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리더십을 위한 세대의 이해

"꼰대 기준은 다른 사람의 생각 수용하는 태도의 차이"

전문가 칼럼입력 :2021/02/09 10:29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

포스트 노멀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동기 부여에 이어 이번 연재부터는 디지털 리더십에 관해 다뤄 보겠다.

얼마 전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병맛으로 무장된 90년대 생들이 본격적인 경제활동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여기저기에서 세대 간의 낯선 충돌이 발생하게 됐고, 아마도 그 충돌을 설명하거나 해소해야 하는 사회적 요구가 책의 흥행을 이끌었을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다이내믹한 세상의 변화 속에서 다른 경험을 한 다양한 생각의 사람들이 한 시대를 공유하며 살고 있다. 그 다른 경험들이 서로 평등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대립하는 지역감정을 경험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립과 갈등이 완벽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핵심 갈등이 지역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빠른 경제 성장으로 대한민국이 세계 시장에 노출되면서 지역과 지역을 나눴던 구분이 국가의 경계 밖으로 이동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02년 붉은 옷을 입고 서로 다른 지역의 국민들이 한데 어우러진 경험도 지역감정 해소에 적지 않게 기여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갈등과 대립이 신념의 문제에서 삶의 문제로 이동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지역감정 따위 가슴속에 묻어두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디지털 리더십을 위한 세대의 이해(제공=모티링크)

세상은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입시를 중심으로 공정성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이유는 불공정과 관련한 팩트가 다양한 데이터로 생산되고, 가공되고, 확산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미투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1만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부장제에 저항할 수 있는 이유는 데이터 접근 능력이 남성들이 갖고 있는 근육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코로나로 인해 빠르게 비대면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적응 능력은 디지털을 대하는 다른 태도를 갖고 있는 세대 간의 갈등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면 세대와 비대면 세대의 충돌

관계는 우리에게 '힘'이 될까, 아니면 '짐'이 될까? 힘이 아니라 짐이 된다고 해도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은 관계가 짐을 넘어 '죄'가 되는 시대다. 한 번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친목의 긍정성을 주장하다가 철퇴를 맞은 적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왜 친목질을 하려고 하냐며 반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온라인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행위는 마치 도둑질처럼 친목'질'로 인식이 된다. 친목이 뭐가 문제냐고 항변을 해봤지만, 온라인에 익숙한 ‘비대면 세대’는 오프라인에 익숙한 ‘대면 세대’와 다른 관계의 문법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친목이 긍정적인 100가지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친목 밖에 있는 누군가가 친목의 피해자가 된다면 모든 친목은 싸잡아 '친목질'이 된다. 학창 시절 왕따 문화를 경험해 온 온라인 세대에게 잘못된 친목은 친목에서 배제된 누군가에게 단지 상처를 주는 것을 넘어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였을지 모른다. 나아가 온라인 세대의 눈에는 학연, 혈연, 지역이 범벅이 된 오프라인 세대의 그 구태의연함이 혐오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급기야 나는 내가 보지 못한 친목의 부정적 이면이 있음을 인정하며 커뮤니티에 공개 사과문을 올렸다.

꼰대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는 '태도의 차이'가 그 기준이 된다. 꼰대는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를 떠나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생각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부도덕한 보수와 싸우는 과정에서 꼰대스러운 진보가 등장했고, 가부장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여성도 꼰대가 될 수 있으며, 나이를 권력처럼 휘둘러온 어른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온 아이들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이른바 어린 꼰대가 돼 가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가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자신과 다른 생각을 대하는 '태도'이다.

세대와 세대의 콜라보, 영화 ‘인턴’

명품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헤로인 앤 헤서웨이가 주연한 ‘인턴’이라는 영화가 있다. 개인적으로 대면 경험을 축적해 온 기성세대와 불확실한 가능성으로 무장한 비대면 세대가 서로에게 어떠한 역할로 다가가야 하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로버트 드 니로가 분한 벤은 은퇴한 후 줄스(앤 헤서웨이)가 운영하는 전도유망한 벤처 기업에 국가 지원을 받는 인턴으로 취업한다. 줄스는 처음에 벤을 마치 소가 닭을 쳐다보듯이 대하지만, 벤의 노련함은 패기의 벤처 기업 사장인 줄스가 공적, 사적으로 놓치고 있는 많은 일들은 멋지게 '보완'한다. 줄스의 표정에서 숨겨져 있는 의도를 직원들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며 사장과 직원 사이에 윤활유가 되는가 하면, 바람을 피는 남편에게는 적절한 충고를 통해 가정의 평화를 지켜 준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줄스는 회사에 보이지 않는 벤을 찾아 나선다.

나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면 취향, 경험뿐만 아니라 자존심까지 접고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세대와 세대가 필요와 필요가 내민 손을 서로 잡을 수만 있다면 익숙하지 않은 비대면이 만들어 갈 사회도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취향과 경험, 그리고 가치를 구분하자!

우리는 흔히 "좋다", "싫다"라는 취향의 문제나, "익숙하다", "낯설다"라는 경험의 차이를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의 문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세대는 코로나 이전의 '경험'이 단단하게 축적된 기성세대보다 상대적으로 코로나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데이터의 양을 가늠할 수 있는 시대, 예를 들어 사계절이 반복되는 농경시대엔 경험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데이터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오히려 크고 단단한 경험으로 인해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는데, 자신이 그린 작은 그림 위에 덧그림만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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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등장하게 된 말이 "라떼는 말이야"로 대표되는 이른바 '꼰대 담론'이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업무로 인한 리스크가 분명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비대면이 "싫다"거나,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면 업무만을 고집한다면 권한이 집중돼 있는 한 개인의 취향과 경험이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가치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원래 선과 악은 그리스어로 '이익이 된다'는 의미의 ‘Agathon’과 해가 된다는 의미를 가진 ‘Kakon’이 그 어원이다. 지금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똥배짱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직접 거래가 이뤄지는 영업장뿐만 아니라, 종교 집회도 제약을 받고 있다. 인터넷으로 신도를 모으고 배달을 통해 시주를 받거나 인터넷 뱅킹으로 헌금을 받을 수 없다면 종교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나아가 눈에 보이는 모든 물리적 공간은 해체되고, 교회, 기업, 심지어 학교까지 가상의 온라인 공간에 존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장차 부동산이라고는 수도권 변두리에 꼴랑 집만 한 채 갖고 있는 것이 다행인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25년 이상 예술과 실무, 온라인과 오프라인, 민과 관을 넘나들며 콘텐츠 및 정책 기획자로 활동했다.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사회학 석사이며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의 저자이다. 경영의 과학화를 위한 사회학적 연구와 더불어 디지털 워크스페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커넥티드 리모트워크(Connected Remote Work) 업무 환경의 구현을 위한 기획업무를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