 기존 방식보다 확실히 보안과 프라이버시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데이터를 연료로 작동하는 디지털 경제에 데이터에 대한 주권 문제 상당히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업체 아이콘루프의 김종협 대표는 "거대 플랫폼이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활용하면서, 개인정보 유출 및 도용 같은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며 "문제의 근원은 사용자의 데이터가 플랫폼 기업에 귀속되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문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데이터 자기주권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며 "개인정보를 개인 자신이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DID 기술이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퓨처는 '블록체인 신원관리' 시장이 연평균 85% 이상 성장해, 2023년 19억 달러(약 2조2천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 다른 시장조사 업체 지온마켓리서치도 글로벌 블록체인 신원증명 시장이 연평균 80%씩 성장해 2024년 총 34억 달러(약4조46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DID를 '비대면 경제' 인프라로 보고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DID를 적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빠르게 일상에 파고들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내년부터 블록체인 기반 모바일 운전면허증이 도입되면, DID 사용이 보편화될 전망이다. 국가신분증인 모바일 운전면허증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모두 사용이 가능한 통합형 신분증으로 발급된다. DID 기반으로, 사용자는 스마트폰에 신분증을 발급받아 보관하면서 신원확인 요청이 있을 때마다 제공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이때 신분증 사용 이력은 본인만 확인할 수 있도록 개인의 스마트폰에 저장되며, 중앙 서버에는 저장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정부가 신분증 발급의 공신력은 갖되, 개인의 사용 및 검증과정에는 개입하지 않게 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해 공무원증을 시작으로 올해 장애인증, 내년 운전면허증, 국가유공자증까지 DID 기반 모바일 신분증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백신여권은 DID 적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민감한 의료 정보를 담고 있어 보안과 프라이버시가 중요하고, 국가 간 호환 가능한 검증 시스템을 빠르게 구축해야 한다는 점에서 DID 이외에 더 좋은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헬스케어 블록체인 전문업체 메디블록의 고우균 대표는 "각 국가가 상호 호환되는 백신 접종 확인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합의 과정을 거쳐 시스템 구축까지 이뤄져야 하는데, 이 과정이 너무 오래걸리고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일단 DID 기반으로 백신여권을 만들면 각 국가가 블록체인 위에서 인증서 발급 주체가 돼고, 별도 합의 없이도 상호 백신접종 증명서를 검증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블록체인 DID를 이용한 백신여권이 현 상황에서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질병청은 지난 4월부터 DID 기반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증명서 발급 서비스 '쿠브'를 서비스 중이다. 국내 스타트업 블록체인랩스로부터 기술을 기부받아 블록체인 및 DID 기술을 적용했다. 질병청 측은 DID 접목으로 "증명서 위변조 가능성을 차단하고 최소 개인정보를 활용해 코로나19 접종사실을 인증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뉴욕시, 콜롬비아, 리눅스재단 등도 백신 접종 증명서의 기반 기술로 DID에 주목하고 있다.
뉴욕시는 IBM와 협력해 블록체인 기반 백신여권 '엑셀시어 패스' 개발해 시범운영하고 있다. 콜롬비아는 국가 차원에서 블록체인 백신여권 비타패스를 출시하고,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로 확대를 추진 중이다.
리눅스재단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증명 시스템 구현 시 요구되는 개인정보 보호 및 윤리 기준과 시스템 공통 표준 등을 논의하기 위해 새로운 이니셔티브 'GHPC(Good Health Pass Collaborative)'를 출범시켰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블록체인랩스를 포함해 컨센시스헬스, 카르디아 등 다수의 블록체인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가치 있는 모든 것이 거래되는 세상, NFT로 열린다
NFT는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이 거래되는 세상을 열었다는 점에서 디지털경제를 움직이는 중요한 기술로 평가된다.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되는 토큰의 한 형태인 NFT는 특정 디지털 파일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내는 데 주로 쓰인다.
1비트코인은 모두 동일한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맞교환해도 똑같은 1비트코인을 가지게 된다. 즉 대체가 가능하다. 반면, NFT에는 고유한 코드가 존재해, 각각이 서로 구분돼고 서로 대체할 수 없다. 대체불가능토큰, NFT(Non Fungible Tokens)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다.
