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김성태 교수의 [데이톨로지]② ‘메타버스’와 공간미학

전문가 칼럼입력 :2021/05/17 16:03    수정: 2021/05/17 16:51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바야흐로 데이터시대다. 지금 우리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4차산업혁명을 목도하고 있다. 인류가 문자와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난 5천년 동안 문명의 흐름이 지구촌 곳곳에서 큰 강을 이루고, 또 하나로 모여 큰 바다에 이르렀다. 데이터가 원유가 돼 모든 것이 돌아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데이톨로지(Datalogy)' 사상의 연원(淵源)이다. 데이터에 대한 철학적, 인문학적, 과학적인 성찰의 결과라 봐도 좋을 것이다. 데이터와 관련된 키워드를 중심으로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다양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 탐구의 장을 마련한다. 이번에는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현되는 가상세계 ‘메타버스’를 ‘공간’에 관한 오랜 사상적 논의와 함께 살펴본다. <편집자 주>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인간의 개척 욕망은 끝이 없다. 인류 초기의 원시인들은 사냥하기 좋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유목인의 삶을 살았다. 중세의 봉건제나 장원제도 토지라는 공간을 매개로 영주와 농노간의 계약으로 이뤄졌다. 15세기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제국들은 전 세계를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식민지 전쟁을 벌였다. 중세의 종말과 함께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밖으로 팽창해 나갈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19세기 초부터 북아메리카에 유럽의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미국 동부에서 서쪽으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서부개척도 마찬가지로 공간을 소유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었다. 인류 역사 기간 동안 97%는 전쟁시기였고, 3%의 평화 기간은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거나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대부분의 전쟁 원인은 내 땅을 지키고 상대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20세기 들어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세계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중심의 대규모 메트로폴리탄 도시가 탄생한 것도 제한된 좁은 지역에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본주의 삶의 공간 경쟁에 다름 아니다.

부족한 도시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고층 건물들이 올라가고 뉴욕 맨해튼, 서울과 같은 스카이라인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공간 경쟁의 연장선이다. 작금에는 드디어 탈지구화를 위해 우주 정거장을 만들고 민간기업에서도 우주여행 상품을 내놓고 있는 중이다.

최근 ‘메타버스(Metaverse)’가 언론에 자주 소개되고 많은 사람들의 화두가 되고 있다. 필자는 이를 인간이 가진 끊임없는 공간 개척의 욕망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정의할 것이다.

20세기 중반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시작된 사이버스페이스는 빅데이터,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MR(혼합현실), 그리고 AI(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로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현실세계로 진화한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사회를 언택트, 온택트 삶으로 만들고 있다. 어쩌면 가상공간은 현실세계처럼 공간의 이동을 위한 특별한 노력이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나 가상의 공간에 실시간으로 접속이 가능하다. 좀 더 완벽한 가상현실세계가 구현될 수 있는 그런 디지털 기술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만년 동안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지단한 인간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상세계가 현실과 공존하면서 어쩌면 주류가 될 수도 있는 새로운 시공간 시대의 출발점이기도 할 것이다.

마가릿 버트하임(Margaret Wertheim) 공간의 역사

마가릿 버트하임(Margaret Wertheim)은 그의 저서 ‘공간의 역사: 단테에서 사이버스페이지까지 그 심원한 공간’을 통해 단테(Alighieri Dante)의 ‘신곡’(La Divina Commedia)에서 그려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영적 공간 여정을 언급하며, 가상공간인 사이버스페이스는 긴 역사를 통해 인간이 끊임없이 노력해 온 공간 확장 추구의 가장 완벽에 가까운 결과라고 했다.

오래전 단테의 상상력이 만든 가상 세계가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단테가 찾았던 초월적 공간이 디지털 기술로 가능해진 것이다.

메타버스는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욕구 표현의 거대한 탈출구가 돼 왔다. 어쩌면 최종 기착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버트하임에 따르면 디지털 가상공간은 기존의 인간을 억눌러왔던 수많은 시·공간의 물리적 제약들을 최소화 시킨다. 이 공간에서는 누구나 평등할 수 있으며 영원히 죽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요즘처럼 자유로운 일상 활동이 제약당하고 본능에 가까운 공간 이동이 쉽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물리적으로 살고 있는 현실세계보다도 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가상공간 '메타버스'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지 모른다.

제페토 블랙핑크

그렇다면 디지털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메타버스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미국의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은 소설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에서 가상·초월(meta)과 세계·우주(universe)의 합성어로서 메타버스를 처음 소개했다.

빅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기술인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등이 만들어 낸 실재 같은 가상공간이다. 그동안 짧은 역사지만 발전 속도는 놀랍다.

지난 2003년 린든 랩(Linden Lab)이 처음으로 개발한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결합한 보편적인 메타버스의 시작이었다. 초기 서비스에서는 현실세계의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가 가상공간에서 살았다면, 최근에는 아바타와는 차원이 다른 나와 거의 똑같은 ‘디지털트윈(Digital Twin)'이라 불리는 쌍둥이가 그 공간에서 현실과 거의 같은 삶을 살수도 있게 된 것이다.

과연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 공간에서 어떤 것들이 가능할까. 현재까지는 게임업계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지난 2021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 바이든 당시 후보는 닌텐도 ‘동물의 숲’ 가상현실 안에서 선거 캠페인을 했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유권자들은 VR 헤드셋을 낀 채 유세현장을 실시간으로 참여했다.

