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삼킨 일상...노멀에서 ‘포스트 노멀’로

2부, 다양한 존재들이 갖고 있는 ‘상호 보완성’ 조명

전문가 칼럼입력 :2021/03/23 16:49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

매년 연말이면 언론은 그해에 가장 뜨거웠던 10대 뉴스를 선정해 발표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언론에서 발표하는 10대 뉴스를 보며 지난 한 해를 갈무리하고 곧 다가올 새해를 준비한다.

2021년, 해가 바뀌고 3개월이나 지나 생각해 보니 작년 연말에 언론에서 발표한 10대 뉴스를 못 들은 것 같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언론사마다 10대 뉴스를 발표하긴 했었다. 10진법에 익숙해서인지 1부터 시작하는 무한대의 숫자 중 특별한 의미를 가진 숫자는 대부분 10 안에 포진돼 있다. 10을 넘는 숫자는 그저 10의 반복일 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1부터 10까지의 수는 모두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한 해를 정리하는 뉴스를 선정하기 위해선 그중에서도 가장 큰 10이 제격이다.

그런데 2020년만큼 10대 뉴스가 빈약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하나의 큰 뉴스가 아홉 개의 작은 뉴스를 모두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바꾼 일상

코로나19 자료샤진(제공=픽사베이)

2020년 세계는 코로나19가 몰고 온 초유의 팬데믹을 경험했다. 수업일수를 맞추기 위해 바쁘게 돌아가던 학교가 문을 닫았으며, 죽기 직전까지 지구의 숨통을 조였던 세계의 공장이 록다운에 돌입하기도 했다. 정치권은 전혀 동의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기본소득 논의를 시작했으며, 교통수단의 발달로 활발했던 지구촌 간 이동도 강력하게 통제됐다. 전 세계 인류는 혹시라도 오가는 숨결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묻어 있을까 두려워 숨을 죽인 채 그저 상황을 목도하며 1년을 지냈다. 인류는 확실히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거대한 적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더 공포스럽다는 사실을, 그리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시대의 국면 전환이 이처럼 단 1년 만에 진행된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을까? 사피엔스가 수렵과 채집에서 벗어나 생존의 수단으로 농경을 선택하기까지는 무려 19만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밀의 재배로부터 시작한 농경이 전 지구로 퍼지는 데도 대략 5천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18세기 부르주아 혁명으로 시작한 근대의 불씨는 11세기 십자군 전쟁을 통해 시작됐으며, 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절대 이성을 추구했던 인간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모더니즘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한 지는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시대변화의 속도는 인간의 정보 능력과 반비례한다. 즉, 정보 능력이 크면 클수록 시대 변화를 받아들이는 기간은 짧아진다. 만약 1천년이나 100년 전에 코로나가 발발했더라도 1년 만에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을까?

노멀에서 포스트 노멀로 칼럼 이미지. 인류사 주요 사건과 기간, 그리고 정보 기술과의 상관 관계 도표.(제공=모티링크)

인류가 코로나19로 인해 맞이한 새로운 시대를 표현하는 가장 보편적인 단어는 아마 새로운 기준과 정상으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뉴노멀’(new normal)일 것이다. 하지만 뉴노멀은 지금의 상식이 어느 정도는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와 착각이 만들어 낸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인간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전한다는 ‘모더니즘’(modernism)에 대한 성찰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열었듯, 코로나로 인해 '노멀'을 부정하며 시작한 새로운 시대는 '뉴노멀'이 아니라 정상과 기준 자체가 철저히 해체되는 '포스트 노멀'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 그렇다면 포스트 노멀 시대 인류 앞에는 어떤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포스트 노멀, 새로운 관계 방식으로의 이동

관계를 생존의 무기로 선택한 인류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와 협력을 해 온 유전적 특징을 내면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다만 생존의 문제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서로 더 큰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을 뿐이다. 인류가 개척해 온 찬란한 문명은 어쩌면 생존이 아닌 이익투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한 발 앞선 결과에 대한 보상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됐다. 토끼가 아무리 거북이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잠을 자거나 마냥 쉬고 있을 수 없는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더 큰 보상을 얻기 위한 인류의 질주는 마침내 오랜 염원이었던 생산력의 문제를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이 아닌 평등한 분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생산력 확대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사회주의 실험은 무참한 실패를 경험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사회주의에 기반한 생산력 확대를 꿈꾸며 대약진 운동을 벌였으나 2천5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구가 사상 최악의 기아로 사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 이후 취임한 덩샤오핑이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이며 이야기한 "흑묘백묘론"은 오늘날까지도 중국식 시장 경제의 기본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류의 이익투쟁은 모든 존재를 대체적 경쟁 관계로 내몰았다. 지배와 피지배가 고착됐던 계급사회, 보다 우월한 인종이 있다는 착각이 만든 식민지 개척, 서로 다른 경제 체제로 대립했던 동서 냉전, 가부장제에 대항한 페미니즘의 약진,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간 세대 갈등 등…

이 모든 관계는 표면적으로 대체 관계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사실 서로를 끊임없이 보완하면서 존재해 왔다. 지배할 대상이 없는 계급사회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우월과 열등은 사회적 환경의 차이일 뿐 인종의 차이가 아니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지금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다양한 복지 제도는 사회주의 실험을 자본주의가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제는 농경 사회에서 남성의 노동력과 전투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작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대학자 '전상진'은 세대 갈등은 복지국가와 노동시장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세대 문제에 전가한 이론이라고 비판한다.

노멀에서 포스트 노멀로...칼럼 2부를 시작하며

동전의 앞면은 그림이 있는 면일까, 숫자가 있는 면일까? 우리는 동전의 어느 쪽이 앞면이고, 어느 쪽이 뒷면인지 사회적으로 합의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한쪽 면만으로 존재할 수 없는 동전의 어느 쪽이 앞면인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동전을 양면이 아닌, 앞면과 뒷면으로 구분해 인식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대체적 관점일지 모른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경험, 지식, 신념을 간직한 채 살아가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필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필자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필자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필자와 다르게 필자를 인식한다. 그게 당연하다. 

그래서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고, 더 가끔은 고맙기도 하다. 그 인식이 필자한테 이익이 된다고 해서 맞고, 해가 된다고 틀린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주장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인식하는 나는 서로 대체해야 하는 관계일까?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주장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인식하는 내가 통합된 존재이며, 그 둘은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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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IT는 포스트 노멀 시대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을까?" 2부에서는 다양한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대체성이 아닌 상호 보완성을 살필 것이다.

디지털이 추구하는 것은 아날로그의 소멸일까?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대체적 관계일까, 상호 보완관계일까? 공과 사, 일과 삶은 과연 분리할 수 있을까? IT의 발달은 시대의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동시에 그 변화의 과정에서 생성되는 모든 데이터를 차곡차곡 축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빠르게 갖춰 나가고 있다. 거듭 드는 생각이지만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포스트 노멀 시대를 이해하는 도구로 IT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25년 이상 예술과 실무, 온라인과 오프라인, 민과 관을 넘나들며 콘텐츠 및 정책 기획자로 활동했다.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사회학 석사이며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의 저자이다. 경영의 과학화를 위한 사회학적 연구와 더불어 디지털 워크스페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커넥티드 리모트워크(Connected Remote Work) 업무 환경의 구현을 위한 기획업무를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