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꼰대 IT 기자의 '알고리즘 뉴스 편집' 유감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뜻밖의 만남'이 그립다

데스크 칼럼입력 :2021/03/17 10:56    수정: 2021/03/17 11:1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공지능(AI) 기술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선물은 많다. 많은 부분들이 편리해졌다. 빅데이터 기술과 결합되면서 그 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됐다. AI가 4차 산업혁명의 꽃이란 평가가 괜히 나온 건 아니다.

콘텐츠 산업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넷플릭스는 수시로 “너, 이 영화에 관심 있을 것 같다”면서 추천해준다. 그런데 그 추천이 꽤 그럴 듯하다. 적어도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토끼굴’이다. 관심 가질 만한 비슷한 영상이 계속 추천된다. 한번 빠지면 한 두 시간 훌쩍 흘러 가버린다.

(사진 제공=픽사베이)

그런 점에선 뉴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AI와 알고리즘은 이제 포털 뉴스를 규정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1990년대말 던졌던 ‘나만을 위한 신문(The Daily Me)’이란 개념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것 같다.

세상 참 좋아졌다. 10, 2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멋진 신세계’가 열렸다.

그런데 난 불편하다. 알고리즘과 빅데이터가 조장하는 ‘평균 회귀 현상’ 때문이다. 뉴스 읽기에서 ‘뜻밖의 만남이 주는 기쁨’이 갈수록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 데이터 혁명이 몰고온 평균 회귀가 불편하다 

뉴스 얘기를 좀 더 하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야구 얘기를 조금만 해 보자.

몇 년 전부터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수비 시프트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지난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NC 다이노스가 대표적이다. 올해 한화 지휘봉을 잡은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연습경기 때부터 수비 시프트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메이저리그에선 오른쪽을 아예 비워 놓은 극단적인 수비 진영이 기본 포맷이 됐을 정도다.

그런데 난 야구계에 불어닥친 데이터 혁명이 살짝 불편하다. 역시 평균 회귀 때문이다.

예전엔 개인의 운동능력이 대단히 중요했다. 3유간을 빠지는 타구를 멋지게 낚아채거나, 외야 빈공간에 떨어지는 타구를 전력질주해서 잡아내는 모습에 팬들은 열광했다.

물론 지금도 개인의 운동능력은 기본 경쟁력이다. 여전히 상상을 뛰어넘는 호수비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데이터 분석이 정교해질수록 ‘그런 의외의 타구’가 나올 확률은 갈수록 줄어들 것 같다. 대신 타구가 어디에 떨어질 지 미리 예측한 뒤 그 곳에 가서 기다리는 장면을 더 많이 보게 될 것 같다. 빅데이터 분석과 함께 ‘발사각도’에 신경을 쓰면서 ‘뜬공 혁명’이 일어난 건 이런 상황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사진=뉴스1)

자, 이제 다시 뉴스 얘기로 돌아가보자.

야구에 불어닥친 데이터 혁명이 불편한 만큼, 포털 뉴스를 장식한 ‘AI 편집’이 불편하다.

AI 알고리즘은 ‘빈도수’를 중요하게 취급한다. 많은 매체가 보도한 기사는 ‘중요한 이슈’라고 간주한다. 물론 틀린 전제는 아니다. 보편적으로 중요한 뉴스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질 가능성이 많다. 그게 뉴스의 기본이다.

그런데 뉴스에 불어닥친 데이터 혁명은 부작용도 꽤 있다. 앞에서 얘기한  ‘평균 회귀’가 대표적이다. 대기업 발표나 정부 정책들이 주요 기사로 취급된다. 반면 개별 언론사가 발굴한 ‘뜻밖의 기사’들은 AI 알고리즘에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IT 섹션에선 며칠 전 기사들이 주요뉴스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계속 같은 주제 기사들이 쏟아지다보니, 하루 지나도 여전히 중요한 이슈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난 ‘편집자의 손길이 가미된 뉴스’가 그립다. 숨어 있는 보석을 곧잘 찾아내곤 하던 그들의 감식안이 새삼 생각난다.

이건 꼭 뉴스 생산자 입장에서 하는 얘기만은 아니다. 뉴스 소비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포털) 뉴스가 예측 가능해져버렸다. “오늘은 또 어떤 깜짝 뉴스가 있을까”란 설렌 마음으로 IT 섹션을 찾던 즐거움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이건 포털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뉴스 생산자인 언론사 책임이 더 크다. 그런데 대형 유통 채널인 포털은 그런 성향을 더 극대화시켜버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 보수 편향이 문제일까, 빈도수 편향이 문제일까 

얼마 전 MBC가 ‘포털 뉴스 알고리즘의 보수 편향성’을 지적하는 보도를 했다. 진보 매체를 보든, 보수 매체를 보든, 보수적인 매체 기사를 추천한다는 내용이었다.

실험 처치를 기반으로 한 탐사보도 기사였다. 그런데 난 그 기사의 논조에도 크게 동의하기 힘들었다. 내가 보기엔 ‘보수편향’이 아니라, ‘빈도수 편향’이 더 심각한 문제처럼 생각 됐기 때문이다.

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 하는 뉴스에 마음을 열 수가 없다. 인간 체취 물씬 풍기는 뉴스 편집이 선사해준 ‘뜻 밖의 발견’이 자꾸만 사라지는 듯해서다. 

야구에 불어닥친 데이터 혁명이 반갑지 않은 만큼이나, 뉴스의 알고리즘화가 썩 달갑지 않다.

내가 야구에서 기대하는 건 ‘타구가 날아올 것’을 미리 예측하는 탁월한 분석 기술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력을 다해 타구를 걷어내는 멋진 운동능력이 보고 싶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내 성향을 다 알겠다는 듯, “이 뉴스 한번 읽어봐”라고 추천하는 알고리즘보다는 ‘이런 멋진 뉴스가 있었다’며 추천해주는 사람 편집자의 감식안이 난 더 좋다.

이런 얘기를 하고 보니, 갑자기 내가 변화를 거부하는 ‘꼰대’가 된 것 같다. 어쩌면, 꼰대인지도 모른다. '평균적인 뉴스, 예측 가능한 뉴스'를 거부하는 게 꼰대라면, 기꺼이 꼰대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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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넷플릭스 입문 단계에서 추천작들을 봤더니, 그 작품에 기반한 추천을 계속 해주기 시작했다. 그게 어느 순간 불편해졌다. 결국 얼마 전부터 '적극적인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내 취향을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런 자그만 반란을 한 이후에 만족도가 더 높아졌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