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가져온 관계 방식의 변화, ‘대면’과 ‘비대면’

"지식노동 효율은 생산노동처럼 연속적인 상황서 발생하지 않아”

전문가 칼럼입력 :2021/05/04 10:52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

코로나 19가 가장 크게 바꿔놓은 것은 다름 아닌 마스크의 쓸모 아닐까? 코로나 이전에도 마스크는 있었다. 코로나 직전엔 주로 미세 먼지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사용했다.

마스크가 등장한 역사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유럽에서는 콜레라와 흑사병을 막기 위해 새 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썼다는 기록이 있다.

인류는 단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쓸모 외에도 마스크를 다양하게 사용해 왔다. 코로나 초기, 미국이나 유럽에서 마스크 착용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던 이유는 주로 범죄자들이 자신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을 풍자하기 위해 탈이라는 마스크를 썼으며, 켈트족이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귀신 모양의 마스크를 썼던 풍습은 서양의 대표 축제인 '할로윈'이 됐다.

코로나19로 대면 위주의 소통이 비대면 소통 방식으로 전환됐다(사진=모티링크)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노래를 불러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복면가왕'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마스크의 다양한 쓸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코로나 19 이전 마스크의 착용은 개인의 선택사항이었지만, 지금은 사회가 강제하는 필수사항이 됐다.

마스크 다음으로 코로나 19가 바꿔놓은 것은 관계의 방식이다. 코로나 19는 대면 중심의 관계 방식을 빠르게 비대면으로 바꿔가고 있다. 마스크와 마찬가지로 비대면 관계 방식이 코로나로 인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 19 이전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이 대면을 선호했다면,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들은 비대면을 선호했다. 비대면 관계 방식의 극단적인 예는 바로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군대, 회사, 모임, 동호회 등의 사회에서 큰 충격이나 사건을 경험하고 히키코모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에서는 학교폭력이나 병역에서 행해지는 괴롭힘과 가혹행위를 당한 사람들이 이런 상황이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심지어 반지성주의에 사로잡혀 아무도 믿지 않게 됐을 때 발생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회 특성상 첫 사회 경험을 대부분 학교와 병역의무를 통해 경험하는데, 이들에게 '사회'는 괴롭힘만 당해온 장소이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집 안'은 안전지대이기 때문이다(나무위키, 히키코모리가 되는 이유).

관계는 우리에게 '힘'이 될까, 아니면 '짐'이 될까? 힘이 아니라 짐이 된다고 해도 그나마 다행이다. 누군가에게는 관계가 짐을 넘어 '죄'가 되기도 한다. 

한 번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친목의 긍정성을 주장하다가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비대면이 중심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왜 대면으로 친목질을 하냐며 반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온라인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행위는 마치 도둑질처럼 친목'질'로 인식이 된다. 친목이 뭐가 문제냐고 항변을 해봤지만, 비대면 세대는 대면 세대와는 다른 관계의 문법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친목이 긍정적인 100가지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친목 밖에 있는 누군가가 친목의 피해자가 된다면 모든 친목은 싸잡아 '친목질'이 된다. 

학창 시절 왕따 문화를 경험해 온 비대면 세대에게 친목은 친목에서 배제된 누군가에게 단지 상처를 주는 것을 넘어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였을지 모른다. 그들의 눈에는 학연, 혈연, 지역으로 범벅이 된 기성세대의 그 구태의연함이 혐오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급기야 나는 내가 보지 못한 친목의 부정적 이면이 있음을 인정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 사과문을 올렸다.

대면 세대의 '경험공간'과 비대면 세대의 '기대지평’

독일의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은 근대를 '경험공간(Space of Experience)'과 '기대지평(Horizons of Expectation)'의 분리로 설명했다. 농경을 바탕으로 한 중세엔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의 간극이 크지 않았다. 과거의 경험은 오히려 미래를 준비하는 힘이 됐다.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하는 농경의 질서는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근대로 접어들며 가속화된 기술의 발전은 빠른 시대 변화로 이어졌고, 더 이상 지평선 너머에 있는 미래를 과거의 경험으로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지평선 너머에 있는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며, 만약 지평선 너머에 다다른다고 하더라도 그 현실에서의 미래는 다시 지평선 너머로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전쟁 세대와 반독재 민주화를 경험했던 민주화 세대,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접한 정보화 세대가 현재를 공유하며 살고 있다. 정보화 세대를 중심으로 간간이 선택됐던 비대면 관계 방식이 코로나로 인해 강제화 되자, 대면 중심의 관계 방식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경험공간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비대면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됐고, 그 현실 경험의 축적이 앞으로 비대면 관계 방식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비대면에서의 대면 구현을 위한 IT의 실험, VR과 AR

아날로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등장한 디지털이 결국 아날로그를 재현하기 위해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만약 코로나의 장기화로 비대면이 일상화된다면 IT는 비대면 상황에서도 생생하게 대면을 구현하기 위해 발전할 것이다. 주로 게임 분야에서 적용하고 있는 VR(Virtual Reality, 가상 현실)과 AR(Augmented Reality, 증강 현실) 기술은 그것이 근미래에 실현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만화적 상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 문명 또한 과거에는 그저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 1818년 영국의 18세 소녀 '메리 셸리(Mary shelley)'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최초로 인공지능을 상상했다. 그리고 198년이 지난 2016년 알파고는 인간의 직관 영역에 있던 바둑에서 인간 최고수 이세돌을 꺾으며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나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2018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가상 현실은 이미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스마트 기기와 직접 연결되는 ‘기어 VR’, 독립적인 헤드셋만으로 가상현실 구현이 가능한 ‘오큘러스 퀘스트’, 가상 현실에서 손으로 물건의 닿는 느낌을 전달하거나, 뜨겁고 차가운 온도를 느낄 수 있는 ‘햅틱 글러브’, 전기 신호로 인간의 근육까지 통제하는 ‘테슐라 슈트’ 등은 이미 개발이 완료됐다.

지식 노동의 효율은 생산 노동처럼 연속적인 상황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8시간 동안 노동자를 회사에 묶어 놓으면 지식 노동의 효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은 지식 노동이 만들어 낼 불확실한 기대지평과 무관한 과거 생산 노동의 경험공간 안에 갇힌 착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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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가상 현실처럼 완벽하게 대면 상황을 구현하지 못하더라도 비대면 지식 노동의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은 이미 충분히 마련돼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협업 툴이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미국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은 2020년 310억 달러(37조원) 규모였던 세계 협업 툴 시장이 2024년에는 480억 달러(5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언젠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가상의 공간에 가상의 건물을 세우고, 가상의 사무실에서 비대면으로 동료 직원들과 대면해 업무에 관한 의사소통을 할 날도 오지 않을까? 샤워장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앨런 케이(Alan Kay)의 말처럼, 어차피 가상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지식 노동은 대면이 아닌 비대면 상황에서 더 큰 효율을 끌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25년 이상 예술과 실무, 온라인과 오프라인, 민과 관을 넘나들며 콘텐츠 및 정책 기획자로 활동했다.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사회학 석사이며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의 저자이다. 경영의 과학화를 위한 사회학적 연구와 더불어 디지털 워크스페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커넥티드 리모트워크(Connected Remote Work) 업무 환경의 구현을 위한 기획업무를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