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업계가 통신사들의 현금 공세에 가입자들을 속절없이 내주고 있다.
CJ헬로‧티브로드‧현대HCN 등 대형 케이블TV사업자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이미 통신사에 흡수됐고, 그나마 남아 있는 개별 SO들은 소형 집합건물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통신사의 현금마케팅에 고사위기에 몰린 상황이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160만~170만 가입자를 보유한 9개 개별 SO들은 원룸, 빌라, 여관, 요양병원 등 소형 집합건물을 대상으로 한 통신사의 현금, 사은품, 무료 마케팅에 생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반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B2C 시장과 달리, 건물주 등과 계약을 맺는 B2B 시장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현실적으로 제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 이달 들어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반을 가동하고, 조기에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연구반을 만들어 당초 한 달에 한 번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하기로 했지만 2주에 한 번으로 주기를 단축했다”며 “전기통신사업법 상 집합건물 사례는 이용자가 아닌 건물주와의 관계여서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과도한 경품 등으로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어 조기에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정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수백만원 현금에 1천원 미만 서비스도
통신사들은 자금력을 앞세워 집합건물의 건물주를 대상으로 수백만원의 사은품을 제공하거나 원가 이하의 서비스 요금을 제공하면서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마케팅 여력이 없는 개별SO들은 대응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다.
한 통신사의 견적서를 보면, 18객실이 있는 집합건물에 ‘방송+초고속인터넷’ 상품에 대해 360만원의 현금을 지급하고 월 이용료로 20만9천원을, 13객실이 있는 집합건물에는 293만원의 현금에 월 이용료를 15만5천100원에 제공한다고 돼 있다. 객실당 서비스 요금은 각각 1만1600원, 1만1900원 꼴이다.
이보다 더 심한 사례도 많다. 32객실이 있는 한 집합건물은 576만원을 특별혜택으로 할인해주고 월 요금이 11만9천500원으로 객실당 3천700원 수준이다. 또 객실당 정상요금가인 1만1천600원짜리 상품을 5천900원, 3천900원에 제공하는 사례도 있다.
개별SO의 한 관계자는 “통신사가 지급하는 현금이 상상을 초월하고, 객실당 몇 십만원을 제공해 서비스 객실 단가가 1천원 밑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블TV업계에서는 통신사들의 이 같은 마케팅을 개별SO의 가입자를 뺏어와 이들을 고사시키는데 목적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개별SO 관계자는 “덩치가 큰 MSO는 인수합병을 통해 가입자를 확보하고 작은 개별SO는 마케팅을 통해 가입자를 뺏어와 사실상 사업을 접게 만들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개별SO를 자연 소멸시키는 영업 전략이어서 생존권이 걸려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별SO가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공정경쟁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주는 것”이라면서 “대기업, 중소사업자간 문제이기 때문에 상생에 있어서 갑질이고 규제가 느슨해지면 다시 이 같은 영업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삼진아웃제와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건물주, 현금 챙기고 관리비에서 추가 비용 받고
통신사와 건물주 간 이 같은 계약행태가 단지 집합건물의 공정경쟁 저해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건물주가 통신사로부터 현금을 받거나 객실당 월 이용료는 훨씬 적은 금액을 내면서도 입주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많은 금액을 청구하기도 한다.
실제, 한 오피스텔의 경우 건물주는 할인을 통해 객실당 요금으로 약 6천200원을 지불하고 있으면서도 입주자들에게는 1만5천원씩 2배가 넘는 요금을 청구하고 있었다.
개별SO 관계자는 “집합건물 중 고시원이나 여관 등은 대여의 개념이라 해도 원룸, 빌라, 오피스텔 등의 경우에는 실 입주자가 사는 곳”이라면서 “건물주가 방 한 개당 15만원 이상씩 현금을 받고 관리비 등의 명목으로 실제 내는 요금보다 많은 요금을 챙기고 있어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단체계약의 경우에는 해당 이용자가 통신사에 민원을 제기해도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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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역시 집합건물에서의 B2B 서비스가 이용자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계약들에 대해서는 한 건씩 해결한다는 방침이고, 이 같은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통신사에 무리한 계약을 하지 않도록 요청한 상태”라면서 “이른 시일 내에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