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는 현대차·애플 협상…정의선과 팀 쿡의 선택은?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애플카' 둘러싼 전망 톺아보기

데스크 칼럼입력 :2021/02/04 10:58    수정: 2021/02/04 14:1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내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라면?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라면?”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계속되는 두 회사 협력 관련 보도 때문이다. 물론 오지랖이다. 제 할 일도 벅찬 처지에 세계 최고기업들 걱정이나 하고 있으니.

그런데 CNBC의 3일(현지시간) 보도를 접하면서 엉뚱한 '토끼굴'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팀 쿡 CEO와 정의선 회장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정의선 회장(왼쪽)과 팀 쿡 CEO.

이 얘기를 하기 전에 CNBC 보도를 조금 따라가보자. 대충 이런 내용이다.

애플과 현대-기아차 간의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이다. 계약 확정되면 미국 조지아주 웨스트 포인트에 있는 기아차 조립공장에서 애플 브랜드를 단 자율주행차를 만든다. 출하 예정은 2024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일정이 늦춰질 수도 있다. 현대차 대신 다른 자동차 회사가 협상 파트너가 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CNBC는 이 소식을 전해주면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계약이 성사된다는 걸 전제로 한 질문이다.

첫째. 애플은 왜 현대-기아를 선택했을까?

둘째. 현대-기아는 왜 애플과 계약을 체결했을까?

이 질문은 현대차와 애플의 제휴 보도가 나올 때부터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이다. 그걸 한국식으로 바꾼 게 “팀 쿡과 정의선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란 질문이다.

"잠재력 엄청난 모빌리티시장에서 애플다운 비즈니스 해야 할텐데"

팀 쿡의 고민은 '아이폰 이후'다. 포화 상태에 다다른 스마트폰 최강으로 만족하는 건 애플답지 않다. 게다가 모빌리티 시장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과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다. '아이폰 이후'를 고민하는 애플에겐 반드시 정복해야 하는 산이다. 

CNBC는 모건스탠리 보고서를 인용해 모빌리티 시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잘 보여준다. 

스마트폰 시장 규모는 연간 5천억 달러 수준이다. 반면 자동차, 모빌리티 분야는 10조 달러에 이른다. 애플이 2%만 점유해도 아이폰 사업 정도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미래를 고민하는 팀 쿡의 머릿 속에서 지워내기 힘든 그림이다.

팀 쿡의 고민은 모빌리티 시장에서 ‘애플다운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파트너를 잘 골라야 한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사진=씨넷)

무엇보다 자동차 제조역량이 뛰어나야 한다. 이 대목에서 현대-기아차는 최적의 파트너다. 그런데 '애플다운 비즈니스'를 위해선 파트너가 고개를 조금 숙여줘야 한다.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이 딱 그런 존재다. 

그런데, 현대차는 폭스콘과는 조금 다르다. 설계도까지 넘겨준 뒤 "이대로 조립해달라"고 할만한 상대가 아니다. 파트너로는 딱 좋은데, 애플다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집하긴 쉽지 않은 상대다. 

미래는 그곳에 있는데…현대 브랜드 살리면서 할 방법은 

정의선 회장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지난 해 10월 현대차 회장에 취임한 정의선 회장은 미래 자동차를 강조했다. 취임 메시지의 제목은 ‘새로운 장의 시작(Start of a New Chapter)’이었다.

이 메시지에서 정 회장은 “고객의 평화로운 삶과 건강한 환경을 위해 성능과 가치를 모두 갖춘 전기차로 모든 고객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이동수단을 구현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새로운 환경과 미래를 위한 또 다른 도전과 준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차는 정의선 회장이 그리는 미래차의 핵심 키워드다. 

애플과 협력할 경우 현대차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미래차 파트너로 애플만한 곳은 쉽게 찾기 힘들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그런데 정 회장도 현대차가 폭스콘 같은 역할을 하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현대차는 이미 기존 시장의 강자다. ‘애플 조립 파트너’로 만족했던 폭스콘과는 차원이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안드로이드 목마'를 타기 전 삼성전자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런데 애플은 구글과 다르다. 하드웨어 욕심이 없는 구글과 달리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자신들이 관장하고 싶어한다. 

미래가 그 곳에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주도적으로 이끌어야만 '현대차의 미래'가 될 수 있다. 

협상이란 게 모든 걸 다 얻을 순 없다. 얻는 게 있으면 내줘야 하는 것도 있다. 현대차와 애플의 협상에선 그게 너무나 명확해 보인다.

삼성과 구글이 만들어냈던 모델, 현대와 애플은 가능할까 

그렇다면 제3의 길은 없을까? 언뜻 떠오르는 건 삼성전자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에 올라타기 직전의 삼성. 당시 삼성 내부에선 '플랫폼 종속' 걱정이 심했다. 하지만 과감하게 밀어부친 끝에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가 됐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유일한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수평 비교는 힘들다. 자동차는 스마트폰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 하청제조'가 가능했던 스마트폰과 달리 자동차는 제조역량이 갖는 힘이 막강하다. 

게다가 애플은 구글이 아니다. 출발선이 '광고 비즈니스'였던 구글과 달리 애플은 '기기 제조사업자'다. 지금까지 애플 브랜드가 달리지 않은 기기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정의선 회장에겐 '애플카를 외주 생산하는 현대차'가 어색할 것이다. 반면 팀 쿡은 '애플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현대차'란 그림이 쉽게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다.  

CNBC 보도를 보면서 대충 이런 생각들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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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정의선 회장과 팀 쿡 CEO는 이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활짝 웃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현재의 일부(혹은 상당부분)'를 양보하면서 미래를 향해 함께 달릴 수 있을까? 

정의선 회장과 팀 쿡으로 빙의해봤지만, 여전히 질문에 대한 해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두 회사의 존재감과 미래 전략이 갖는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