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화장품 업체 아모레퍼시픽이 디지털혁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8년부터 데이터 기반 디지털혁신에 시동을 건 아모레퍼시픽은 필요한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꺼내 쓸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이제 조직 내 누구나 데이터를 쉽게 다룰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를 보급하는 단계에 와있다.
전통 산업에 속한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혁신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를 드러낼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아모레퍼시픽 디지털혁신 사례에 관심이 가는 이유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를 "디지털혁신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원년"으로 삼았다. 마케팅, 영업 조직이 직접 데이터를 만지고 그 속에 숨어 있는 '고객의 형상'을 그릴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구매전환율을 이전보다 50% 이상은 끌어 올리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세웠다.
최근 만난 아모레퍼시픽 최고디지털기술책임자 홍성봉 상무는 "기업 내 디지털 전담조직이 변화의 출발점에서 에너지를 불어 넣을 순 있지만 결국 회사 전체가 변혁하려면 현장에 있는 구성원들이 데이터를 쓸 수 있어야 한다"며 회사의 디지털혁신 방향을 설명했다.
회사의 디지털혁신 방향은 명확해 보인다. '데이터분석의 민주화'와 이를 통한 '일하는 방식의 변화'다. 아모레퍼시픽이 지금까지 이룬 것과 남은 도전과제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마케터가 빅데이터 직접 만져야 하는 이유..."오래 걸리면 그냥 못하는 것과 같다"
"SQL(*데이터베이스 접근 언어)을 모르면 데이터 볼 권리를 빼앗겨야 할까? 데이터 전문가가 아니어도 데이터를 곁에 두고 직접 셀프서비스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홍성봉 상무는 최근 개발한 '고객탐색기'를 보이며 '데이터 접근성' 문제를 고민한 결과라고 소개했다. 고객탐색기는 1천500만명에 이르는 유효고객 중 특정 조건의 집단을 분류하고, 해당 집단의 특성을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내부 서비스다. 마케터들이 마케팅 캠페인에 적절한 타깃을 설정할 때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3개월 내 평균 10만원 이상 구매한 사람'을 조건으로 검색하면, 이에 해당하는 고객 수와 나이대, 남녀 비율, 온프라인 사용 비율, 마지막 구매 제품 등 집단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고객 탐색기에서 지원하는 검색 조건은 500가지인데, 클릭으로 조건을 추가해 검색을 누르면 단 1초 만에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고객 분석기는 고객관계관리(CRM) 툴과도 연동된다. 마케팅 메시지에 가장 적합한 고객층을 찾고, CRM에서 해당 집단에 바로 마케팅을 전개할 수 있다.
이전까지 마케터들은 고객 데이터에 직접 접근하지 못했다. 빅데이터를 다루기 위해 필요한 전문지식이 허들이 된 탓이다. 보고 싶은 데이터가 있으면 데이터 관리를 맡기는 외주 업체에 원하는 조건을 주면서 데이터를 뽑아달라고 요청을 했다. 하루 이틀 후에 데이터를 받게 되는 게 보통이다. 한 번에 딱 맞는 고객 집단을 찾아내기가 어려우니, 여러번 요청을 다시 하다 보면 일주일 이상 걸리기도 했다.
그는 "데이터분석을 요청하고 일주일 걸려 결과를 받았다면 데이터분석을 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고 단호히 말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에 맞춰 마케팅 캠페인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그런데 데이터 분석 속도가 뒷받침 안되면 어떤 마케터가 데이터를 보면서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을까? 데이터에 기반한 마케팅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데이터 접근성이 떨어져서 생기는 문제다.
홍 상무는 이런 이유로 마케터가 직접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데이터 플랫폼을 잘 만들어서 잘 저장해 놓는 것은 기본이고 데이터를 현업이 잘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데이터 분석은 원래 전문가한테 맡겨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직접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회사가 실질적인 디지털혁신을 이루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홍 상무 팀은 고객탐색기뿐 아니라 기본적인 고객 데이터를 보여주는 대시보드, 데이터 전문가를 보유한 브랜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문 분석툴 등 다양한 툴을 마련해 놨다.
원하는 대로 데이터 뽑아보는 플랫폼...어떻게 만들었나?
마케터가 마음껏 원하는 데이터를 뽑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회사가 생산하는 모든 데이터가 인풋이고 마케터가 보고싶은 모든 것이 아웃풋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기존 빅데이터 플랫폼 설계로는 불가능한 작업이라 게 홍 상무의 설명이다.
OLAP이라는 방식의 기존 빅데이터 플랫폼 설계는 보고싶은 결과물을 미리 정의하고 거기에 맞춰 웨어하우스를 구축하는 역방향 설계를 택하고 있다.