필자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BTS의 팬이다. 지난해 9월 신곡 다이나마이트가 처음 발표된 곳은 음악 전문 방송이나 동영상 공유사이트의 뮤직비디오가 아니었다. 가입자수 3억5천만 명이 넘는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안에 있는 콘서트장이었다.

그 메타버스 공간에 세계 각지의 팬들이 각자의 컴퓨터로 접속해 모여서 웃고 대화하며 BTS의 신곡 발표 무대를 즐겼다.

로블록스는 메타버스를 대중화한 사례로 꼽힌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 서비스는 무엇일까. 바로 ‘로블록스(Roblox)’다. 지난 2006년에 출범한 이 메타버스는 2천만개 이상의 게임을 유통하는 플랫폼이다. 흡사 레고 게임과 유사하게 가상공간에서 각 개인들은 3천500만개이상의 게임 구현 알고리즘과 디바이스를 이용해 다양한 자신들만의 게임을 만든다.

현실세계에서 하는 거의 모든 활동뿐만 아니라 하고 싶었던 자신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게임이나 다양한 활동의 플레이 그라운드를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제트의 ‘제페토’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실물 사진을 기반으로 한 3D 아바타를 만들어 다양한 사회활동과 게임을 하는데, 현재 가입자가 국내외적으로 2억명 이상이며 급성장중이다.

로블록스의 이용자수를 보면 2017년 3천500만 명에서 2020년에는 1억5천만 명으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가입자 수가 더욱 빨리 늘고 있다.

그런데 더 주목해야 점은 로블록스 자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용자의 대부분이 13세 미만의 Z세대라는 사실이다. 또 이들 연령대에서는 로블록스 이용시간이 이미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넘어섰다고 한다.

어쩌면 로블록스를 이용하는 아이들이 성년이 되는 10년 후쯤에는 많은 사회적 활동이 확장된 그리고 업그레이드 된 메타버스속에서 그들만의 삶을 더 리얼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게임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메타버스는 그 적용범위를 급속도로 넓혀가고 있다. 특히 최근 혼합현실(MR) 기기인 홀로렌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융합기술은 다치거나 아픈 사람들의 치료과정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향후 메타버스공간에서 디지털 트윈 기술과 결합하면서 바이오 헬스 분야에서 더 많이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홀로렌즈2 사용 모습

좀 더 논의의 폭을 넓혀보자. 최근 글로벌 가상화폐 투자 열풍을 만들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이 메타버스 공간에 들어온다면 어떨까.

대표적인 예로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 블록체인 기반 게임을 들 수 있다. 모든 이용자들은 분산된 플랫폼을 공유하면서 자율적으로 디지털 자산을 거래하고 커뮤니티 회의를 통해서 다양한 의사결정을 한다.

이 게임세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토지 소유권과 거래내역은 공개되어 위변조가 불가능하며, 사용자들은 다양한 소셜활동과 콘텐츠 개발을 통해서 경제활동까지도 할 수 있다.

시각컴퓨팅 분야의 세계적인 첨단기업인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인 젠슨 황(Jensen Huang)은 “이제는 메타버스의 세상이 됐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놀라운 일이 많았다고 생각하는가. 앞으로의 20년은 SF영화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놀라운 메타버스의 세상이 다가온다. 이제 현실을 시뮬레이션 해서 우리의 미래를 그리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정말 토마스 쿤이 언급한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의 변환기적 시대를 살고 있다.

최근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이 새로운 가상현실공간은 인간의 끊임 없는 공간 찾기의 결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러한 신공간이 우리 삶과 의식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서는 예단하기 힘들다.

이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에 대한 각자의 평가와 접근방법에 있어 갖는 생각의 차이와 거의 유사할 것이다. 가상의 물체와 공간 그리고 그들의 세상에 대해서 현실위에 발 딛고 살고 있는 내가 제대로 평가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어쩌면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현실 공간으로의 대규모 이주는 버트하임이 적었듯 “지옥 역시 인간 스스로 자초해 만든 장소”라는 단테의 말을 되새기게 만든다. 과연 이 양날의 검 같은 공간이 인류에게 어떤 세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계속 남는다.

과학기술도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다.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이 유토피아 공간이 될지, 디스토피아 세계가 될 지는 모두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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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산업혁명의 주창자인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최근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언급하며 ‘위대한 리셋(The Great Reset)’ 이라고 칭했다.

필자도 이 새로운 가상현실세계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후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우리들의 삶이 어떻게 ‘리셋’될지 지금 이 순간에도 정말 궁금하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현재 고려대 ‘빅데이터 사회문제 연구센터’를 운영하며, 데이터를 통한 통찰력 있는 세상 읽기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다양한 사회 문제 솔루션 도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번 '데이톨로지' 연재는 인류의 역사, 철학사상 그리고 다양한 인문학적 논쟁의 패러다임속에서 데이터 자체의 미학, 역사속의 위대한 데이터 분석가, 디지털데이터가 만드는 새로운 현상과 문화를 최근 사례와 함께 소개함으로써 미래의 성장동력으로서의 (빅)데이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독자들에게 ‘디지톨로지Digitalogy’ ‘데이톨로지Datalogy’ ‘데이터빌리티Datability'의 중요성에 대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