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소송 거부권 시한 임박…바이든은 아직 고민중

SK이노, '美 사업 철수' 배수진 vs LG, 막판 방어전 집중

디지털경제입력 :2021/04/09 14:28    수정: 2021/04/09 16:16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전기차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에 대한 판결 효력 발생일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막판 거부권을 행사할 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소송에서 패소한 SK로선 배터리 생산·수입금지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대통령 거부권(Veto) 설득에 사활을 걸고 있다.

LG는 ITC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판결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는 만큼, 지적재산권이 보호돼야 한다며 적극적인 방어전에 돌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SK, 막판 거부권 설득에 사활…막으려는 LG

9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각각 대통령 거부권 행사 촉구와 방어에 나서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판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한은 오는 11일(이하 현지시간)까지다.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으면 SK로선 앞으로 10년간 미국 내에서 배터리 생산과 부품 수입을 할 수 없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김준 총괄사장과 외교부 출신인 김종훈 이사회 의장의 방미(訪美)에 이어 현지 정부 인맥을 총동원해 거부권 설득전을 펼치고 있다.

회사는 샐리 예이츠 미국 법무부 전 차관을 최근 미국사업 고문으로 영입하는 한편, 캐럴 브라우너 전 환경보호청(EPA) 청장 등 정책 입김이 센 인사를 통해 막판 뒤집기에 총력이다.

LG에너지솔루션(왼쪽)과 SK이노베이션(오른쪽)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품. 사진=각 사

앞서 바이든 대통령에 SK배터리 수입금지 조치 결정을 제고해달라고 요청한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도 이날 성명을 내고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켐프 주지사는 "조지아에 위치한 26억 달러 규모의 SK 배터리 설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조지아인의 일자리가 대통령의 결정에 달렸다"고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바마 정부 시절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어니스트 모니즈를 고문으로 영입, 내부 인사들을 통해 거부권 방어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영업비밀과 지적재산권 보호 측면을 강조하면서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립적인 비영리 연구기관인 CRP(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SK 측은 이같은 로비전에만 65만 달러(약 7억2천644만원)를, LG 측은 53만 달러(약 5억9천233만원)을 썼다.

LG에너지솔루션(왼쪽)과 SK이노베이션(오른쪽) 관계자들이 각사가 제조한 전기차배터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각 사

합의 가능성은 안갯속…백악관은 즉답 피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ITC의 최종판결이 나온 지난 2월 10일 이후 양사 소송에 대한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미국 정부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양사가 극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나, 합의금액을 둘러싼 입장차가 여전히 크다. SK는 1조원대를, LG는 3조원대의 합의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가 판결 이후 각각 설득전을 펼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현지 사업 포기 가능성도 시사했다. LG는 상반기 미국 내 신규 공장 2곳을 선정하고 현지 배터리 시장에 독자적으로 5조원을 투입하겠다며 대규모 투자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같은 고심은 최근 백악관 대변인 브리핑에서도 드러난다. 젠 사키(Jen Psaki)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7일(현지시간)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ITC 판결에 개입할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전문가들과 논의해야 할 것(will talk to the people who know more about it)"이라며 답을 피했다. 현지에서도 주목하는 사안이지만,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 대통령이 ITC의 수입금지 결정을 막아선 사례가 드물다는 점도 고심의 깊이를 더한다. 최근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 사례는 8년 전인 지난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산 구형 아이폰·아이패드 수입을 금지한 사례 뿐이다.

미국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사진=SK이노베이션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만큼 SK배터리 공장을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란 분석도 현지에서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자리 문제를 생각하면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어줘야 하나, 기업 간 영업비밀 다툼에 끼어들 명분이 없다"면서 "그렇다고 조지아의 여론을 무시한 채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주기도 애매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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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은 거부권 행사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연방순회항소법원을 통해 항소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최악의 경우 미국에서 철수하겠다는 입장도 밝힌 만큼, 유럽 등 신규 투자처도 고려하고 있다. 3조원의 합의금을 지불하는 것보다 미국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LG로선 합의 테이블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오를 전망이다. 소송전이 장기화할 우려가 크지만, 미국 내 각형 배터리 공급처를 다변화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