홍 상무는 "데이터의 양도 많고, 검색하고자 하는 조건도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을 최적화해 쿼리하기가 어려워 이런 설계가 많이 사용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설계 방식은 플랫폼 구축 전에 보고싶은 것이 명확히 구체화 돼 있어야 하고, 추가로 더 보고 싶은게 있으면 수 개월에 걸쳐 또 개발을 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이제는 이런 방식의 툴로 고객을 탐색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며 "현업이 데이터를 어떻게 쓸지 불확실성이 100%인 상황에도 데이터를 뽑아 줄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라우드는 기술적으로 이런 설계를 가능하게 해줬다. "클라우드에서 제공하는 유연한 데이터베이스 요소 기술, 고성능 쿼리 툴 등이 성능을 뒷받침해줬고, 클라우드 네이티브 역량을 쌓은 엔지니어들의 기술력이 결합된 성과"라는 게 홍 상무의 설명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위해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긴밀히 협력했다.
도구로는 AWS의 스토리지 서비스 S3, 서버리스 쿼리 서비스 아테나, 검색엔진 엘라스틱서치 및 데이터수집 도구 로그스태시, 데이터 시각화 도구 키바나(ELK)를 파워풀하게 사용했다.
"S3를 단순히 오브젝트스토리지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빅데이터를 하면서 보니까 가격경쟁력이 있는 똑똑한 데이터베이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둡으로 치면 하둡의 파일시스템과 하이브 같은 것을 대체해버릴 수 있는 기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홍 상무는 설명했다.
또 "S3자체가 아테나 같은 고성능 프로세싱 둘과 바로 붙어, S3에서 데이터가 정제되면 아테나에서 고성능으로 쿼리하는 게 가능했다"며 "이렇게 두단계만 거쳐도 상당한 퍼포먼스가 나왔고, 우리가 원하는 시스템 아키텍처를 제공해줬다"고 덧붙였다.
이어 "엘라스틱서치는 고객 탐색기에서 덕을 많이 봤다"며 "고객 1천500만명에 대해 500개 이상의 조건을 적용했기 때문에 고객을 규정하는 메타데이터가 굉장히 많았는데도 1초 만에 결과 값을 호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클라우드 도구뿐 아니라 엔지니어들의 일하는 방식도 클라우드 네이티브로 전환한 것이 플랫폼 구축 성공에 중요한 요소였다.
홍 상무는 "클라우드를 통해서 유연하고 민첩하고 비용효율적이되려면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클라우드 네이티브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레거시 시스템이 클라우드로 들어가서 확장성 기민성을 확보하려면 기술적으로 컨테이너, 쿠버네티스를 도입하고 마이크로서비스아키텍처(MSA) 구조가 돼야 한다. 이런 것들이 엔지니어가 일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데, 이때 일하는 방식과 사고를 클라우드 네이티브로 전환하지 않으면 오히려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AWS는 아모레퍼시픽에 테크니컬 어드바이저리 프로그램과 프로토타이핑 프로그램을 통해 클라우드 네이티브로 전환을 지원했다. 두 프로그램을 통해 AWS 소속 클라우드 전문가들이 아모레퍼시픽 엔지니어들과 프로젝트를 위한 '가상의 팀'을 조직하고, 실제 현장에서 테스트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과정을 함께 하며 클라우드 네이티브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나눴다.
"올해 데이터 기반 혁신 성과 낼 것...구매전환율 50% 상승 목표"
아모레퍼시픽은 올해를 현장에서 디지털혁신이 일어나는 원년으로 보고 있다. 지난 2년에 걸쳐 데이터 거버넌스와 플랫폼을 구축했고, 이제 현업의 데이터 접근성을 극대화시켜 실제 디지털혁신 성과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업이 데이터를 가까이 하는 문화를 만드는 걸 또 다른 과제로 삼았다. 이전에는 외주 업체에 데이터 분석을 맡기고 리포트를 받아봤는데 이제는 데이터를 어떻게 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직접 데이터를 뽑아 보는 데 더 익숙해지도록 돕겠다는 설명이다.
홍 상무는 "데이터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현업) 여러분 바로 옆에 있고 직접 만질 수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전파하려 한다"고 말했다.
현업 조직과 긴밀하게 소통해, 데이터 분석 툴에 현장의 목소리를 더 반영할 예정이다. 또 각 조직에 데이터 전문가인 '디지털비즈니스 파트너'를 파견해 데이터 사용 문화를 확산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데이터 분석 기반이 마련된 만큼 올해는 이런 도구를 도입한 후 고객 도달률, 구매전환률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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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상무는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실제 구매 전환율까지 이어지는지 모니터링 체계를 갖출 예정"이라며 "고객탐색기와 CRM툴을 도입으로 구매전환률을 50% 이상 높이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그는 "현업에서 데이터를 통해서 고객의 형상을 그리고 이미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여기에 상상을 얹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올해 데이터에 기반한 혁신의 불씨가 마케팅·영업조직 안에서 일어나길 기대한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