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불균형 해결 안되면 변이 바이러스 팬데믹 올 수도”

김윤 서울의대 교수 "백신 자국우선주의, 세컨드 웨이브 초래 가능…개발국 초국가적 협력 통해 백신 부족 해결해야”

헬스케어입력 :2021/04/09 17:47    수정: 2021/04/10 08:47

현재 전 세계가 맞고 있는 백신 공급 악화의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아니, 방안이 존재하긴 할까?

제때 제 물량의 백신 공급되지 않으면 접종률이 떨어진다. 5차, 6차의 코로나19 유행이 이어질 것이다. 이런 환경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유리하다. 자연히 집단면역 달성은 요원해진다. 부족한 백신 접종률만큼 격상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돼야 한다.

우리나라를 넘어 시야를 세계로 넓혀보자. 국가와 지역별 백신 불균형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장차 전 세계에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에게 SOS를 청했다. 지난 6일 지디넷코리아는 김 교수와의 화상으로 만나 백신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 교수는 특유의 차분하고 딱 부러지는 말투로 백신 부족, 더 정확히는 백신 공급 불균형이 가져올 우리의 미래를 전망했다. 그의 전망은 스산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비관적이지도 않았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 백신 자국우선주의가 가져온 폐해

김윤 서울의대 교수

-백신 부족 현상, 어떻게 진단하나.

“백신 생산에 시간이 걸리다보니 미국, 유럽연합 등 선진국도 백신이 부족한 실정이다. 사실 연간 백신 생산량을 보면 전 세계 인구 대다수가 접종받을 정도는 된다. 소수 부유한 선진국이 백신을 독점하고 있어서 백신 분포가 균등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른바 ‘부자나라’의 백신 싹쓸이, 백신 자국우선주의의 폐해는 무엇인가.

“일부 선진국들이 자국민 모두를 접종하고도 남을 만큼의 백신을 선구매하면서 개발도상국에게 돌아갈 양은 현저히 부족해졌다. 이는 전 지구적으로 보면 코로나19 지속 유행-변이 바이러스 유행-변이 바이러스 대유행의 악순환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경제력을 앞세워 자국만 살고 보겠다는 방식은 성공하기 어렵다.”

-사실 ‘백신 민족주의’ 혹은 ‘백신 무기화’에 대한 우려는 개발 초기부터 나왔다.

“중국이 개도국에 백신을 비교적 저렴하게 공급한 것 자체만 놓고 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백신을 ‘지렛대’ 삼아 자국의 정치·경제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미국·중국·러시아 등 주요 백신 개발국이 이념·정치·경제를 초월해 백신 특허권을 풀고 생산기반 확대에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국을 중심으로 충분한 백신 물량 확보를 위한 전 지구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감염병 대유행은 공동의 문제다. 어느 개인이나 한 국가도 감염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의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어떻게 판단하는가. 혁신적 시스템이지만 실효성은 다소 의문이다.


*코벡스 퍼실리티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공동 개발 및 배분을 목적으로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세계보건기구(WHO), 감염병혁신연합(CEPI)이 운영하는 국제 백신 공동 프로젝트다. 참여국의 지불금으로 제약사와 백신 선구매 계약을 맺어 이후 백신을 공급하는, 일종의 공동구매다. 코백스만으로 백신을 확보하는 국가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제약사와 개별 계약을 추진한다.


“디자인은 굉장히 획기적이다. 문제는 이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백신 물량이 제한돼 있어 불균등한 백신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백신 배포는 다자간 체계를 통해 물량을 확대해 배포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현재 백신 구매는 각 국가가 제약사와 개별 계약해 대다수 물량을 구매한 후, 일부에 한해 코백스로 확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가-제약사 사이 구매 물량은 일부로 돌리고, 코백스로 더 많은 백신이 공급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제약사보다 코백스에 더 많은 돈을 기여해 백신이 코백스를 통해 공급되는 시스템이 조성돼야 한다.”

-당장 자국 상황이 급한 국가들이 이를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단기간 내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올해 여름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백신 접종이 어느 정도 진척되면 코백스에 대한 백신의 공급량을 대폭 넓히기 위한 국제적 환경이 조성될 수도 있다.”