NFT를 디지털 파일에 결합하면, 각각의 NFT는 해당 파일이 시장에서 평가받은 가치에 따라 모두 다른 가치를 가지게 된다. 또, NFT 고유 코드는 디지털파일의 '일련번호'으로 소유권을 나타내준다. NFT에 디지털파일의 시장 가치를 담고, 소유권도 증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적 가치는 분명히 있지만 소유권을 명확히 나타내지 못하면 거래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게임 아이템이나 할인쿠폰, 마일리지 같이 것들이 그렇다. 이런 것에 NFT를 결합하면 새로운 거래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인기를 끈 고양이 캐릭터 수집 게임 '크립토키티'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최근에는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NFT로 거래가 가능해지고 있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남긴 '첫 번째 트윗'은 지난 3월 밸류어블이라는 업체가 운영하는 트윗 경매 플랫폼을 통해 290만 달러(약 32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낙찰 이후에도 잭 도시의 첫 번째 트윗은 누구나 볼 수 있고, 트윗 주소(URL)를 가져다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다. 그러니 지적재산권이나 독점적사용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잭 도시가 인정한 '첫 번째 트윗 NFT'라는 점과 이런 사실을 검증 가능하다는 것 만으로 32억의 가치를 평가 받은 것이다.
블록체인에 NFT 발행과 거래에 대한 이력이 기록돼 '잭 도시가 인정한 NFT라는 사실'(진본 여부)을 누구나 검증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잭 도시 트윗뿐 아니라 최근 고가에 판매된 디지털 파일이 다 비슷한 메카니즘에 따라 낙찰가가 형성됐다. 2016년 이세돌 9단이 AI 알파고를 이겼던 네 번째 대국의 기보를 그대로 옮긴 디지털 파일은 최근 2억5천만원에 판매됐다. 14년 전 유튜브에 올라와 인기를 끈 영국 형제의 영상은 NFT로 발행되 8억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기도 했다.
전통적인 경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NFT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NFT 정보 사이트 논펀저블닷컴에 따르면 NFT 시장 규모는 지난해 3억3천800만 달러(약 3천770억원)를 돌파했다. 올해 1분기에는 전년 같은 기간 보다 131배 커진 20억 달러(약 2조2천300억원)의 거래량을 기록했다.
블록체인 기술업체 블로코의 김종환 고문은 "그동안 명확한 금액으로 가치를 표시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NFT를 통해 판매 가능하고 권리를 보증할 수 있게 됐다"며 "DID와 더불어 NFT는 권리의 인터넷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장점이 크다"고 강조했다.
NFT는 또 메타버스, 가상·증강현실(VR·AR) 등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과 결합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에 NFT를 접목하려는 시도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유사한 세계를 디지털로 재현한 가상세계다.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로 강의를 듣거나 콘서트를 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아바타를 꾸미는 옷이나 가방, 콘서트 입장권 등이 유로 아이템으로, 이미 상당한 결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아이템을 NFT로 발행하면 다른 서비스에서 사용하거나 현금화 하는 게 가능해진다. 실제 로블록스, 제페토 같이 수 억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메타버스 서비스들도 NFT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관련기사
- 로봇이 커피타고 배송까지...비대면 시대 新풍경2021.05.24
- 비대면시대 늘어난 '홈트족'…웨어러블로 건강 업(UP)2021.05.22
- 시공간 제약 넘어 일상화된 하이브리드 업무2021.05.20
- '확' 늘어난 모바일 결제, 헌금도 현금으로 안 내는 시대2021.05.23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 수퍼트리의 최성원 대표는 "아이템을 NFT로 발행하고 교환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기존 인기 게임의 아이템을 메타버스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도 가능해 질 것"이라며 "NFT로 다양한 서비스들이 연결되면 신생 서비스가 급성장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VR·AR 서비스도 특정 NFT를 보유한 사람에게만 디지털 아이템이 보이게 하는 등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최 대표는 "예를 들어 잠실 롯데타워에 NFT 드래곤을 만들어 놓고 NFT가 있는 사람만 보이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그냥 인터넷상에서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블록체인과 NFT로 가능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