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을 종식시킬 최후의 해결책 ‘백신’. 전 세계가 백신전(戰)에 돌입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백신 개발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인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9일 기준 임상시험을 승인받은 국내 기업은 8개사다. 이 가운데 ▲SK바이오사이언스 ▲셀리드 ▲진원생명과학 ▲제넥신 ▲유바이오로직스 등의 5개사가 7개의 백신을 개발 중으로 사실상 국내 백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대부분 1상이나 1·2상 단계이며, 방식은 DNA백신·재조합백신·바이러스벡터백신 등이다.
임상 종료 계획 시점만 보면, 제넥신과 SK바이오사이언스가 빠르다. 이들 기업은 올해 6월말까지 임상 2상을 종료한다는 계획이다. 셀리드·유바이오직스는 3분기 말경에, 진원생명과학은 4분기 말께 각각 임상 2상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기업들에 임상시험 지원을 진행 중인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의 묵현상 단장은 임상 3상 과정이 상당부분 면역대리지표(ICP)를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고 3상에 소요되는 기간이 비교적 단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해당 기업들이 백신과 관련해 “연내 허가는 어려워도 내년 상반기 허가는 기대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참고로 ICP는 접종 백신에 의해 확보한 항체형성, 항체 지속기간 등 면역원성과 방어효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지표를 통해 효과가 입증된 백신과의 비교, 이를 통해 신규 백신 효능을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파격적인 정부 지원을 발판삼아 백신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국가들에 비하면 우리 백신 개발 과정은 험로와 다름없어 보인다.
■ 선진국 백신 리그에 출사표…우리나라 지원 규모 ‘새 발의 피’
그동안 백신 개발은 미국·영국·스위스 등 글로벌 제약사를 보유한 국가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백신 개발은 실험실내 연구를 통해 유의미한 데이터가 도출되면, 이후 임상시험 1·2·3상 단계를 모두 거쳐 최종적으로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받게 된다. 임상시험 과정은 인종, 성별, 국가, 모집단위 등이 대거 투입되는 광범위한 작업이다. 안정적인 백신 개발이 완료되기까지 십여 년이 소요된다.
백신 개발이 어려운 점은 다른 의약품보다 특히 안전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일반인이 감염의 예방을 목적으로 백신을 접종받는 만큼 백신과 관련된 안전성 이슈는 매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이런 이유로 시판 과정이라도 안전성에 이상이 발견되면 판매가 중지되는 일이 적지 않다. 서구에서는 이와 관련 백신 거부 운동으로 비화되는 일도 있다.
또 특정 감염병 유행이 지나가면, 이미 생산해놓은 백신은 전량 폐기해야 한다. 결국 개발부터 판매 전 과정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탓에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이 아니고선 개발에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백신 개발은 불과 1년 만에 연구-임상-실용화 등 전 과정이 완료됐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개발 속도는 미국 등 전통적인 백신 개발국에서 특히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환경적 이유 외에도 다른 요인이 있었다. 바로 천문학적인 ‘돈’이 파격적으로 투입됐다는 점이다.
일례로 미국은 자국 제약기업인 주요 백신 개발사에 파격적인 지원을 실시했다. 미국이 기업별로 지원한 금액은 ▲모더나 10억 달러(약 1조1천억 원) ▲노바백스 16억 달러(약 1조8천억 원) ▲아스트라제네카 12억 달러(약 1조3천억 원) ▲존슨앤존슨 15억 달러(약 1조6천800억 원) 등이다. 미국은 연구 자금 지원 뿐만 아니라, 허가 과정도 대폭 간소화해 각 임상 허가 기간을 대폭 축소했다.
그런가하면 중국과 인도는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한 백신 시장에서 신흥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는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하고 인도의 세럼연구소가 생산한 코비실드와 인도 제약회사인 바라트 바이오테크가 개발한 코백신에 대해 긴급 사용승인을 받아 각국으로 자국의 백신을 수출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더 의욕적이다. 코로나19 발생 5개월 후인 2020년 5월부터 백신 개발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선언, 14개의 백신 개발 라인을 가동했다. 현재 중국은 시노팜 백신 2종과 시노백, 칸시노가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의 조건부 사용승인을 받으면서 해외 여러 국가에 무상원조 및 수출을 진행하고 있다. 두 국가는 보건안보 및 외교의 수단으로 백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가 올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임상시험을 위해 투입하는 예산은 1천528억 원 가량이다. 규모면에서 앞선 국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기간 내 파격적인 지원 규모 확대도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대안은 없을까?
옥스퍼드대학 연구진과 아스트라제네카의 협업 사례를 차용, 연구의 각 단계 수행 기관을 달리해 협업체를 구성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셀리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서울대약대 실험실 벤처로 시작한 셀리드는 범부처 코로나19 백신 임상지원 국책과제를 통해 임상시험은 정부 지원을 통해, 생산은 LG화학을 통해 진행키로 했다. 개발 각 단계의 적재적소에 적합한 기관을 배치한 셈이다.
김강립 식약처장은 “대량생산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국내 백신개발업체를 대상으로 백신의 플랫폼별 생산기술과 시험법을 확립하는 등 생산과 품질관리에 대한 기술지원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묵현상 단장도 “바이오벤처기업이 정부·대학·대기업과 일종의 연합체를 구성해 백신을 개발하는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각국은 백신 개발 및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백신 부족 해소 및 코로나19의 반복 유행에 대비한 안정적 백신 확보를 위해 백신 자급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이견은 없어보인다. 다만, 앞선 셀리드의 사례처럼 백신 개발을 위한 다자간 협업 방식을 국가 차원의 백신 개발 전략으로 내세우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백신 개발이 속도전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백신 대규모 생산 및 개발 기술력 확보, 유통망 구축, 전문 인력 육성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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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철 보건복지부장관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 점검회의 브리핑에서 “정부는 임상시험 비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선구매 등 추가적인 지원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며 “필요시 추가예산 지원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권 장관은 정부가 백신 개발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말처럼 정부 지원 확대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글로벌 제약사 백신 의존 탈피 및 선도적인 백신 개발국으로써 위치를 점하기는 점점 요원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