미국, 유럽연합, 인도 등의 코로나19 백신 수출 제한 강화에 따른 백신 수급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픽셀)

-백신 특허를 풀어 전 세계에서 백신을 생산케 하자는 ‘트립스(의료제품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 TRIPS)’ 일시 유예안*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


*미국 시민단체인 국제지식생태계(KEI)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이뤄진 백신 기술이전 계약 70건 이상을 분석한 결과, 기술이전이 시작된 후 초도물량이 공급되기까지 반년이 걸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19 백신 공급량을 극대화하려면 코로나19와 관련된 의료제품의 트립스를 일시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에 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백신 및 치료제 기술과 노하우가 공유되도록 WHO의 기술접근 풀(C-TAP)에 우리나라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트립스 유예안을 반대하고 있다.


“설사 백신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권*을 생산해도 백신 생산 기술이나 물리적 인프라를 단기간에 조성하기는 어렵다. 단지 배타적 독점권만 푼다고 해서 백신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백신 개발국들이 나서서 트립스 일시 유예를 자발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래야 백신 특허권 문제와 함께 기술 이전이 동시에 이뤄지고 생산기반 확충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특허 강제실시권은 특허로 인정되는 배타적 독점권이 갖는 내재적 위험에 대한 안정장치의 일종이다. 공익적 목적을 위하여 여러 국가에서 권리자의 권리를 유보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 백신 불균형 해결 안되면 세컨드 웨이브 위험 커져

-백신 공급 악화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 발생 가능한 단·장기적 위험은 무엇이 있을까.

“단기로 보면 백신이 예정대로 공급되지 않아 접종률이 떨어지고 또다시 오랜 기간 동안 코로나19 반복 유행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변이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을 높인다. 변이 바이러스는 전파 속도가 빠른 형태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집단면역 달성이 어려워진다. 결국 방역당국은 낮은 백신 접종률만큼을 사회적 거리두기로 메워야 하며, 이에 따른 이중 부담이 발생할 것이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모더나, 노바백스 등은 우리가 순차적으로 도입키로 한 백신들이다. 오랜 백신 제조 경험을 갖고 있으며 안전성과 효능이 검증된 백신을 개발한 다국적 제약사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플랜A’를 통한 백신 확보에 문제가 발생할 때 대안이 있느냐는 점이다. ‘플랜B’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되면 러시아산이든, 중국산이든 들여와야 한다. 현재 중국 백신은 검증이 되지 않았으니 검증된 러시아 백신(스푸트니크Ⅴ)*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은 스푸트니크Ⅴ 도입 계획 및 검토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중·러 백신에 대한 대다수 국민여론은 부정적이다. 강행 시 자칫 접종 거부도 예상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고민스런 지점일 텐데.

“과연 정치적 문제와 백신을 결부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아쉬움이 있다. 중·러 백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낮을 수는 있지만 이를 설득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가 중국 백신을 대안으로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게 과연 백신 수급 다변화에 대한 합리적 대안이겠는가.”

-제약사와의 계약은 비밀 조건일 것이고, 공급 악화는 국민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말을 아끼는 것도 일정부분 이해는 되지만, 판단할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백신 공포를 조장하는 루머가 들끓는다.

“백신 공급과 관련해 상황을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정보가 매우 부족하다. 정부는 백신 수급 계획을 제외하면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백신 공급 악화 상황에서 추가 백신 확보 및 계약 상황에 대해 지금보다 더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문제가 없다면 상관없겠지만, 전 세계가 백신 부족으로 난리인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투명한 정보공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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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백신 불균형 해결이 요원하면,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재확산이 발생할 위험이 커지게 된다. 사진은 팔레스타인 베들레헴내 아이다난민캠프를 걷고 있는 난민 소녀들. (사진=김양균)

-전 세계에서 백신이 부족하지만, 보건의료 서비스가 취약한 저개발국가나 분쟁지역 등에 백신 공급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열악한 지역의 백신 불균형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가.

“장기적으로 백신을 접종받지 못해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면 변이 바이러스 발생 확률은 증가한다. 일례로 빈부격차가 큰 인도에서 최근 중복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했다. 때문에 사정이 더 열악한 국가와 지역에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출현은 기정사실로 봐야 한다. 기존 변이 바이러스에 비해 전파율과 치명률이 더 높은 변이의 출현은 시간문제다. 변이의 특성상 현 백신 효과는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백신 미공급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확산 ▲변이 바이러스 예방 백신 개발 ▲선진국의 변이 백신 독점 ▲다시 저개발국 소외 ▲또 다른 변이 발생…. 이런 악순환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공감을 얻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때에 이르러서야 인식이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