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가 석탄·발전 산업에 투자제한 및 배제 결정을 다음으로 미룬 것을 두고 뒷말이 많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배출량 감축 방향에 대해 이견은 없지만, 쟁점은 ‘속도’에 달려있다.
발단은 지난달 30일 열린 제5차 기금위였다. 이번 회의는 개최 전부터 대내·외 관심이 쏠렸다. 주요 안건으로 ‘석탄채굴·발전산업 투자제한·배제전략’이 상정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기금위는 이번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기금위은 회의 이후 “도입방식과 분야 등에 대해 위원 사이에 이견이 있어 다음번 기금위에 재상정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참고로 2016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에너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68%다. 에너지 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가운데 90%는 이산화탄소다. IEA는 석탄 발전이 전체 에너지원 가운데 29%의 규모이지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46%로, 석유와 가스보다 비중이 높다고 밝혔다. 석탄 발전 산업에 대한 금융 투자가 기후위기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그동안 관련 안건은 기금위에서 조금씩 논의가 진행돼왔다. 2019년 11월 ‘국민연금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수립 시, 투자제한·배제전략 도입 필요성과 적용 대상 등을 추가 검토하기로 했다. 올해 2월에도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 보고 시, 추가 논의사항으로 석탄 산업에 대한 투자제한·배제전략 도입여부를 논의키로 했다. 주요 안건에 이른바 ‘끼워 넣기’를 했던 것이 이번에는 주요 안건으로 본격 논의된 것이다.
기금위는 절차를 거쳐 ‘차근차근’ 논의를 진행시켜왔다지만, 국제사회의 탄소절감 정책이 빠르게 구축돼 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미 유럽연합(EU), 중국, 일본은 탄소 중립 선언을 했고, EU는 오는 2023년 탄소국경세 도입을 앞두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22일 기후 정상회의에서 2030년까지 2005년의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작년 말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내놔 관련 논의에 이제 막 첫 발을 뗀 상태다. 이원재 LAB2050 대표 겸 경제전문가의 말이다.
경쟁력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더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발 산업 국가들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후발 산업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는 선발 쪽에 빨리 서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작금의 글로벌 키워드다. 더 속도를 내야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가는 방향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관련해 EU는 석탄 발전 사업을 녹색금융 투자대상에서 제외시켰다. 2030년까지 석탄퇴출을 지향하는 탈석탄 동맹(Powering Past Coal Alliance, PPCA) 참여국은 전 세계 34개국에 달한다. 특히 연기금을 포함한 전 세계 1천200여개 금융기관도 이른바 ‘탈석탄금융’을 밝힌 상태다.
그런데 국민연금기금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10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그린피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 등이 참여해 내놓은 ‘2020 한국 석탄금융 백서’에 따르면, 석탄 산업에 투입된 국민연금기금은 9조8339억 원으로 가장 높았다.
관련해 글로벌 트렌드에 민감한 경영계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석탄·발전 산업에 대한 투자제한 및 배제 전략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의 역사가 5년밖에 되지 않았고, 국내 석탄·발전 기업들이 세계 최상위권 기술을 보유한 점 등을 들어 점진적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손석호 사회정책팀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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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를 나타내는 말로, 기업 경영에서 지속가능을 달성하기 위한 3가지 핵심 요소)가 중요시되면서 기업들도 환경 분야에 신경을 쓰고 있다. 2019년 기업의 에너지 전환 성과는 정부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현 흐름이 지속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급진적인 정책 변화로 산업계에 혼선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기금위는 “석탄 산업의 범위와 기준의 설정을 위해 연구용역과 해외 연기금 사례 등을 참고해 기금위에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경영계의 우려, 석탄 분야의 높은 국민연금 수익률 등은 석탄·발전 산업에 투자제한·배제전략 추진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이에 관련해 이원재 대표는 “연기금은 시장의 추종자가 아니라 리더”라며 “국제 금융계에서 위상이 높은 국민연금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시장을 리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국민연금이 산업계의 눈치를 보는 ‘팔로워’의 입장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